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 - 김현숙의 착각 '한 번에 될 줄 알았어!'

까칠부 2015. 3. 13. 03:46

무언가 숨겨진 내막이 있었을 것이다. 자기에게 준 반지라는데 정작 강순옥(김혜자 분)은 그동안 장모란(장미희 분)에게 그것을 돌려줄 궁리를 하고 있었다. 감정도 받기 전인데 장모란이 내놓은 반지를 보며 통쾌한 웃음을 짓고 있기도 했었다. 어째서 강순옥은 장모란의 반지를 보고 가족회의까지 열어 그것을 공개할 생각을 했었던 것일까?


짓궂다. 수십년만의 만남이었다. 기억을 잃었었다. 죽은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다시는 못만날 줄 알았던 두 사람이 - 그것도 부부가 운명적으로 다시 만나려는데 그만 신문지가 바람에 날려 강순옥의 얼굴을 가려 버린다. 승자의 우월감을 만끽하며 외출하던 강순옥의 후련한 웃음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위해서는 그만한 과정들이 필요하다.


희망이 없었다. 아니 없는 줄 알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의미없는 시간만을 보내왔었다. 나중에라도 퇴학을 다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만 알았더라도. 아주 늦게라도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만이라도 그녀에게 남아있었더라면. 그러나 누구도 그녀에게 그런 것을 말해주지도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이제와서 나현애(서이숙 분)에게 복수하고, 자신의 삶을 찾으려 해도 그 방법조차 자신은 전혀 알지 못한다. 뒤늦게 무언가를 시작해보려고 하니 절망과 후회 뿐이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그동안 나현애(서이숙 분)를 원망해왔다. 모든 것은 나현애 때문이었다고. 나현애가 자신의 삶을 이렇게 망쳐놓았다고. 하지만 자신의 선택이었다. 자신의 삶이었다. 자신이 방치해버린 시간들이 다시 나현애를 통해 그녀에게로 돌아온다. 한 번이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다른 사람으로 인해 부당하게 비틀려버린 시간이었으니 일단 시작만 하면 다시 원래대로 모든 것이 바로잡힐 것이라고. 그러나 그 이후의 시간들은 자신의 몫이었다. 자신의 책임이었다. 과거 유일하게 자신의 편을 들어주었던 이문수 기자의 아들이며 딸 정마리(이하나 분)와도 알고 지내는 방송국PD 이도진(김지석 분)를 떠올려 보지만, 그러나 이도진은 그녀가 증오해마지않는 나현애의 의붓아들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신뢰가 깊다.


과거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과거의 기억만으로는 그 무엇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억울해도, 그래서 아무리 그 상처가 아프고 쓰려도, 그러나 지금은 지금의 자신으로써만 맞이해야 한다. 어쩌면 남편 정구민(박혁권 분)이 그녀를 너무 사랑했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나칠 정도로 그녀를 감싸고 지키려고만 했었다. 얼마나 세상이 냉정한가를 알았어야 했다. 개인의 사정따위 일일이 생각해주기에는 냉혹할 정도로 무심하다. 아무리 무릎꿇고 사정한다고 한 번 폐지된 강의가 그리 쉽게 다시 열리지는 않는다. 


과거는 지금이 있기에 과거다. 지금이 과거를 정의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자신의 기억이 얼마나 옳고 얼마나 정당한가를. 억울하기도 하다. 전혀 다른 문제다. 도박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은 사실은. 하지만 그 사실 하나가 지난 수십년간 사무치도록 간직해 온 자신의 억울함과 분노를 아무 가치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남에게 기대고, 과거의 기억에만 탓을 돌리며, 정작 자신은 어디에도 없다. 남편 정구민이 뒤늦게 대학입시를 준비하자 말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아내 김현숙에게 '지금'과 '여기'를 만들어주고 싶다. 자신은 지금 어디에 있고, 누구와 함께 있으며, 그런 자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선생님이다. 어쩌면 그 말이야 말로 지금 자유라는 이름으로 혼자서 방황중인 정마리를 위한 키워드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엇이 되고 싶은가. 자기는 누구이고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도진과는 방송프로그램을 함께 하고 있다. 제법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엄마 김현숙을 계기로 만나게 된 왕따당하는 학생 국영수(채상우 분) 역시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다. 엄마의 상처를 이해하게 된다면 결심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까? 유치할 정도로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아직까지는 검도관 사범 이루오(송재림 분)가 이도진보다 한 발 앞서 있다.


멈췄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각자 흐르는 시간속에 선택을 한다. 과거가 아닌 현재를 위해서.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서. 오랜 숙제처럼 김철희(이순재 분)는 기억을 찾으며 자신의 옛집을 찾아온다. 마침 집을 팔기 전이다. 새로운 오해가 서로 엇갈리고 있던 순간이다. 순탄치 못한 만남이었다. 정구민이 김현숙의 손을 잡는다.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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