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 드러나는 한정호의 본질, 권력의 현실

까칠부 2015. 4. 29. 04:38

그야말로 권력의 허위와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합리란 절차이며 이성이란 단지 규범이 지나지 않는다. 독재자의 마지막 무기는 다름아닌 준법이다. 법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규범적 정의가 법을 마음대로 만들고 주무를 수 있는 독재자의 권력마저 지키게 된다. 법에 대한 복종은 법을 만든 권력에 대한 복종이기도 하다. 권력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새롭게 법을 만들고 엄격하게 적용함으로써 법의 권위를 빌어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시도가 그래서 역사상 흔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이제 믿을 것은 법이라는 이름의 강제와 폭력이다.


아버지로서의 권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아들은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다. 아버지를 신뢰하지도 않는다. 기껏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만들었는데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아들 역시 전혀 어떤 말도 들으려 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말도 없었다. 어떤 기대도 없이 일찍 자리에서 일어날 궁리만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고작 아들이 다니는 대학의 특정 교수와의 개인적인 인연을 강조하거나, 최고급 와인을 수입하는 친척의 이름을 들먹이며 그 권위를 빌고자 초라한 시도를 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결국 자신의 잘못이었다. 아버지의 법은 정의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법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부당하게 고통받고 있었다. 억울하게 피해입고 있었다. 더구나 한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결코 있을 수 없는 추문의 주인공마저 되고 있었다. 아버지를 믿을 수 없다. 아버지를 인정할 수 없다. 그런 아버지를 아내로서 어머니는 지켜야만 한다. 사라진 신뢰는 복종으로, 잃어버린 애정은 공포로써 대신한다. 엄격한 격식과 예법으로 행동과 사고를 제한하고, 추방을 앞세우며 장차 자신이 잃게 될 것들로 압박한다. 그러므로 현실적인 이유들을 위해서라도 아들은 아버지인 자신을 따라야 한다. 비루한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조건과 댓가를 주고받는 거래관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로서 자신의 권위를 되돌리고 싶다. 그렇게밖에 지금 아버지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다.


궁지에 몰린 것이다. 여유가 사라졌다. 그동안도 여러차례 그런 모습을 보여왔었다. 자기뜻대로 되지 않을 때 항상 폭주하고는 했었다.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성적인 척, 합리적인 척, 관용적인 척, 그러나 그의 본질은 오만하고, 독선적이고, 편협하고, 무엇보다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비열하고 난폭하다. 다만 그같은 자신의 본질을 가릴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이 그에게는 있다. 굳이 자신이 직접 나서거나 손발을 더럽힐 필요 없이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과 수단이 그의 주위에는 얼마든지 있다. 그것이 권력이다. 자신을 대신해 오물에 뒹굴고, 혹시라도 묻거나 하면 역시 대신해서 깨끗이 닦아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신은 언제나 깨끗한 채일 수 있다. 단지 그것이 깨졌다.


억울할 것이다.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봤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필사적으로 싸워봤었다. 그러나 어떻게해도 작은 상처조차 입힐 수 없었다. 오히려 상처만 더 커지고 고통만 더 길어질 뿐이었다. 그래서 포기했었다. 그래서 아예 기억에서마저 지우려 했었다. 그런데 고작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조카가 그의 아들과 결혼했다는 그 한 가지 사실 때문에. 그 대단한 한송의 한정호(유준상 분)가 흔들리고 있었다. 아들 한인상(이준 분)과 지영라(백지연 분)와의 문제로 한정호가 흔들리는 사이 그 틈을 노려볼 수 있게 되었다. 아들 한인상을 통하지 않고는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인가. 무력감과 동시에 그래도 이번에는 무언가 해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생긴다. 딸 서봄(고아성 분)에 대한 걱정과 동생 서철식(전석찬 분)에 대한 이해의 사이에서 서봄의 부모들은 갈등한다. 혈연인가, 아니면 동질에 대한 연대인가. 서누리(공승연 분)조차 말과는 달리 전혀 냉정해지지 못하고 있다.


힘에 굴복한 복종이란 딱 거기까지에 불과하다. 하물며 자기의 힘도 아니다. 다른 누군가의 힘을 빌어 상대를 찍어누르려 할 때 과연 그 마음까지 얻어낼 수 있을 것인가. 아무 가치도 없는 상대라면 그것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최연희(유호정 분)라면 그런 이비서(서정연 분)라도 크게 상관없을 것이다. 굳이 진심이 아니더라도 최연희에게는 이비서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들을 얻어낼 수 있는 수단들이 처음부터 주어져 있다. 그녀의 출생이며, 그녀의 지금 신분이다. 하지만 서봄은 아니다. 그녀에게는 아직까지 이비서의 진심어린 협조가 필요하다. 최연희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복종하면서도 퇴직금의 자릿수만을 언급하는 집사부부의 태도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을 것이다. 그조차도 편법을 사용해서 아끼려는 한정호의 태도가 틈을 만들지 않을까. 끝까지 유신영(백지원 분) 변호사를 비주류로 방치하는 한정호의 태도가 그녀로 하여금 다시 민주영(장소연 분)과 손잡게 만들고 있었다.


왕의 실정과 세자의 반란은 결국 왕후를 섭정으로 만들었다. 왕은 권위를 잃고, 세자는 왕조의 안정성을 흔든다. 갑작스레 여왕이 된 최연희의 모습이 위태위태하다. 나고 자란 환경이 있기에 제법 어울려 보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배운 것을 그대로 답습하려고만 할 뿐 그 이상의 자신만의 무언가는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권위에 기댄다. 박선생(허정도 분)이 충고한 것이 바로 이것을 터다. 사람도, 세상도 달라졌는데 여전히 권위만 옛것에 기대고 있다. 자신의 아들마저 설득하지 못하고 권위에 기대어 윽박지르고 있다. 위기는 가까이서 찾아온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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