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야기가 돌고돌아 여기까지 돌아오는가. 당시 한별을 청부살해했던 빽곰 백상기는 구동치(최진혁 분)을 죽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죽이지 못한 것이었다. 그 전에 강수(이태환 분)를 살리려 그의 뒷머리를 내리친 구동치에 의해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이미 죽은 사람인데 누군가를 죽일 수 있을 리 없다. 그리고 그것은 또다른 전혀 생각지도 않은 진실과 이어지게 된다.
어째서 빽곰은 자신이 살해당한 공장에서 암매장된 시신으로 발견되어야 했던 것일까? 납치를 사주한 누군가가 빽곰의 시신을 발견하고 암매장한 것이라면 굳이 한별과 강수를 납치하여 감금한 그곳에, 더구나 한별의 시신까지 발견된 현장에 범인의 시신을 묻는 무모한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당히 깊이 묻혀 있었는데 살인사건까지 났으면 그만한 작업을 하는데 주위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어쩌면 구동치가 강수를 구하던 당시 아직 한별이 죽은 시신까지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넥타이핀을 고민스레 지켜보던 중년인과 관계가 있을까?
더 많은 상대의 약점을 쥐고 있는 쪽이 이긴다. 누가 범인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확실한 증거와 증인이 있는가도 중요하지 않다. 검찰인 때문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다. 법이 그들의 수단이다. 단지 사건수사에 필요한 넥타이핀과 관련한 자료를 열람하기 위해 확신도 없으면서 일단 횡령으로 영장부터 청구한다. 필요하면 모든 확실한 증거가 갖추어진 상태에서도 용의자를 풀어주고, 또 필요하면 아무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꼬투리를 잡아 구속하고 기소부터 한다. 검사의 수사는 증거를 믿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주 무서운 말이다. 그 믿음을 위해 증거를 만들고, 증언을 유도하고, 관계자를 유인한다. 피해를 당한 일반인의 항의나 고소따위 그저 우습기만 하다.
그런 검찰이니까. 그런 검찰의 고위층을 상대하려는 것이니까. 그래서 문희만(최민수 분)은 일부러 당하는 척 한 발 물러나 상황을 지켜본다. 구동치는 의욕이 넘치고, 한열무(백진희 분)는 사건의 피해자 가족으로서 확실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 어찌되었거나 변호사로서 정창기(손창민 분)는 매우 유능한 인물이었다. 정면으로 붙어서 이기더라도 피해가 크다면 한 발 물러서서 상황을 지켜본다. 그것이 정치다. 자신의 위기조차 강건너 불구경하듯, 돌조각을 던지면 구슬을 얻게 된다. 그런데 백상기를 안다. 스스로 범인이 되어 자수하며 문희만을 배후로 지목했던 가짜 빽곰 백상대 역시 문희만과 아는 사이였다. 이 또한 문희만이 의도한 것이었을까? 죽은 시신에 혼을 불어넣고, 물을 흐려 고기를 잡는다. 주인과 손님이 위치를 바꾼다. 충분히 가능하다.
이종곤(노주현 분)을 잡으려던 것은 어떤 정의감 때문이 아니었다. 이종곤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서로의 약점을 뻔히 아는 상태에서 이종곤을 잡기 위해서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한열무는 알았지만 강수는 몰랐다. 구동치 역시 알지 못했다. 자기에게 주어진 패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틈을 비집고 기회를 만들어낸다. 현직 검사를 노렸다. 그것은 검찰이라는 조직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행동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통화내용을 문희만에게 건넨 순간부터 이종곤을 희생양으로 삼은 화영의 계획은 본격화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말 치밀하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친 장면들이 이런 식으로 퍼즐의 조각처럼 앞뒤 위아래가 정교하게 맞물린다. 화영은 이미 당시부터 문희만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고, 문희만은 그 메시지를 받아 자기만의 패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가장 확실한 패를 뒤에 숨기고 철저히 이종곤을 유인하여 궁지로 몰았다. 검찰국장인 동안에는 어쩔 수 없어도, 일단 피의자의 신분이 되고 나면 이제는 이긴 게임이다. 남은 것은 화영이 원하는 것을 건넨 댓가로 이종곤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일까? 모두가 퇴근한 이후 정창기와 마주하며 나눈 대화들은 소름끼칠 정도로 환멸스럽다. 전율이 일 정도다.
어쩌면 가짜 빽곰 백상대의 자수를 사주한 것이 문희만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위기로 내몲으로써 상대의 오판을 유도한다. 용의자가 되어 취조실에 갇혀 있는 동안 문희만은 사건으로부터 단절된다. 문희만이 사라지면 민생안정팀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민생안정팀이 사라지면 더이상의 사건수사는 불가능하다. 말로써 구동치를 설득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구동치를 움직일 수 없다면 주위의 다른 누군가를 움직이면 된다. 이종곤을 마침내 체포하고 문희만은 한열무에게 원하는 것을 묻는다. 이종곤을 찾아가 대화내용을 녹음한 것에 대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조금은 어설펐다. 그리고 급했다. 하지만 그 방법밖에는 없었다. 문희만이 아닌 구동치와 한열무에게는 더더욱 그렇게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마지막 순간 진실의 문을 연 키워드는 다름아닌 '명예'였다. 영화 '어퓨굿맨'을 떠올린다. 아무런 증거도 증언도 없는 상황에 결국 검사는 피의자인 장성의 명예를 건드려 그를 자극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지금껏 자신이 이루어낸 결과들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자신의 지위와 권력은 그에 대한 보상일 것이다. 그 정의가 지금의 지위와 권력을 더욱 정당화해줄 것이다. 명예가 없을수록.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버려왔기에 남은 그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어떻게 보면 순진하다. 욕망이란 어쩌면 인간의 가장 순수한 본성에 가까울 것이다. 타락이란 바로 그 욕망을 쫓는 과정이다.
검찰총장의 자리까지 거론된다. 물론 드라마적인 설정이다. 검찰총장이라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수천에 이르는 검사들을 이끄는 수장이다. 그렇게 쉽게 결정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단지 욕망이다. 욕망이 이끌리는 인간들과 그 욕망을 이용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다. 결국은 인간이 사는 사회다. 어떤 욕망이 문희만을 그 자리에까지 이르게 만들었고, 그런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다. 어찌되었든 정창기 역시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바라던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 다음은? 개평이 아저씨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화영은 다음 타겟으로 구동치를 겨누고 있다. 선택해야 한다. 3회면 충분히 이제까지의 내용을 뒤집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사건이 흘러간다. 전혀 예상치 못한 용의자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사건은 돌고 돌아 마침내 15년만에 구동치를 살인자로 만들었다. 그 희생자의 가족과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다. 어쩌면 아직 사건이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닐지 모른다. 이종곤도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하고 있었다. 지금의 승리에 들뜨도록 내버려둔다. 짓궂다.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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