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 혼자서는 안되겠는데요?

까칠부 2015. 5. 6. 10:54

흔히 임금을 받으며 하는 일을 두고 '남의 돈을 받아먹는다' 표현한다. 남의 돈 먹는 일이 쉬울 리 있겠는가. 아무리 부당하고 힘들어도 끝까지 참으라. 그래서 억울하기도 하다. 자기가 그렇게 잘해주었는데. 그렇게 신경쓰고 배려해주었는데. 한정호(유준상 분)가 분노하고, 최연희(유호정 분)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였다. 배신감이다. 자신들이 그만큼 고용들인들에게 베풀어왔기 때문이다. 고용인들이 결코 자신들에게 이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분노한다.


그러나 정작 고용인들은 불안해하고 있었다. 낮은 임금과 불안한 미래, 퇴직하고 난 뒤 자릿수가 하나 더 붙은 퇴직금만을 기대하며 고용주의 모든 요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정해진 업무시간 이외에도 일을 해야 하고, 자기 일이 아닌데도 시키면 따라야 하고, 심지어 복장마저 간섭당하며 과도한 의전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문득 떠오른 것이다. 과연 자신들이 기대하는 자릿수가 다른 퇴직금이라는 것을 그때 되서 받을 수는 있는 것인가. 고용인들 역시 고용주와의 관계가 끝난 뒤에도 자신들의 삶을 살아야 하는 주체들인 때문이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지불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독립된 인격에게 지급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위해 일하는 시간 이외에도 그들은 인간으로서 존재한다. 개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영위한다. 그런 그들의 삶과 시간을 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존중이다. 인정하는 것이다. 배려까지도 필요없다. 그 명징한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여 지불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더 엄격해야 한다. 철저히 개인 대 개인으로서 어떤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할 것인가. 돈을 주었으니 마음대로 시킬 수 있고, 돈을 받았으니 어떤 일이든 따라야 한다. 그런 것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용관계라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인신에 대한 예속관계에 불과하다. 


민주영(장소연 분)의 말처럼 이것은 하나의 우화일 것이다. 아직도 터부시되는 한국사회의 노동문제에 대한 통렬한 풍자인 것이다. 노동자가 자기권리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자기 입장만 내세운다. 자기 밥그릇만 챙기려 한다. 사용자와 사회 전체를 생각하고 배려해야 한다. 그야말로 자기 집, 자기 일이라 여기고 헌신적으로 일해왔었다. 파업을 하면서도 혹시나 돌아가서 무어라도 봐주고 올까 고민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돌아온 것은 노예계약이나 다름없는 백지계약서였다. 모든 처분을 고용주인 한정호 부부에게 일임한다. 모든 것을 한정호 부부 개인의 인정에 맡긴 채 오로지 시키는 것들을 따라야만 한다. 


그 부당함에 반발하여 권리주장을 하는 것 역시 그래서 한정호 부부는 인정도 이해도 못한다. 오히려 무서워한다. 인간이 아니다. 단지 시키면 시키는대로 따르는 대상에 불과하다. 서봄(고아성 분)의 삼촌 서철식(전석찬 분)의 소송을 대리하는 윤제훈(김권 분)이 적확하게 표연하고 있었다. 인간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다. 어느날 잘 가지고 놀던 인형이 숨을 쉬고 말을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아직 아이들이라면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을 테지만, 그러나 어른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상황에 당혹과 공포부터 느끼게 될 것이다. 인간과 인형의 경계는 너무 명확하다. 자신들로부터 돈을 받고 일하는 이상 자기권리따위 존재해서는 안된다. 오로지 자신들의 명령과 지시만이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한다. 그들이 주장하던 이성과 합리, 품위, 교양의 적나라한 실체가 드러난다.


한정호나 최연희나 결국 서봄에게 모든 책임을 물어 내쫓으려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어떻게 자신들의 사람이던 고용인들이 자신들에게 권리를 주장하며 행동에 나설 수 있단 말인가. 그토록 배려해주었고, 앞으로도 그들을 위한 많은 좋은 계획들을 세워두었었다. 차라리 배신이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서봄이다. 서봄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서봄이 집안에 나쁜 물을 들였기 때문이다. 남편 한인상(이준 분)도, 시누이 한이지(박소영 분)도, 그리고 다른 고용인들도. 최연희만이 아닌 그들의 친구 지영라(백지연 분)와 엄소정(김호정 분), 무엇보다 가장 자유롭고 관용적인 사고를 지닌 듯 보이던 송재원(장호일 분)조차 그같은 의견에 동조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사고에서 고용인들의 반항이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비상식이고, 비정상의 불상사인 것이다.


과연 서봄의 아버지 서형식(장현성 분)은 서봄더러 자신을 위해 고용인들의 그같은 행동을 철저히 외면할 것을 주장하고 있었다. 서철식에게도 오로지 딸 서봄의 행복을 위해 양보를 강요하고 있었다. 조금만 비겁해지면. 조금만 치사해지면. 그만큼 아쉬우니까. 그만큼 자기가 급하니까. 자기가 먼저 살아야 한다. 그러나 정작 서봄을 쫓아내려는 한정호와 최연희 부부로부터 서봄을 지켜주는 것은 다름아닌 남편 한인상과 시누이 한이지인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약하다. 어쩌면 한인상도, 한이지도, 혼자서는 도저히 저 막강한 부모들에게 맞설 생각따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한인상과 한이지를 이어주는 것이 바로 서봄의 존재였다. 언제나 자신들의 편이 되어주는 서봄의 존재가 있었기에 한인상과 한이지도 자신들이 생각한 바를 주장할 수 있는 의지와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그같은 의지와 용기가 적지 않은 세월 함께 해온 고용인들을 위한 지지와 지원으로도 이어진다.


고용인들만이었으면? 고용인들만 파업한 것이었으면? 비서 양재화(길해연 분)가 새로 사람을 고용해 보냈을 때도 한인상과 서봄 부부가 그들을 돌려보내고 있었다. 주방에서 직접 음식도 만들고, 습도가 높아 곰팡이가 피자 보일러실도 함께 내려가 살핀다. 아기를 돌보는 번거로운 일도 자신들이 모두 직접 한다. 평소 않던 일이라 어지간히 성가시고 번거롭지만, 그러나 고용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지지하고 있기에, 그들과 함께 해 온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고 있기에, 그래서 그들은 기꺼이 그 모든 수고를 감수하고 있다. 그 대단한 한송의 대표 한정호조차 고용인들의 파업에 당장 어쩌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혼자는 약하지만 셋이면 강하다. 모두면 더 강하다.


결국은 인간이다. 돈도, 권력도, 사회적 지위도, 명예도, 그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삶일 것이다. 남편이고, 아내이고, 아버지이고, 어머니이고, 자식이고, 혹은 누군가의 친구이고. 가장 가치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한정호나 지영라나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실패하고 있었다. 지영라의 딸 장현수(정유진 분)가 한인상에게 끌리는 이유일 것이다. 어리지만 그는 이미 아버지이고 남편이었다. 돈으로 사고 억압하며 유지해 온 관계도 끝이 나고 만다. 무엇이 가장 소중한가. 주제일 것이다. 의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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