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방점이 중요한 것이다. 액센트를 어디에 두는가. '이혼변호사'가 아니었다. '연애중'이었다. 이혼은 단지 거들 뿐이었다.
신선했다. 시작은 조금 진부했다. 과거 상사와 부하직원이 어떤 사연들로 인해 입장이 역전된 채 다시 만났다. 캐릭터가 설정을 살렸다. 단순한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가 아니었다.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악덕상사와 사사건건 그 상사에게 딴지를 거는 건방진 부하직원이었다. 다시 한 번 입장이 역전된 상태에서 충돌이 예상된다.
확실히 고척희(조여정 분)의 캐릭터는 한국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것이었다. 물론 바탕은 선하다. 아버지와 여동생을 끔찍이 생각한다. 의뢰인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다만 그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된다. 재판에서 이길 수만 있으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용한다. 그런 자신에 대한 신념에 가까운 확신이 타인에 대한 억압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그것을 드라마는 변호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어머니의 치료비로 대학등록금을 내는 장면으로 압축해 설명하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여자아이가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희생해야 하고 어떤 것들을 각오해야 하는가. 악한 것이 아니다. 독한 것이다.
어머니의 치료비로 대학등록금을 냈기 때문에. 그만한 희생을 치렀기 때문에. 차라리 여동생 고미희(김열 분)가 찾아와 자신을 비난하고 돈까지 가져가는 것은 그에 대한 징벌일 수 있었다. 죗값을 치르는 것 같았다. 여동생에 대한 걱정도 있을 테지만 그보다는 그것은 자신을 향한 위로였다. 고척희가 어쩌면 마지막에 상대해야 할 과거 그녀를 이용했고, 지금의 곤란한 처지로 내몰리는 원인을 제공했던 한미리(이엘 분)의 감춰진 사연 역시 아마 그런 종류일 것이다. 포기할 수 없기에 억척스레 어떻게든 꿈을 잡으려 한다. 죽을 수는 없기에 어떻게 해서든 삶을 부여잡으려 한다. 그러면서도 웃을 수 있다는 것이 고척희의 장점일 것이다. 어느 순간에든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것을 놓지 찮는다.
드라마가 재미있는 이유일 것이다. 상당히 굴욕적일 수 있는 상황인데도 고척희는 언제나 꿋꿋하다. 좌절하지도 않고, 주눅들지도 않는다. 숨지도,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 후련할 정도로 저돌적이고 통쾌할 정도로 직선적이다. 실패도 하고 실수도 저지르지만 그런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도 있다. 항상 침착하며 조심스러운 소정우(연우진 분)와 정확한 대비를 이루며 드라마를 이끌어간다. 무모할 정도로 정면으로 달려가는 고척희를 붙들어 세우는 것은 소정우의 몫이다. 조심스러운 것이 지나쳐 머뭇거리는 소정우를 이끌고 달려가는 것도 고척희의 몫이다. 두 사람에게는 가장 큰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인정을 안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 대상이 이혼을 고민하며 상담하러 오는 의뢰인들이다.
이혼이란 과연 부정적이기만 한 것인가? 아니면 반드시 긍정해야만 하는 것일까?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맡은 사건을 그에 대한 메시지였을 것이다. 어머니와 딸이 차례로 변호사 소정우를 찾아와 이혼에 대한 상담을 한다. 단지 밉게 보려 하기에 미운 것일 수 있다. 오랜 세월 자식들을 위해 참고 살아왔으니 이제는 조금 더 자신에 솔직해져도 좋지 않을까. 아직 기회가 있다면 서로를 위해 조금 더 노력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면 이혼 또한 자신과 서로를 위한 한 방법일 수 있다. 실제 소정우의 어머니 역시 아버지와의 이혼에 대해 묻는 아들의 물음에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은 것 같다며 밝게 대답하고 있었다. 과연 소정우와 고척희 두 사람이 만나게 될 결혼과 부부와 가족, 그리고 이혼이란 어떤 것들일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이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닫게 될 무언가도 기대하게 된다.
다만 그럼에도 방점이 '이혼변호사'가 아닌 '연애중'에 찍혀 있기에 4회라고 하는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분량이 거의 인물들의 캐릭터와 서로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거의 할애되고 있었다. 고척희와 소정우의 악연에 대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다 하더라도 굳이 조수아(왕지원 분)가 자신의 집마저 팔아 소정우의 로스쿨 비용을 댄 것은 차차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밝혀졌어도 좋았을 것이다. 한미리와의 관계 역시 소정우와 지금과 같은 관계역전이 일어난 과거의 계기로써 조금씩 단서를 풀면서 전개해나가는 편이 긴장감이나 흥미면에서 더 나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까지 주된 줄거리는 이혼변호사 소정우와 전이혼변호사 사무장 고척희가 맡아 해결해야 하는 이혼의뢰들일 것이다. 일단 의뢰를 받아서 주를 넘기게 되면 사건이 커지거나, 아니면 관심의 밀도가 약해지게 된다. 비중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너무 분명한 것이 아쉽다. 인물들간의 관계가 처음부터 너무 확실하게 드러나 있다. 그나마 변수라 한다면 한미리의 과거와 봉민규(심형탁 분)의 고척희에 대한 감정일 것이다. 봉민규와 봉인재(김갑수 분), 소정우, 그리고 고척희의 사이에서 조수아의 역할 역시 기대된다. 봉민규와 봉인재 사이의 완충역할이면서, 소정우를 사이에 두고 고척희와 삼각관계까지 이룬다. 하지만 너무 전형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뻔한 그림이 그려지는 것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누구와 만나고 어떻게 만나는가. 하지만 한국의 보편적인 대중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친절은 필수일 것이다. 어차피 사랑하게 될 것이면 철저히 주인공의 캐릭터와 그 주변의 관계에만 집착하는 것도 좋다.
기대했던 전문 변호사드라마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혼이라고 하는 예민할 수 있는 현실의 주제를 더욱 집중해서 전문적으로 다루는 드라마는 당연히 아니었다. 다행히 이혼이라는 소재를 단순히 흥밋거리로만 말초적으로 다룰지 모른다는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나름대로 진지하다. 깊이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역시 고척희와 소정우라는 서로 상반된 개성과 매력을 지닌 인물들이 서로 만나고 사랑하며 헤프닝을 일으킨다. 그들이 마침내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이 있다. 통속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쉽게 TV앞에 앉을 수 있는 것이다. 아무런 별다른 노력 없이도 익숙한 이야기들이 익숙한 재미와 함께 익숙하게 보여진다. 그 과정에서 이혼과 변호사라고 하는 전문적 소재는 흥미로운 반찬이자 양념이 된다. 주식은 아니다.
개성적이다. 흥미롭다. 그러나 조금씩 아쉬워진다. 특히 두 주인공은 매력적이다. 캐릭터의 강한 개성과 매력이 드라마를 이끌어간다. 짐이 무거울 수 있다. 아직은 수월하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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