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출산기피의 이유 - 예전엔 다 그렇게 낳고 길렀다!

까칠부 2015. 2. 8. 01:30

예로부터 부모 - 특히 어머니의 은혜를 이야기할 때 항상 빼놓지 않는 것이 낳고 기르는 어려움이었다. 뼈가 삭고 관절이 녹는다. 그렇게 힘들게 어머니는 나를 낳고 길러주셨다. 그 은혜를 잊을 것인가.

 

말 그대로다. 남성이거나 아니면 아직 출산전인 여성의 경우는 실감하기 힘든 이야기일 것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게 그리 힘든가? 그래서 대부분 남성들이 출산과 육아에 힘들어하는 여성들을 타이르며 하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예전 어머니들은 지금보다 더 힘들고 없이 살면서도 다 애들 잘 낳고 기르고 했었다."

 

산후조리원도 그래서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들이 적지 않다. 애 낳는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런 유난까지 떠는가? 얼마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전업주부의 어린이집 이용에 차별을 두겠다고 발언한 것도 그 연장이다. 집에서 애나 보는 주제에 뭐가 힘들다고 어린이집씩이나 보내려 하는가?

 

하지만 과거 어머니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나마 아이를 낳아야지만 주위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었다. 여성이란 단지 자궁이었다. 자식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다. 아들을 낳으면 대우받고, 아들을 낳지 못하면 심지어 쫓겨나기도 했다. 자식에게 기대는 것만이 유일한 노후대책이었기에 생존을 위해서라도 아이를 낳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렇게 배우고 길러졌다. 과연 당시 어머니들에게 아이를 낳을지 여부를 선택할 권리를 주었을 때도 어머니들은 아이를 낳았을 것인가.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 직장도,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 온 경력도, 그리고 미래도. 어쩌면 목숨을 걸어야 할 지도 모른다. 일상의 불편함은 상수다. 외출조차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에 비해서 과연 여성들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엇일까? 자궁이 아닌, 모성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그렇게까지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각오해가며 아이를 낳아야 할 이유란 무엇이겠는가?

 

어차피 회사에서 하는 일도 과거에 비해 더 쉽고 간략해진 것이 많다. 주산으로 셈을 맞추어 볼 이유도, 일일이 표를 손으로 그려야 할 이유도, 필요한 서류를 들고 이 부서 저 부서 옮겨다녀야 할 이유도 없다. 인류의 문명은 결국 더 쉽고 더 편한 방향으로 발전해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 현실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굳이 출산만은 과거의 방식을 답습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더 쉽게. 더 편하게. 더 즐겁게. 아이를 낳는 고통이나 어려움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그로 인한 희생이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주위에서 노력한다. 아이를 낳는 것이 굳이 큰 각오까지 필요로 하는 일이 안되도록 충분한 여건을 마련해준다. 그러고서도 안낳는 것은 여성의 권리다. 어떻게 설득하고 유인할까를 고민해야지 윽박지른다고 낳기 싫은 것을 낳고 싶어질까?

 

무상복지라 한다. 복지가 공짜여서는 안된다. 하지만 아무리 적은 비용이라도 내 돈 들여가며 하기에는 출산이란 너무 큰 희생과 각오를 필요한다.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다. 하지만 알아서 해결하라. 출산대책이라고 떠들어대는데 근본은 그냥 전처럼 각자 알아서 잘. 누구를 탓할까? 그런 여론을 만들고 정책을 압박하는 것이 바로 국민들인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쉬워지면 된다. 편해지면 된다. 힘들거나 어렵지 않으면 된다. 비싸지도 않다. 오히려 이익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까지는 싫다. 그럼 그대로. 알지만 하기 싫다. 어쩌겠는가.

 

출산률은 떨어지고, 생산인구도 줄어들고, 노인만 늘어나고 있다. 10년 뒤, 그리고 100년 뒤, 하기는 나랑은 상관없는 얘기다.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을지 어떻게 알고. 그렇게 생각하던가. 현실일 것이다. 대책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