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생 - 그들의 어깨에 지워진 무게, 강함의 이유

까칠부 2014. 11. 3. 03:35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은 강하다. 단지 지위가 높고, 권력이 있고, 물리적인 힘이 강해서 강한 것이 아니다. 지위도 낮고, 가진 것도 없고, 힘마저 약해도,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켜낼 수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강한 것이다. 오상식(이성민 분) 과장이 진정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존심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무엇이었을까?


마지막 순간 박대리가 자신을 속이고 이용한 영성실업을 옹호하고 나선 것도 자신이 진정으로 지키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소속된 원인터네셔널도 아니고, 거래처로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영성실업도 아니다. 바로 자신이다. 회사와 일에 휘둘려 자신을 잃고 싶지 않다. 그나마 사안이 가벼워서 다행이었다. 아니 사안이 중대했다면 그렇게까지 되도록 박대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영성실업을 담당하게끔 내버려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냉정하고 단호한 판단력은 없지만 거래처와 원만하게 공존할 수 있는 인덕은 있다. 하는 일도 많고 필요한 업무도 다양하기에 원인터네셔널과 같은 회사에는 박대리와 같은 스타일도 필요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을 것이다.


안영이(강소라 분)에게도 순간의 수모나 고통보다 더 두렵고 피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아무리 상사에게 모욕을 당해도, 육체적으로 힘들고 고되도, 그러나 그녀에게는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그것이 그녀의 자존심이다. 일로써 실력으로 반드시 인정받겠다. 하기는 오상식 역시 고작 친구를 접대하며 수모를 당한 일로 자존심을 다치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자존심은 자신의 일이며 그 일로써 지켜지고 있는 자신의 가족일 테니까. 그보다는 친구와의 오랜 추억이 바래지는 것이 안타깝고 서운할 것이다. 자기는 우정이라 믿었는데 고작 그 정도에 불과한 얄팍한 관계였다. 자기가 우월한 입장이 되고서야 친구라 믿었던 이는 비로소 자신을 친구라 불러준다. 과연 이후로도 그들은 친구일 수 있을까?


아직은 간절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 없다. 그러고자 하는 결심 또한 희미하다. 어쩌면 그래서 장백기(강하늘 분)에게 일을 맡기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아직 책임지고 일을 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 겨우 자기 하나만을 책임지려 하는 사원에게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상사란 거의 없다. 무언가를 걸어야 한다. 굳이 회사나 동료가 아니더라도 가족이라든가 신념이라든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무엇. 일 그 자체가 된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장그래(임시완 분)와 박대리의 가장 결정적인 다른 점이었을 것이다. 아직은 그릇이 되지 않는다. 동창으로 인해 시원하게 물먹고 경과보고서를 쓰던 중에도 아내가 보내준 아들의 동영상에 오상식은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를 진정으로 웃게 만드는 그의 힘이다.


노골적인 만화적 연출이 갑작스러워서 상당히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사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장면은 아니었다. 그동안 그렇게 노골적으로 만화적인 연출을 사용하던 드라마도 아니었고, 더구나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달될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예고편이 없는 것과 관계가 있을까. 만족스러운 가운데 유일한 아쉬움이다. 인간을 그린다.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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