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펀치 - 오늘만 살기, 그 남자가 싸울 수 있는 이유

까칠부 2015. 1. 21. 04:03

영화 '아저씨'에서 주인공 차태식은 옆집 여자아이 소미를 납치한 장기밀매범들에게 이렇게 경고하고 있었다.


"너희는 내일만 보고 살지? 내일만 보고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에게 죽는다. 나는 오늘만 산다! 그게 얼마자 좆같은 일인지 내가 보여줄게"


처음 오르는 산은 낯설고 두렵기까지 하다. 날마저 어두우면 불안에 생각까지 많아진다. 길이 거칠고 험할수록 더 쉽고 더 편한 다른 길은 없을까 궁리하게 된다. 그저 지금 자신이 걷고 있는 길만을 주욱 따라가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을.


사람이란 어쩌면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앞도 제법 멀리까지 볼 수 있고, 뒤도 당연스럽게 돌아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자기가 서 있는 그곳만큼은 어떻게 해도 볼 수가 없다. 지금까지 자기가 온 거리로 가늠하고, 앞으로 목적지까지 가야 할 거리로 대충 미루어 짐작한다. 단지 지금이란 과거와 미래를 잇는 과정이며 그 수단에 불과하다.


이태준(조재현 분)을 막아야 한다. 검찰내 모든 비리와 부조리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이태준을 잡아야 숙원인 검찰의 개혁도 이룰 수 있다. 이상은 너무나 고매하고 순결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 뜻에 동참했었다. 7년 전의 박정환(김래원 분)도 그런 한 사람이었었다. 정국현(김응수 분)도, 신하경(김아중 분)또 그렇게 자연스럽게 윤지숙(최명길 분)의 주위로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아직도 이호성(온주완 분)은 그런 윤지숙의 이상을 믿고 따르려 하고 있다. 


하지만 너무 멀리 보았다. 너무 크게만 보려 했었다. 그 사이의 과정들은 무시되었다. 자신이 직접 딛고 지나가야 할 과정들이 너무나 멀고 크기만 한 목적지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유마저 잊어버렸다. 어째서 그곳에 가려 하는지. 무엇때문에 그토록 간절히 그곳에 가고자 하고 있는 것인지. 어쩌면 윤지숙 자신이야 말로 법과 정의, 무엇보다 검찰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기여야만 한다. 오로지 자신이어야만 한다. 자신이 아니면 안된다. 법도, 정의도, 검찰로서의 신념이나 양심도 아닌, 그곳에 가야만 하는 자기라는 당위였다. 어떻게든 그곳에만 도착할 수 있으면 나머지는 단지 그를 위한 과정이 될 것이다.


아직 젊고 순수한, 더구나 실력까지 갖춘 박정환과 같은 후배들을 위해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미래를 만들어주는 것 역시 하나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법의 정의다. 검찰의 신념과 원칙이다. 당장은 이태준과 같은 부패한 검사들이 득세할지 몰라도 박정환이나 이호성과 같은 젊은 검사들이 그런 자신으로부터 진정한 검사의 자세를 배우고 따른다면 언젠가 검찰은 자신이 바라는데로 바르게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이란 오늘 내딛는 한 걸음의 연장이지 오늘을 건너뛰고 도착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정환이 이태준에게 말하고, 실제 복도에서 이태준과 마주치며 한 걸음을 내딛은 이유였을 것이다. 어차피 그보다 뒤의 내일은 없을 것이기에 딱 그 만큼만 한걸음씩 걸으려 한다.


이태준과 그의 형 이태섭(이기영 분)이 안경점에서 나누던 대화 역시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죄란 아무리 악인이라 할지라도 부담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다. 깨끗해지고 싶다. 맑은 곳에서 살고 싶다. 하지만 내일이다. 오늘은 아니다. 당장 내일을 위해서 오늘은 그렇게 살 수 없다. 지난 과거의 시간들을 위해서라도 오늘을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서로를 위해서. 자랑스러운 동생을 위하고, 사랑하는 형을 위해서. 심지어 동생을 위해 스스로 목숨까지 끊어 희생하는 이태섭의 모습에서 악인에게 어울리는 어떤 악의와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있었는가. 김상민(정동환 분) 회장의 재산을 탐내고, 박정환에게 죄를 씌워 감옥에 보내려는 이태준의 행동 뒤에는 자기를 위해 희생한 형과 가족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숨어 있었다. 악이란 과연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가. 윤지숙은 이태준과 닮아가고, 이태준은 더 악해진다.


오늘만을 산다. 오늘만을 생각한다. 오지 않을 내일에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지금 바로 여기, 지금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딸 예린(김지영 분)만을 생각한다. 사랑하는 딸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만을 생각한다. 7년 전 윤지숙의 선택을 거듭 돌아보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자신을 위해 법을 어기고 검사로서의 양심과 신념까지 저버렸다. 아들이 만일 그 사실을 뒤늦게라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다행이라고, 당연한 것이라고 그렇게 여기고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윤지숙 자신이 바라던 바였을까? 자신이 존재하는 미래였다. 자신에게 속한 미래였다. 딸을 어떻게든 강제로라도 외국인학교에 입학시키려 하던 박정환 자신처럼.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승진도, 징계도 전혀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아무리 크게 출세해봐야 몇 달 뒤면 어차피 세상에 자신이란 사람은 없다. 한 가지만을 생각한다. 자기가 살아서 끝까지 이루어야 할 오로지 한 가지만을 생각하려 한다. 그래서 거칠 것이 없다. 내일을 두려워한다. 내일을 탐내기에 거꾸로 내일을 잃을 것을 걱정하고 근심한다. 그것이 그들을 약하게 만든다. 이태준을 함정으로 밀어넣는 것도 그같은 내일에 대한 탐욕과 근심이었다. 자신의 손에 쥐어진 듯하던 청와대가 한순간에 멀어지고 말았다. 청와대라는 높고 큰 대상만을 바라보다 보니 그것이 사라진 빈자리가 무서울 정도로 허무하다. 내일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조강재(박혁권 분)와 이태준의 사이를 갈라놓는 빌미가 되었다.


여러가지로 많은 것들을 생각케 하는 의미심장한 설정과 내용들일 것이다. 하필 박정환이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는 이유. 그런 박정환의 마지막 꿈을 막아서는 현실의 장애물들. 윤지숙의 이상이 타락하고, 이태준이 점점 더 큰 악으로 빠져드는 과정들 역시. 아무도 진실을 알지 못한 채 단지 이미지만으로 이태준과 조강재를 영웅으로 떠받들며 환호한다. 현실의 정치를 떠올리게 만드는 장면들이 적지 않다. 더 큰 악과 그를 견제하기 위한 또다른 악. 이태준으로 인해 윤지숙은 존재한다. 대안이라 여겼지만 그것은 단지 모습만 바뀐 다른 악이었다. 그럼에도 처음 가졌던 희망과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이호성은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고 만다. 선택하고 만다. 현실의 악이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가. 자신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부분부분 허술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개연성이라는 점에서 약점이 아주 없지는 않다. 하지만 매우 직관적이며 상징적이다. 시청자의 일상적인 감성을 직접 겨냥한 상투적인 요소들이 불필요한 고민이나 혼란을 건너뛰도록 한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이것이 바로 자신들이 사는 현실이며, 자신들의 자화상일 것이다. 박정환이 이겨야만 하는 당위다. 드라마를 보는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정의가 승리하는 것을 보고 싶다. 패배가 너무나 익숙해 있다. 윤지숙의 타락을 옆에서 돕고 있는 이호성처럼 어쩌면 정국현이나 신하경도 끝내 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여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환은 승리한다. 삶처럼 드라마도 곧 끝이 난다.


현실에 대한 불신일 것이다. 법과 정의에 대한 회의일 것이다. 부쩍 검찰의 불편한 현실을 다룬 드라마가 늘고 있다. 법이 정의롭지 않음을 보여주는 드라마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의는 승리한다. 어쩌면 공허할 것이다. 박정환은 아프다. 세상이, 자신이 아프다.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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