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오만과 편견 - 일상을 살아가는 검찰의 풍경화처럼...

까칠부 2014. 11. 4. 03:53

드라마의 제목 '오만과 편견'은 다름아닌 장르에 집착하는 시청자를 향한 경고이기도 할 것이다. 검사가 주인공이니 수사드라마일 것이다. 검찰내 민생안정팀이 배경이 되고 있으니 분명 이 드라마는 검사가 주인공인 수사드라마일 것이다. 오만이고 편견이었다. 학교도 병원도 사람이 사는 곳이듯 검찰청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아예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두 주인공 한열무(백진희 분)와 구동치(최진혁 분) 사이의 지난 과거를 집중해서 보여주고 있다. 강수(이태환 분)가 한열무에게 호감을 가지는 것도 굳이 감추거나 뒤로 미루려 하지 않는다. 구동치와 강수는 같은 집에 살고, 무전취식과 쌍방폭행으로 검찰조사를 받는 정창기(손창민 분)는 구동치 역시 잘 아는 강수와 친한 동네형이다. 이장원(최우식 분)과 유광미(정혜성 분)의 앙숙관계도 시작부터 아주 달달하다. 정년퇴직을 앞둔 노수사관 유대기(장항선 분)의 노회함과 경험과 실력 만큼이나 자기애가 강한 부장 문희만(최민수 분)의 강한 개성이 그 자체로 배경이 되어주고 사건이 되어준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의심하고 갈등하며 그렇게 그들은 민생안정팀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어우러진다.


어쩌면 사건 같은 것은 처음부터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첫회에서도 특히 미성년자에 대한 성추행이라는 범죄의 중대성에 비해 단지 주요인물들을 소개하기 위한 무대로써 쓰여진 정황이 강하다. 2회에서는 그나마 사건조차 없었다. 한열무와 구동치의 과거와 강수와 정창기의 관계만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3회에서는 비로소 이장원과 유광미의 캐릭터가 소개되고 있다. 어린이집에서 일어난 어린이사망사건이 한열무의 과거를 헤집고, 이제 갓 검사가 된 한열무에게 시련이 되어준다. 신입의 패기라기보다는 과거의 상처가 그녀로 하여금 사건을 지키기 위해 하늘과 같은 부장에게 대들도록 만든다. 구동치가 그런 그녀를 뒤에서 지켜주려 하고 있다. 한열무가 구동치를 거부하고 떠난 이유에 대해서도 전혀 예상을 배반하며 상당히 초반이라 할 수 있는 3회 마지막에 보여주고 있었다. 한열무의 동생이 죽은 일과 당시 담당검사였던 구동치와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


수사는 검사의 일이다. 사랑은 검사의 삶이다. 서로 미워하고 다투고 화내는 것 역시 인간으로서 검사 역시 당연히 누려야 할 일상일 것이다. 수사도 하고 사랑도 한다. 아니다. 사랑도 하면서 수사도 한다. 그래서 굳이 문희만과 그의 상사인 차장과 검찰국장과의 관계를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가며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특히 법무구 검찰국장 이종곤(노주현 분)과 만나는 장면에서 어째서 문희만이 그토록 지나칠 정도로 자의식을 드러내고 완고할 정도로 집착하고 있는가 어렴풋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마약사건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 자신의 실적으로 만들어야겠다. 그를 위해 구동치가 맡고 있던 사건마저 한열무에게 넘기며 퇴근 전에 종결하라 다그친다. 그다지 대단할 것 없는 사소한 사건 따위 그냥 묻고 지나가겠다. 자신을 방해하는 것은 누구라도 용서할 수 없다. 어쩌면 그처럼 꼬인 문희만의 내면 역시 어떤 사건보다도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니겠는가.


캐릭터가 선명하다. 어떤 인물인가 굳이 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그만큼 정교하고 치밀하게 계산되어 구성된다. 인물과 인물 사이의 관계는 그같은 정교하게 그려진 입체의 캐릭터에 그림자까지 더해주고 있다. 그림자는 인물을 따라 움직인다. 그림자를 통해 인물의 움직임을 보고, 인물의 움직임을 통해 그림자를 예상한다. 그렇다고 전혀 숨 쉴 틈도 없이 치밀하게 구성된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 쉴 수 있는 여백과 같은 공간이 있어 지치지 않게 배려한다. 유쾌하면서 애잔하고, 쓰면서 시리다. 그냥 사람이 사는 이야기다. 하필 주인공이 검사라는 직업을 가졌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신선하고 독특한 드라마일 것이다. 수사를 하면서 사랑을 하는 드라마는 많았다. 수사를 뒤로 하고 사랑만 하는 드라마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아예 사랑부터 하면서 수사도 하는 드라마는 그리 흔치 않았다. 한열무와 구동치, 강수, 문희만은 그런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들일 것이다.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다. 재미가 있다. 그리 강한 인상은 없지만 소소하게 섬세하게 마음의 한 구석을 건드리는 것들이 있다.


기대하지 않았다. 첫회에서는 어느 정도 실망하고 있었을 것이다. 2회는 가능성을, 그리고 3회에서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일상적인 대화와 일상적인 모습들이 검사라는 배경과 범죄라고 하는 사건과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진다. 한 폭의 풍경화처럼. 검찰을 모델로 그린 풍속화였을 것이다. 하늘 아래 어느 곳에서는 우리처럼 그들도 숨쉬고 살아가고 있다.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