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아이들을 죽이다. 스스로 죄를 지었다. 그래야만 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안되었다. 너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야만 한다. 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그것이 세상이고, 그것이 지혜이고, 그것이 현실이다. 어쩌면 후회일지도 모른다.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지금에 와서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부모의 죄는 그 자식에게로 물려진다. 부모가 갚지 않은 죄가 그 자식에게 빚으로 지워진다. 부모의 죄를 물려받거나, 아니면 자신이라도 부모의 죄를 대신해서 갚거나. 죄를 갚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자신이 그랬듯 자신의 자식 역시 성공한 삶과 함께 죄까지도 물려받기를. 부정과 부패, 편법과 탈법은 기성세대의 방식이었다. 박로사(김해숙 분)는 아들 서범조(김영광 분)까지 자기와 같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것이 무엇보다 자식을 위한 길이다.
송차옥(진경 분)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양심에 솔직한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그녀는 누구보다 잘알고 있었다. 전남편 최달평(신정근 분)이 그 증거였고, 최달평과 다른 선택을 한 자신이 그 증거였다. 그것이 어른들이 만든 세상이다. 그것을 거부하는 순간 최인하(박신혜 분)는 기자라는 자신의 오랜 꿈을 스스로 포기해야만 한다. 기자의 꿈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기자로서의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포기하거나. 그래도 기자라는 직함과 그 보상으로 주어질 영광과 명예는 남게 된다. 어차피 세상이란 그런 것이다. 어머니로서 딸을 위해 하는 말이라는 것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자신처럼 되는 것이 딸을 위한 최선이다.
아니 아니다. 송차옥 역시 알고 있었다. 그것이 결코 딸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신을 위해서였다. 지금껏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것들을 그렇게 허무하게 잃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의 기자로서의 신념과 양심과 바꾸어 겨우 손에 넣은 것들을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딸로 인해 놓아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포기한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들인지. 그러나 되돌리기이기에는 그녀에게 주어진 것들이 너무나 컸다. 차라리 자기가 옳았기를. 아직 젊은 치기와 패기에 분노하고 조롱하는 것은 후회이고 질투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을 꺾음으로써 자기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다.
그래서 딸 최인하가 어머니 송차옥을 대신해서 기자로서의 자신의 꿈과 삶을 건다. 어머니가 그러지 못했기에. 어머니가 위험을 무릅쓰지 못했으니 자식이 어머니의 몫까지 위험을 무릅쓰려 한다. 어머니가 하지 못한 희생을 자기가 대신하려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세상을 위해서. 서범조의 선택이 흥미롭다. 어머니를 부정할 수 없기에 어머니의 방식을 따르려 한다. 그렇다기에는 어머니 박로사를 뒤따르며 핸드폰을 들고 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한다는 것은 고작 물질적인 풍요만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 솔직할 수 있는 보다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일까. 가난했던 시절 분명 우리 사회는 전자를 우선하고 있었다. 최인하는 단지 사랑하고 싶을 뿐이다.
아쉽다면 그럼에도 여전히 진실을 사유화하려는 기하명(이종석 분)의 태도일 것이다. 누구로부터 제보받았든, 그리고 누가 취재한 내용이든, 결국 진실이란 공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어야 할 터다. 언론과 기업이 유착해서 사건의 진실을 흐리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워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었다. 그로인해 한 가장은 자신의 평생을 부정당했고, 그 가족은 오명과 비난 속에 비극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었다. 그것이 과연 기하명과 그 가족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겠는가. 친구인 안찬수(이주승 분)의 누명 또한 벗겨졌으니 더 이상 상관없다는 것인가. 단지 내부고발자인 최인하의 입장을 고려해서 뉴스의 취재와 보도를 보류한다. 아니 아예 모든 증거를 당사자인 송차옥에게 넘겨준다. 최인하를 위해서. 최인하 자신은 결코 그것을 원하지 않고 있음에도.
현실의 이익을 위해 진싫을 왜곡한 기자와 개인의 인정을 위해 진실을 묻으려 한 기자, 과연 이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머니의 일임에도 최인하는 당당히 그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했었다. 하기는 최인하 역시 동기는 자신이 사랑하는 기하명을 위한 속죄였을 것이다. 진실은 결국 당사자의 것이다. 기하명의 것이고, 최인하의 것이고, 따라서 송차옥 역시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선택했을 뿐이다. 자신의 앞에 놓인 여러 사실과 진실 가운데 자기에게 가장 필요한 한 가지를. 물론 의도한 바는 안다. 마지막 순간 송차옥에게 딸 최인하를 위해 희생할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부모가 죽어야 자식이 살 수 있다. 그렇더라도 멋대로 진실을 거래의 수단으로 삼는 기하명의 태도가 불쾌한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모난 돌이 정맞는다. 외눈박이 마을에서는 한쪽눈을 감아야 한다. 바보가 될지언정 미친 놈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제는 어지간한 부정이나 비리는 뉴스조차 되지 못한다. 오히려 당당하다. 모두가 그러고 있다. 전부터 그래왔었다. 공범이 된다. 세습까지 한다. 그에 저항하거나 바로잡으려 하는 시도는 단지 무지이고 어리석음일 것이다. 젊은 순수와 열정마저 꺾이고 짓밟힌다. 학습한다. 학습시킨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기성세대의 죄로 고통받는 젊은세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현실의 구조 역시. 그럼에도 기하명과 최인하는 운이 좋다. 그들을 지켜봐주는 기성세대가 있다. 그들을 지켜주고 이끌어준다.
단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기성세대를 따를 것인가. 기성세대가 이루어놓은 현재이니 마땅히 기성세대의 방식을 따르고 쫓을 것인가. 잘못인 것을 알면서도.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기하명은 송차옥에게 숙제를 내준다. 딸을 대신해 어머니인 자신이 희생하라. 잔인하지만 당연한 요구일 것이다. 송차옥의 죄로 최인하가 희생할 수는 없다. 자신은 결코 최인하를 희생시킬 수 없다. 씨를 뿌렸으면 자기가 거두어야 한다. 냉혹하지만 당연한 원칙이다. 언론의 문제 역시 단순히 기자의 자질만을 이야기할 것이 아닌 그 구조를 보아야 한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잘못된 관행과 인습들이 존재해 왔는가. 그럼에도 단지 어리고 직위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으로 따라야만 했었다.
YGN과 MSC라는 구분은 이제 무의미하다. 그보다는 송차옥과 박로사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와 기하명과 최인하를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의 대립이 강조된다. 그들을 거스를 수 없는 이미 구조속에 편입된 기성의 기자들과 그마저 거스르려 하는 젊은 기자들의 모습이 대비된다. 그들이 꺾이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것이 의도한 바라면.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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