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칙이다. 시청자가 알지 못하는 정보를 작가 혼자 움켜쥐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 내놓는다. 강수(이태환 분)와 한별을 납치했던 범인 백곰 백상기에게는 낯선 사람을 보면 녹음버튼부터 누르고 보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데 왜? 어떤 동기로? 무엇을 위해서? 하기는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면 이미 수사단계에서 그에 대해 언급되고 있었을 것이다.
방법이 없었다. 경험많은 민완변호사와 전직 차장검사가 변호를 맡고 있었다. 화영이라는 이름까지 더해지며 기껏 준비한 증인들의 증언마저 하나하나 무력화되고 있었다. 하기는 확실흔 증거랄 것도 없었다. 증인들의 증언에만 의지해 사건을 재구성해야 하는데 사람의 기억만큼 불확실한 것도 없다. 그리고 사람의 기억보다 더 믿지 못할 것이 사람의 진심일 것이다. 과연 증인의 증언은 진실한가? 그래서 오도정(김여진 분)이나 문희만(최민수 분)이나 자신들에 불리한 증언들에 대해 그 신뢰성 여부를 집중해서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쩌면 다른 의도나 사정에 의해 왜곡되거나 오염된 일방적인 주장일 수 있으므로 채택에 신중해야 한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서로의 증인과 증언에 대한 신뢰성을 문제삼다 보면 결국 범죄사실을 입증하지 못한 문희만과 구동치(최진혁 분)의 패배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일 것이다. 기소한 검사가 범죄사실을 입증할만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해 피고인은 무죄로 판결날 수밖에 없다. 문희만과 구동치가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최광국의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보다 확실한 근거가 필요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들인 강수와 구동치 아버지의 증언마저 무력화된 상황이었다. 가장 확실한 것은 당시 현장에서 최광국이 한 모든 말과 행위를 기록해 놓는 것이다. 예정에 없었더라도 백곰 백상기에게 낯선 사람을 보면 녹음버튼부터 누르는 버릇이 있어야만 하는 이유였다. 처음부터 이것만 확보하고 있었다면 이렇게 길게 끌 필요도 없었던 재판이었다.
재벌기업이 보낸 하수인이 현직 부장검사를 노린다. 확실하지는 않다. 문희만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도 없었고, 오히려 재판 이후 촬영한 듯한 민생안정팀의 단체사진이 3년 뒤에도 버젓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줄곧 입버릇처럼 이야기해온 '죽인다'는 대사나, 자신의 뒷자리에 낯선 사내가 숨어탄 사실을 알고 바로 체념한 표정을 짓던 문희만의 모습은 부정적인 결말을 예감케 하고 있었다. 어찌되었거나 법을 집행하는 현직 부장검사가 재벌의 의도에 의해 멋대로 휘둘리고 끝내 목숨까지 위협받게 된다.
어쩌면 현직검사로서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 최광국을 박만근으로 설정한 이유였을 것이다. 최광국 한 사람만이 아니다. 어떤 특정한 개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상징이었을 것이다. 자본의 힘이 법마저 마음대로 쥐고 휘두르려 하는 현실이었을 것이다. 최광국을 위해 오도정은 차장검사로서 검사마저 그만두고 변호사가 되어 그 변론에 나서고 있었다. 검찰국장인 이종곤이 그를 대신해 죄를 뒤집어쓰려 한다. 법이 자본의 하수인이 되려 한다.
굳이 아직 재판도 끝나지 않았는데 최광국이 자신의 속내를 재판관과 방청객들이 보는 앞에서 문희만에게 털어놓는 장면은 조금 무리수였다. 어떤 개연성이나 디테일보다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집중한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 일단 죄가 입증되고 유죄판결을 받고 나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행복하다. 한열무(백진희 분)와 구동치가 검사와 변호사로 3년 뒤 재판정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아무것도 바뀌는 것은 없다.
쉽지 않은 드라마였다. 평범하게 시작했고, 비범하게 전개되었으며, 탁월하게 절정을 이루다가, 내려올 때는 힘이 빠졌다. 시청자를 놀래키느라 정작 작가 자신마저 방향을 잃고 헤매고 말았는지 모른다. 예정된 결말이었다면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보이는 듯하고, 갑작스럽게 준비했다면 무에서 유를 만드는 노고에 감탄케 된다. 마지막이 조금 아쉽다. 그래도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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