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 - 김현숙의 잃어버리지 않은 시간들을 위해

까칠부 2015. 3. 19. 03:30

대강의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다. 엄마 김현숙(채시라 분)은 고등학교 시절 담임이던 나말년(서이숙 분)의 편견과 차별로 인해 3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고통속에 살고 있다. 검도관에서 만난 검도사범 이루오(송재림 분)은 정마리(이하나 분)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학생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운다. 엄마 김현숙으로 인해 만나게 된 또다른 인연인 국영수(채상우 분) 역시 무작정 그녀를 찾아와 의지하려 하고 있다. 과연 학창시절 담임선생님으로 인해 입어야 했던 상처와 고통을 되갚아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란 무엇이 있을까?


미술전시회에서 만난 나말년이 김현숙에게 던진 가시돋힌 독설들은 그러나 한 편으로 현실이기도 했을 것이다. 어째서 김현숙이 학교에 낸 퇴학무효신청탄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는가. 당시의 퇴학처분은 오해로 말미암은 잘못된 것이었다. 억울하게 퇴학당한 것을 무효로 돌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서 학교로 돌아가서 무엇을 어쩌려는가. 사람마다 각자 자기만의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 사정까지 일일이 다 살피기에는 사람도 너무 많고 세상도 너무 복잡하다.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시작이 어떻고, 과정이 어떻고,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김현숙 자신은 어떻게 살았는가?


자기가 자기를 증명해야 한다. 자기의 의지를. 자기의 선의를. 자기의 노력을. 자기의 가치를. 나말년이 김현숙을 그토록 혐오하고 증오하는 이유다. 자신을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지금의 위치에까지 올랐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누구도 반기지 않는 막내딸로 태어나 천덕꾸러기로 자라면서도 혼자의 힘으로 지금의 위치에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현실이란 그렇게 각박하고 치열한데 어째서 김현숙은 여전히 그처럼 순진하고 태평한가. 도대체 그도안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해왔는가. 어떻게 살았는가. 자신이 옳았음을 확인한다. 김현숙과 같은 아이는 전장과 같은 세상에서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 김현숙 자신이 그것을 입증해준다.


하지만 김현숙이라고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사랑도 했다. 결혼도 했다. 아이도 낳았다. 김현숙의 순수한 선의가 장모란(장미희 분)의 호의를 이끌어내었다. 돌아간 아빠의 애인이고, 한때 자신을 사랑한 남자의 딸이라는 어색한 관계에도 두 사람은 마치 친구처럼 허물없이 어울리고 있다. 남편 정구만(박혁권 분) 역시 그녀를 위해 다시 대학입시를 준비하려 한다. 그녀는 홀로 서야 했었다. 홀로 당당히 세상과 마주해야 했었다. 지나치게 그녀를 보호하려 했었다. 이제 딸 정마리가 김현숙이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녀의 오랜 상처를 치유하려 한다. 그렇게 여긴다. 결국 가장 가치있는 것은 진심이고 사랑이었다. 진부하지만 역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온 시간들이었다.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승리인가.


오히려 강순옥(김혜자 분)이 오래전 바꿔친 반지로 인해 장모란의 태도만 더 당당해졌다. 빚을 졌다고 생각했다. 가정이 있는 남자에게 기대며 기대하도록 만들었다. 아내와 딸들을 배신하고 자신에게 반지를 건네며 청혼까지 하고 있었다. 청혼을 거절한 탓에 어쩌면 강순옥의 남편 김철희(이순재 분)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작 김철희가 청혼하며 건넨 반지가 가짜였다. 진짜는 강순옥에게 있었다. 농락당한 것 같은 분노와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혼란, 무엇보다 김철희가 여전히 강순옥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질투와 함께 안도감을 느낀다. 어차피 김철희가 사랑한 것은 아내 강순옥이었다. 아이러니다. 당장은 강순옥이 승리한 것 같았는데 오히려 과거 자신이 바꿔친 반지로 인해 패배감만 더 커진다.


역시 드라마에는 사건이 필요하고, 사건이 일어나려면 계기가 될 중심인물이 필요하다. 김현숙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오래전 담임이던 나말년과의 악연이다. 강순옥과 장모란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이끌어가는 것 역시 두 사람이 사랑한 남자 김철희와의 오랜 기억들이다. 그렇다면 강순옥과 김현정(도지원 분), 김현숙, 정마리, 그리고 김현숙의 남편 정구만과 기억을 찾아가고 있는 김철희 모두를 하나로 엮을 수 있는 사건은 무엇일까? 나말년은 이문학(손창민 분)을 통해 김현숙과 김현정을 이어준다. 강순옥의 레시피를 훔치고, 김현정의 지갑에 손을 댄다. 강순옥의 조수 박은실(이미도 분)의 비틀린 내면이야 말로 그를 위해 필요한 장치이지 않았을까. 사소하지만 박은실의 악의는 분명 강순옥과 가족들을 향하고 있다.


안국동 강선생과 인기 아나운서 김현정, 그리고 대학교수(라고 알고 있는) 정마리, 김현숙의 존재는 아직 모른다. 정마리가 김현숙의 딸이라는 것 역시. 단지 부모와 언니와 딸만으로 지레 단정짓는다. 인간의 의식이란 어쩌면 이렇게 천박하다. 그토록 혐오하고 경멸하던 김현숙이 자신이 그토록 명문가라 칭찬한 집안의 딸이었다. 하기는 정마리는 아직 대학교수가 아니다. 강사자리마저 강의가 폐지되는 바람에 그만둔 상태다. 대학교수라고 알고 있을 때와 강사마저 타의로 그만둔 상태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의 표정은 어떻게 바뀔까?


마침내 김현숙의 이야기가 나말년 - 아니 나현애의 의붓아들 이도진에게까지 전해진다. 아직 모든 사실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토록 믿고 따르던 사랑하는 어머니다. 이문학 역시 김현숙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여곡절이 많다. 무려 30년이 넘는 시간을 다시 되돌리는 작업일 것이다. 정마리와 이루오의 솔직하지 못한 답답한 관계는 과연 어떻게 진행되어 갈 것인가. 김현정과 이문학도 비로소 출발선에 서려는 모양이다. 어느것 하나 쉽지 않은 이야기들이 한 발 씩 조심스럽게 떼 나간다. 부디 모두에게 행운이 따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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