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관련해서 항상 나오는 말이다.
"제발 싸우지 말라!"
그래서 뭘 어쩌라고?
한 가지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가지 가능성 가운데 서로 경쟁하며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싸우지 않는다면 담합해야 할까?
그래서 오죽하면 전정부에서 청와대가 민간인을 사찰한 것을 두고도 야당의 잘못이라 말한다. 법안에는 반대하는데 그것을 반대하는 야당에게 정부의 발목을 잡는다 비판한다. 하기는 세월호 참사에 슬퍼하다가도 조금 소란스러워지니 유가족들더러 참으라 말한다.
밀양 여중생 성폭행사건 당시 내가 가장 경악했던 것이 당시 밀양 시민들의 반응이었다. 피해자가 잘못했다. 경찰마저 그리 말했다 한다. 피해자가 밀양 물을 흐린다고. 조용히 있었으면. 가만히 입다물고 있었으면. 온통 시끄러워지고 밀양의 이미지만 안좋아지니 피해자가 잘못한 것이다. 성폭행한 것이 잘못이 아니라 그것으로 밀양을 시끄럽게 만든 피해자가 잘못한 것이다.
그 이후 밀양출신이라 하면 달리 보게 되었다. 성폭행이야 가장 많이 자주 일어나는 범죄이니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피해자를 그리 여길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을 공공연히 드러낼 수 있더라는 것 역시도. 가해자와 그 가족들, 그들을 지지하던 지인들은 여전히 평온하고 풍요로운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가해자들이 차라리 힘있는 유지의 자식들이 아니라는 점이 충격일 뿐이다. 죄가 일상화되어 있다.
어디 밀양 뿐일까? 일상에서도 흔히 발견한다. 두 사람이 싸움이 나면 시시비비 이전에 싸움을 일으킨 당사자의 잘못이 된다. 잘못이 있어도 눈감고, 죄가 있어도 외면하고, 불만이 있어도 참는다. 그것을 중용이라 착각한다. 그것이 바른 행동이라고. 남들에 폐를 끼치지 않는 올바른 자세라고.
한국사회가 썩는 것은 고여있기 때문이다. 싸우지 않으니까. 다투지 않으니까. 모두가 조용히 있으니까. 억울하게 피해를 입어도 침묵해야 한다. 가족을 억울하게 잃었어도 침묵해야 한다. 모두가 침묵했을 때 이익을 보는 것은 차마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이다.
새삼 떠올리고 만다. 밀양은 예전 장사 때문에도 몇 번 들렀는데 이제는 갈 일 있어도 다른 길로 돌아간다. 충격이 컸다. 이것이 내가 사는 사회인가. 그저 피해자만 안타까울 뿐.
성폭행을 당했어도 피해자가 잘못했다. 신고했으니까. 세상에 알렸으니까. 그래서 시끄러워졌으니까. 진정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른다. 분노조차 잊게 만든다. 우울한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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