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복면검사 - 아버지의 유산, 복수해야만 하는 이유

까칠부 2015. 5. 22. 03:58

기대를 배반했다. 정확히 혼자서 헛물만 들이키고 말았다. 하지만 오히려 만족한다. 어쩌면 작품으로서의 완결성도 이쪽이 더 높은지 모른다. 더 솔직하고 더 대담하다. 어쩌면 유치해질 수 있는 프로레스링만큼이나 낡고 바랜 소재와 구성을 과감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정직함이 있다. 유치와 키치를 나누는 경계란 매우 단순할 것이다. 비굴하지 않은 것이다. 당당한 것이다.


대단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법을 불신하려는 것도, 검찰이라는 직업에 대해 회의를 가지는 것도, 이 사회의 썩어빠진 정의를 비웃으려는 의도 역시 전혀 없었다. 단지 출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다름아닌 하나뿐인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였다.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밤이면 악몽에 시달리며 비명을 질러대는 아버지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검사가 되어야 했고, 검사가 되어서도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야만 했었다. 남들처럼 대단한 머리를 가지지 못한 하대철(주상욱 분)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주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필사적으로 윗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하나라도 더 많은 사건을 해결하는 것 뿐이다. 차라리 우스울 정도로 처절하기까지 한 사연이다.


어차피 복면을 썼으니 CCTV동영상을 본다고 바로 자기라고 알아차릴 수 있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아니 아예 없을 것이다. 물론 계속 수사하다 보면 하대철 자신에게까지 혐의가 오게 될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동영상을 보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막아선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수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동영상을 보고 나서도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무작정 모두가 용의자로 여기는 복면인을 변호하고 나서고 있다. 오래전 어느 만화에서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주인집을 찾아가 괜히 말을 걸며 밥상위에 있는 반찬을 아무거나 집어 입에 넣는데 하필 가장 매운 고추이던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스파이더맨도 당장 아르바이트 잘릴 걱정부터 해야 하는 시대에, 도시의 밤을 누비며 정의를 지켜야 할 복면영웅의 현실은 참으로 비루하기만 하다. 우스우면서도 검사가 되고, 또 승진하기 위해서 필사적인 하대철의 사정과 어우러지며 어떤 페이소스를 느끼게 된다. 의도한 것이었을까?


아니나다를까 드라마는 고전적인 복수극의 패턴을 그대로 따라간다. 아니 그대로는 아니다. 하대철은 거부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다. 자신은 자신이다. 아버지를 연민하게 된 뒤에도, 그래서 아버지를 위해 필사적인 지금조차도, 그는 아버지의 복수에 회의적이다. 단지 의무감에 불과했다. 아버지의 아들이다. 자신의 아버지다. 실감도 없었다. 하필 복수의 대상에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더 직접적으로 다가간다. 사실 중복된다. 아버지를 파멸시킨 아버지의 원수들인데, 아버지를 살해함으로써 아버지의 원한을 강제로 물려받게 한다. 비로소 실감을 갖는다.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파멸시켜야 할 원수들이었다. 조금 번거롭게 돌아왔다. 이제는 자신이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만 한다.


결국 자식이란 부모의 유산으로 살아가는 존재인 것일까? 하대철만이 아닌 또다른 주인공 유민희(김선아 분) 역시 비슷한 처지였던 모양이다. 스스로 축복할 수 없는 출생이었다. 차라리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원망한다. 자신을 태어나게 한 댓가를 치르게 한다. 어려서 돌아간 어머니의 사정이 지금 유민희의 삶을 지배한다. 아버지의 죽음이 이후 하대철의 삶을 지배하는 것처럼. 부모의 사정이 아이들을 병들게 한다. 아버지가 의도한대로 검사로서 정의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강현웅(엄기준 분)이 사는 세계는 젊은 또래들과 함께하는 세계가 아니다. 어른들이 만든 그들의 질서다.


하대철의 복면이 가지는 원래의 키치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비장함으로 바뀐다. 그런데 그조차도 결국 전형적이고 통속적인 장르적 답습을 통해 키치로써 완성되고 있다. 오래전 어디선가 보았을 법한 뻔한 구성이고 내용인데 차라리 솔직해서 색다른 느낌을 준다. 더 이상 복면을 쓴 링 위의 악역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요즘이다. 영웅이 아니다. 역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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