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출발부터가 호족들의 연합정권으로 시작되었다. 왕건 자신 또한 송악성주 왕륭의 아들로써 후고구려의 궁예에 귀부해 있던 유력호족 가운데 하나였거니와, 결국 궁예의 폭정에 반발한 호족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궁예를 대신하여 고려의 국왕으로 즉위한 경우였었다.
여전히 유력호족들이 가진 힘은 강력했고, 왕건 자신에게는 그들을 제압할 힘이 처음부터 없었기에 왕건은 이들을 크게 의식하며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다. 당장 후백제의 견훤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라도 충주 유씨 등 이들 유력호족들의 협력은 필수적이었다. 나주를 점령하고 후백제의 배후를 위협할 수 있었던 것도 나주의 호족 오씨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혜종의 모후인 장화황후 오씨가 나주 호족 오다련의 딸이었다.
문제는 후삼국을 통일하고 난 뒤였다. 고려를 건국하고, 왕건 자신이 즉위하고, 무엇보다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호족들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고려의 국왕은 왕건 자신이었지만 후삼국을 통일하고 새로이 한반도의 주인이 된 고려왕조에 있어 호족들의 지분 역시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었다. 자신들의 기여한 만큼의 댓가를 요구했고, 왕건의 적극적인 혼인정책은 그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호족들의 딸로부터 태어난 새로운 왕씨들은 왕씨인 동시에 호족들의 외손이었고, 그것은 호족들로 하여금 왕위계승에 개입할 빌미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것을 힘으로 누르기에는 명분도 힘도 아직 고려왕실에는 너무 부족했었다.
왕식렴이 왕건의 명령을 받들어 백성과 병사를 이끌고 당시 황폐화되어 있던 서경을 개척한 이유였다. 서경은 아직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은 땅이었다. 왕식렴이 이끄는 군사와 백성들은 곧 왕건 자신의 힘일 것이었다. 그래서 실제 고려왕조에서 서경의 지위는 왕도인 개경 바로 다음이었다. 서경으로 천도하려는 시도만도 몇 번이나 있었을 정도였다.
아무튼 원래 왕건이 염두에 두고 있던 후계자는 2황후인 장화황후 오씨의 소생 왕무, 훗날의 혜종이었다. 장남이기도 했거니와 후백제와의 싸움에서 공도 세웠던 혜종이었기에 명분으로 보나 뭐로 보나 후계자로서 결격사유란 없어 보였다. 다만 문제라면 장화황후의 친정이 나주의 호족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황후들의 친정들에 비해 그 세력이 너무 미약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왕건은 배경이 부족한 아들 혜종을 위해 공신인 박술희를 후견인으로 삼았고, 광주의 호족인 왕규는 그 딸을 후궁으로 맞아들임으로써 인척이 되도록 했었다. 그러나 박술희의 무력과 왕규의 세력으로도 그럼에도 3황후인 신명순성황후와 그 소생인 왕요, 왕소 형제를 앞세운 충주 유씨와 서경의 왕식렴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작 박술희는 왕식렴 등의 공격으로 유배되었다가 사사되고, 왕규는 외손자를 왕위에 올리려 난을 일으켰다는 혐의로 역시 주살되었다. 하필 왕규의 난을 진압하려 왕식렴의 군대가 개경으로 들어서던 순간 병석에 누웠던 혜종마저 병사하고 만다. 과연 이 모든 것이 우연이었을까? 개경의 인심이 너무 험악해서 혜종을 이어 왕위에 오른 정종 왕요는 서경천도를 추진하고 있었다. 그 왕요의 뒤를 이어 왕소는 왕위에 오르고 광종이 된다.
다시 말해 태자 시절의 왕소(장혁 분)을 견제하거나 위협할만한 세력은 당시 고려안에는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왕건조차 무시할 수 없는 가장 강력한 호족이 다름아닌 청주 유씨였고, 왕소의 생모가 바로 그 충주 유씨의 신성순명황후였다. 오히려 혜종 왕무에게 왕위를 물려주며 왕건이 가장 신경써야 했던 것도 바로 이들 충주 유씨였었고, 혜종이 즉위하고 왕규가 왕요와 왕소 형제의 야심을 경고했을 때도 벌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딸을 출가시켜 달래야만 하는 상황이었었다. 왕소의 후궁이 바로 혜종의 딸인 경화궁부인 임씨다. 그런데 누군가의 견제로 왕소는 왕궁도 아닌 금강산으로 쫓겨가 거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동복형인 왕요도 아닌 왕소 자신만이. 흥미롭다고 해야 할까?
왕식렴이 서경을 개척한 것은 어디까지나 왕건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자신의 외손자를 왕위에 올리려 했다는 혐의라도 기록되어 있는 왕규와는 달리 왕식렴은 정종 왕요를 왕위에 올린 뒤에도 단지 서경으로의 천도를 추진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기는 왕조란 나라를 세운 건국왕을 시조로 하여 직계로 이어지는 것이다.
다른 형제나 후손이 없다면 모를까, 더구나 왕건의 자식들들은 하나같이 고려를 이루는 유력호족들을 외가로 두고 있었다. 왕식렴의 야심은 현실적이다. 그리고 왕소는 그런 왕식렴과 혜종과의 사이에서 중개역을 맡았을 정도로 친분이 깊었다. 그 친분이 왕식렴의 힘을 빌어 형 왕요를 왕위에 올리고, 마침내 자신이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는 결과로 나타난다. 그런데 왕식렴이 악역이고 왕소와 대립하는 관계에 있다. 차라리 왕규나 박술희를 악역으로 설정했다면 어떨까? 과연 왕식렴의 야망은 어떤 식으로 그려지게 될까?
아무튼 그래서 드라마를 소개하는 문장 가운데 그래서 유독 눈에 뜨이는 단어가 있었다. '판타지 드라마'. 단지 고려를 배경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왕건과 왕소, 왕식렴의 이름을 빌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작가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픽션이다.
언제부터인가 대세가 되어 버린 이른바 '퓨전'이라는 것일 게다. 단지 역사의 설정과 이름만을 밀어 철저히 작가의 상상에 의해 이야기를 구성해나간다. 역사적 맥락이나마 지켜주면 좋으련만 대개는 그마저도 철저히 해체되어 짜맞춰진다. 주인공이 비천한 신분이 되었다가 다시 원래의 귀한 신분으로 돌아오는 설정 역시 이제는 지겨울 정도로 흔하다. 왜 하필 고려였을까? 그것도 가장 혼란스럽고, 그래서 가장 흥미로운 고려건국초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역사드라마가 아니다. 판타지드라마다. 실제의 시대와 인물, 그리고 설정을 빌려 전혀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굳이 역사대로일 필요가 없으며, 당연히 역사와도 맞지 않는다. 인물설정은 진부하다. 왕권강화를 고민하는 부왕 왕건(남경읍 분), 그리고 반항적이며 가친 하류의 삶을 체험한 주인공 왕소, 운명같은 사랑과 그 반대편에 선 또다른 인연들. 왕과 대립하는 권신의 존재 역시 필수다. 필연적으로 주인공과도 대립하게 된다. 처음이었다면 상당히 흥미로웠을 테지만 이미 너무 많고 너무 흔하다. 항상 그랬듯 배우의 매력만이 남는다. 굳이 그 시대 그 인물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
상당히 낯설었다. 어느 시대의 이야기일까? 어디를 배경으로 하고 있을까?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지켜보며 고려가 아닌가 짐작했었다. 설마 고려의 광종이 주인공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오연서가 연기한 신율의 캐릭터는 무척 흥미롭다.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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