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젊다는 이유만으로 추억은 아름답다. 어느날 문득 거울 앞에서 주름과 흰머리를 발견한다. 앞만 보고 달리다가 숨이 가쁘고 힘에 부칠 때 무심코 뒤도 돌아보게 된다. 놓아두고 온 시간들이 지금의 고단함과 앞으로의 불안을 잊을 수 있게 위로가 되어준다.
벌써 그럴 나이들이 되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외계인 취급을 받았다. X세대란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기성세대의 혼란과 고민을 담은 단어였다.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고, 과장님, 부장님, 사장님, 혹은 선생님, 어느새 아이들 속썩이는 것을 고민할 때면 그들 역시 흔한 기성세대가 되어 있었다. 낯선 자신의 모습에 문득 기억에 남은 자신의 오랜 모습을 떠올려 본다.
최근 90년대를 소재로 한 컨텐츠가 다양한 장르와 분야에서 유행처럼 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더구나 90년대는 80년대 이전과는 달리 맺히거나 눌린 곳 없이 풍요와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던 첫세대라 할 수 있었다. 아니 90년대말 IMF가 있었고 그로 인해 많은 것들이 뒤틀렸으니 그야말로 유일한 세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난을 추억하거나 분노를 곱씹을 필요 없이 오로지 그 시절의 기쁨과 즐거움만을 이야기하면 되었다. 그 시절을 겪어봤을 리 없는 젊은 세대들에게조차 크게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지 서로가 누리는 문화가, 일상이 달랐을 뿐이다.
이번 '무한도전 - 토요일토요일은 가수다'편에서 주인공은 어쩌면 'SES'의 슈와 '터보'의 김정남이었을 것이다.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항상 추던 춤인데 이제는 더 이상 몸이 따라주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일상에 치여간다. 아내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세월에 잊어간다.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아진다. 화려했던 지난날의 기억처럼 무대의 설레임이 그들을 들뜨게 만든다. 진심으로 웃고 있었다. 말이 많아지고 있었다. 응원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아직 자신은 꿈을 꿀 수 있고, 그 꿈을 이룰 수도 있다. 비록 그것이 과거의 꿈에 불과할지라도. 내 생에 다시 없을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를 꿈을 위해.
오랜 친구들을 만난다. 잊고 있던, 어쩌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았던 옛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수다를 떤다. 그 시절 하던 놀이들을 떠올리며. 새삼 다시 즐거운 것은 그곳에 잊고 있던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수들도 즐거웠지만 관객 역시 즐거웠다. 가수들 자신이 행복했다면 시청자 역시 행복했다. 시간을 거슬러 가장 소중했던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들과 다시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기억은 원래 시간을 거스르는 기적이다.
세월을 속일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흔적들이 느껴진다. 더 이상 그들은 젊지 않다. 예전의 모습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도 그들과 함께한 기억이 있기에. 그 시간들을 기억하는 자신들이 있기에. 그리고 이제는 그 시간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우리들이 있기에.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게 되었다. 소중한 것들을 되돌린 시간들이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소중한 것들은 여전히 우리들과 함께 있다.
그러고 보면 '무한도전'의 시작과 추억의 끝이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무한도전'처럼 멤버들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자신들을 위한 축제이기도 했을 것이다.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이들과 같은 무대에서 만난다. 누구보다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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