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 한인상의 선택, 한정호의 마지막 반격

까칠부 2015. 5. 27. 08:21

바로 그것이 정의다. 나누는 것. 어느 사회든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무엇에 우선해서 나눌 것인가. 최대한 다수가 만족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아낸다. 그것이 또한 정치이기도 하다. 사유재산이라는 것조차 사회적 합의에 의해 법적, 제도적으로 정착된 하나의 관념에 불과하다.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지금도 지불되고 있다. 과연 사유재산이라 해서 전적으로 개인에 의해 생성되고 축적된 개인의 소유를 말하는 것인가.


당장 한정호(유준상 분)의 경우만 하더라도 비서 양재화(길해연 분)의 도움 없이 지금의 부와 지위,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인가. 집안일을 책임지던 고용인들이 일제히 파업에 들어가자 당장 한정호와 최연희(유호정 분) 부부의 안정적이던 일상이 와르르 허물어지고 만다. 먹고, 입고, 자는 최소한의 일상적 행위들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있었기에 그동안 집안이나 개인의 사소한 일들에 구애되는 일 없이 자기의 일에만 최선을 다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과연 한정호의 고용인들에게는 한정호가 그동안 이루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아무런 권리도 없는 것일까.


최소한 고용의 댓가로 임금을 주기로 했으면 정해진 임금은 제대로 지급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고용계약이 맺어진 순간 고용인의 임금은 사용자의 것이 아닌 전적으로 고용인의 노동력에 대한 댓가로써 주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임금을 지급하기 전까지는 자기 돈이니까. 온전히 자기 소유니까. 그래서 임금을 체불하고 불법으로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서도 전혀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려는 노동자들을 비웃고 경멸한다. 불법적으로 전용하여 재산을 증식했어도 그것은 자신들의 돈이다. 사회의 정의와 질서를 지켜야 할 법이 바로 그런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역설일까? 총리마저 마음대로 바꾸는 대한민국 최고의 법권력이 가장 부패하고 타락한 죄의 온상이 되어 있다.


하기는 드라마의 설정부터가 현실을 철저히 배반하고 있었을 것이다. 기껏해야 일개 사기업에 불과한 법무법인 하나가 총리까지 마음대로 바꾸며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물론 현실에서도 역시 사기업에 불과한 특정 대기업이 입법, 사법, 행정 등 사회 여러분야에 거의 절대에 가까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것은 결국 세계굴지의 거대자본으로서 그들이 확보하고 있는 자본이라는 힘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 이상의 권력은 없다. 그렇다는 것은 곧 굴지의 대기업마저 굴복시킬 수 있는 '한송'의 힘이란 결국 그들이 보유한 '법'이라는 수단에서 비롯되고 있을 것이다. 과연 대한민국의 법은 정치권력도, 자본도, 모두 압도할 정도로 권위와 힘을 가지는가. 법이 지배하는 사회다. 법이 자본과 정치권력의 위에 군림하는 사회다. 존재할 리 없는 모순이며 부조리다.


확실히 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이래서 좋은 것이다. 총리를 바꾸고 판을 뒤집는다. 꼬리를 자르고 희생양을 만든다. 드라마에서는 언론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그같은 문제들을 파헤치고 대중에 알리는 것이 언론의 역할일 텐데, 이 역시 역설적이게도 언론매체인 공중파를 통해 방영되는 드라마에서 정작 언론을 철저히 배제한 채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권력이 읊어주면 그대로 따라적기에 급급하다. 진실을 파헤치는 것은 전혀 자신들에 위협이 되지 않는 약자에 대해서다. 윤제훈(김권 분)과 유신영(백지원 분)이 애써 확보한 증거와 자료들마저 무력화될 위기에 놓인다. 한송이 가진 권력의 실체를 보여준다. 아무리 법이 정한 한계를 넘어 개인을 감시하고, 압박하고, 위협해도, 그러나 결코 법은 약자들의, 피해자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법이 오히려 피해자들을 지치게 하고, 포기하게끔 만든다. 결코 허물 수 없는 절대의 철벽과도 같다.


도저히 이길 수 없다. 이길 방법을 찾을 수 없다. 무력한 발버둥이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의지다. 그런 한정호의 절대권력을 뒤흔드는 것은 결국 한정호 자신이었을 것이다. 내부로부터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서봄(고아성 분)이 그 기폭제가 되고 있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세계가 만나며 서로의 논리에 의해 오염되어간다. 처음에는 오히려 서봄과 서봄의 아버지 서형식(장현성 분)이 한정호의 논리에 설득당하고 있었지만, 조금씩 그 입장이 역전당하며 이제는 아예 한정호의 아들 한인상(이준 분)마저 서형식의 집으로 들어가고 만다. 결국 그 어떤 정교한 논리로도 넘을 수 없는 인간의 당연한 본능인 정이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사랑하고,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보듬고 용서하며, 사람과 사람으로 함께 어울려산다는 당연한 원리다. 한정호가 강해지는 만큼 한정호의 집은 더 어둡고 휑해진다. 사람들의 마음마저 떠난다. 최연희마저 연락없는 서봄에게 서운함과 원망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주위가 돌아선다.


정점이란 결국 더 이상 오를 수 없으니 내려가기 시작하는 지점일 것이다. 한송과 한정호의 모든 힘이 드러난 지금 오히려 약점을 드러내게 된다. 더 이상 신뢰가 아닌 위협의 대상이 되고 있는 양재화의 입장이 미묘하다. 한인상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서봄으로 인해 여전히 불안한 고용인들의 동요 역시 틈을 벌리는 요인이 된다. 무엇보다 한정호의 오만이 문제다. 갈수록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애써 포장해 오던 자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여전히 싸움은 고달프다.


한인상을 위해서였다. 그동안 서봄이 그 답답하고 힘든 시간들을 참고 견뎌온 것은. 그래서 묻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신을 사랑한다면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가. 안된다면 어쩔 수 없다. 현실의 차이를 비로소 이해한다. 같은 꿈은 꿀 수 있어도 같은 현실을 살 수는 없다. 결심한다. 직접 물로 뛰어들려 한다. 고통스러워도 포기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언젠가 후회할지 몰라도 지금 당장은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 남자가 된다.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된다.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을 스스로 선택한다. 자기가 가장 가지고 싶은 소중한 것이다. 


부모와는 다른 삶을 살려 한다. 정확히 부모를 존경하지 못한다. 부모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마저 어느새 반감으로 바뀌고 만다. 한정호의 부정은 그런 의미에서 계기가 되어 주고 있었다. 아버지로서 한정호의 도덕적 권위가 해체되고 만다. 비로소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상류층 가정이 한정호나 지영라 같지는 않은 이유일 것이다. 여러가지로 어설펐다. 그래서 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그 틈을 비집고 사건들이 일어난다. 흥미롭다.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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