드라마

나쁜 녀석들 - 싸워야 하는 이정문, 드러나는 아쉬움들

까칠부 2014. 10. 26. 03:55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전개될 것이면 이정문(박해진 분)의 캐릭터가 굳이 있어야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수사과정은 생략되고 대부분 몸으로 때우는 장면들이다. 제법 잘 싸우기는 하지만 - 아니 그것이 오히려 문제다. 두뇌파여야 할 이정문이 정태수(조동혁 분)나 박웅철(마동석 분)과 마찬가지로 몸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하고 있다. 최연소 멘사회원으로 천재적인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라는 설정이 무의미하게 여겨질 정도다.


지능형 범죄자인 이정문은 머리로, 서울의 밤거리를 제압한 조직폭력배 박웅철은 범죄조직과의 인맥과 자신의 폭력으로, 그리고 살인청부업자 정태수는 고도로 훈련된 살인기술로써. 원래 그러자는 인원구성이 아니었을까? 다시 경찰로 돌아온 민완형사 오구탁(김상중 분)이 현장에서 갈고 닦은 경험과 지식으로 수사의 구심점이 되고, 상대적으로 젊은 유미영(강예원 분)이 현역으로서 경찰조직과의 고리역할을 맡는다. 아마 오구탁의 비중이 지나치게 커진 때문일 것이다. 다른 캐릭터를 살리는 구심점 역할이 아닌 스스로 수사의 전반을 주도하고 결정짓는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나머지 캐릭터는 그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굳이 이정문이 천재적인 머리로 추리할 필요 없이 오구탁과 경찰조직에 의해 장기밀매조직의 최상층부가 밝혀진다. 굳이 박웅철이 발로 뛰며 알아내지 않더라도 경찰의 힘으로 어렵지 않게 그 근거지까지 찾아낸다. 그나마 정태수는 황여사의 하수인을 고문하여 그 이름이 나오도록 하는데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황여사와 황여사의 조직이 장기밀매를 하는 현장을 직접 찾아가 증거를 확보하고 황여사를 체호하는 것 뿐이다. 목적이 단순해지면서 각 캐릭터의 역할 또한 극도로 단순해진다.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이 황여사의 건물로 제한되면서 캐릭터들의 역할에도 큰 제약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 그다지 싸움에 능하지 않은 이정문조차 살기 위해서는 수십명의 황여사 조직원들과 격투를 벌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오로지 싸움실력만이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유일한 기술이고 능력이었다.


그렇다고 과연 이번 에피소드에서만 어쩔 수 없이 그리 할 수밖에 없었는가면, 그러니 이미 이전의 다른 에피소드들에서도 이정문의 역할은 지극히 제한적으로 그려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차피 이정문의 수사방식은 매우 정적인 것으로 드라마로서 시청자의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불리한 요소가 많았다. 주로 화면으로 보여지는 것은 보다 화려하고 보는 재미도 있는 정태수와 박웅철의 폭력이었고 이정문의 추리는 단지 장식처럼 사이드로 보여지고 있을 뿐이었다. 오구탁과 심지어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유미영까지 폭력으로써 자기를 주장하려 한다. 그래서 이정문도 폭력으로써 자기의 역할을 찾아간다. 수사는 오구탁과 경찰이 하고 이들은 단지 그들의 손발로써 폭력만을 담당한다. 재미는 있겠지만 과연 그것이 드라마가 처음 의도한 바인가는 생각해 볼 일일 것이다. 재미있게 보다가도 문득 어떤 아쉬움이나 위화감을 느끼고 만다. 과연 이것으로 충분한가. 만족하고 있는가.


굳이 거기서 황여사가 정규직 채용과 연봉인상을 조건으로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너무 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시 보면서 어떤 기시감 같은 것을 느꼈다. 자본은 인간마저도 수단으로, 혹은 대상으로 계량하려 한다. 인간 자신을 소모하고 또한 소비하려 한다. 단지 자신은 기술자일 뿐이다. 직접 장기밀매와 관련해 어떤 범죄를 저지른 적은 없다. CCTV로 그러한 현장들을 그동안 줄곧 지켜봐 왔다. 알지만 단지 시켜서 하는 일이고 자신의 직업이다. 그로부터 임금을 받아 생활도 해야 한다. 부정과 비리가 있어도 눈감고 외면하며 심지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더 큰 이익을 얻고자 앞장서는 이들도 나타나게 된다. 누군가 그것을 밝히고 바로잡으려 한다면 그는 곧 자신들의 이익을 해치는 적일 것이다. 법을 집행해야 할 경찰조차 이익을 쫓아 그들과 같은 편에 선다. 그들과 맞서싸우는 것이 흉악한 살인범들이라는 것은 이 얼마나 지독한 아이러니인가.


자신마저 수단으로 삼는다. 오구탁이 권총을 머리에 겨누며 위협하고 있음에도 오히려 자신의 자리를 미끼로 던져 조직원들로 하여금 오구탁과 미친개들을 공격하도록 한다. 그동안 몸에 좋은 것들을 많이 챙겨 먹었으니 감옥에서 아무리 오래 있어도 자신은 건강할 것이다. 미용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거울을 보며 어떻게 자신을 관리할까 고민한다. 누구보다 자신을 아낀다. 그러면서 자신보다 자신이 이룬 조직을 더 아낀다. 오로지 눈앞의 이익만을 쫓는 조직원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고와 행동들을 보여준다.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 자체가 하나의 정교한 구조를 이룬다. 단순한 장기밀매가 아닌 어떤 비유들을 보여주는 듯하다.


녹슬었어도 그것이 법이다. 총이라고는 쏴 본 적 없어도 경찰의 손에 들려 있기에 그것으로 흉악한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 부패한 경찰에 의해 박철웅 등은 위기를 맞지만, 그러나 그런 경찰에 의해 그들은 구원받게 된다. 하기는 그들을 잡아서 감옥에 가둔 것도 국가의 법이고 공권력일 것이다. 아무리 오구탁과 미친개들이 싸움을 잘해도 총도 쏠 줄 모르는 경찰청장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구하고 원래 목적했던 황여사도 체포하게 된다. 아무리 훌륭한 총솜씨도 방향을 잃으면 오히려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한다. 그런 의미 아니었을까? 범죄자가 나서서 더 흉악한 범죄자를 잡아야 하는 아이러니처럼.


장점 만큼이나 단점도 다수 노출한 에피소드였을 것이다. 그동안 느껴왔던 불안요인들이 더욱 분명해졌다. 굳이 그처럼 다양한 캐릭터가 필요치 않았다. 서로 다른 능력과 개성들이 만나 시너지를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는 말 그대로 단지 기대에 불과했다. 수사드라마의 관습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왕의 캐릭터와 설정들이 습관에 의해 무의미하게 소모되고 있다. 오구탁이 한 걸음 물러서야 한다. 더 치밀해지고 정교해져야 한다. 숙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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