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프로듀사 - 사랑과 사고, 우연이 필연이 되는 이유

까칠부 2015. 5. 31. 04:50

하기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사고일 것이다. 예정하고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경우란 매우 드물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어떤 이유로, 혹은 어떤 계기에 의해서,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일단 좋아하고 난 뒤에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떤 점이 좋았고, 매력적이었더라. 이유는 항상 나중에 따라온다.


도대체 탁예진(공효진 분)은 라준모(차태현 분)의 무엇이 그리 좋아서 지금까지 그토록 혼자서 가슴앓이하는가. 백승찬(김수현 분) 역시 좋아하는 여자선배를 쫓아 예능국PD까지 되어서는 나이도 한참 연상에 성격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 탁예진을 짝사랑하고 있다. 그나마 신디(아이유 분)는 이해가 된다. 탑에 갇힌 공주처럼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던 그녀에게 처음으로 다가간 사람이 바로 백승찬이었다. 자신을 연예인으로 키워준 변미숙(나영희 분) 대표를 엄마라 부르며 따른 적이 있었다.


그냥 좋아하는 것이다. 지나고 보니 어떤 이유같은 것들이 떠오르는 것 뿐이다. 돌이켜 보니 어떤 계기 같은 것들도 생각이 난다. 그러나 결국 좋아하게 되었기에 이유가 되고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 자신을 스쳐간 수많은 기억들 가운데 유독 그것들만이 의미를 가지고 남게 된다. 그래서 좋아했다. 그래서 좋아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반대의 경우 그래서 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사랑이란 아름다운 만큼 슬프고 아픈 것이기도 하다. 이루어질 수 없고, 이루어져서는 안되고,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을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한다. 시작도 예정에 없듯 끝도 예정에 없다. 사랑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사고들이 일어난다. 결국 편집의 실수로 인한 사고들이다. 자기가 실수한 것도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우연들이 겹치고 겹쳐 필연처럼 실수를 저지르도록 만든다. 당시는 전혀 알지 못하다가 지나고 나서 꼼꼼히 하나하나 따져보니 그런 원인가 이유들이 있었다. 탁예진이 라준모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은 것처럼, 백승찬이 라준모의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것처럼, 결국 그런 이유들이 모이고 모여 자막을 잘못 넣는 실수로 이어지고 만다. 평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 뿐인데 상처받고 예민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동안 있었던 여러 사건들이 조건과 상황을 바꿔 놓았다. 하지만 당장은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과 의도가 엇갈리며 일어나는 사고도 있다. 백승찬은 가만히 있었다. 소극적으로나마 사실을 전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 백보선(김종수 분)과 어머니 이후남(김혜옥 분)의 의도된 오해가 사실을 전혀 다르게 왜곡하고 만다. 자신이 예능국 PD 가운데 막내이고 말단에 불과하다는 당연한 사실마저 납득시키기가 너무 어렵다. 라준모의 의도나 당시 백승찬의 마음과는 전혀 상괌없이 백승찬의 부모들에게 신디란 경우없는 나쁜 여자일 뿐이다. 모든 PD들은 시청자들이 재미있어 할 것이라 여기고 편집을 할 테지만, 그러나 PD의 의도야 어떻든 시청률은 항상 냉정하기만 하다.


라준모가 '예능국 펠레'란 별명을 가지게 된 이유다. 잘 될 것 같다. 뜰 것 같다. 충분히 그만한 근거가 있어서 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라준모의 판단일 뿐 대중의 기호는 그와는 상관없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원래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니었을 텐데, 그러나 매니지로서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판단하고 행동한 것이 오히려 신디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신디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날린 것이 오히려 더 크게 다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진 것처럼 말이다. 전혀 그럴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그동안 백승찬이 보인 무심한 행동들이 신디로 하여금 그에게 호감을 가지도록 만든다. 


결국 우연이다. 그러나 일단 현실에서 일어난 우연은 필연이 된다. 필연에 구애된다. 그래서 사랑하고,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래서 애써 마음을 감추고, 서로를 상처입히고 만다. 사고도 아주 큰 사고다. 여기까지만. 이것까지만. 예정한 것들이 있다. 기대한 것들이 있다. 그에 맞춰 계획도 하고, 행동으로도 옮긴다. 모든 것이 흐트러진다. 지워야 할 것들이 남고, 남겨야 할 것들이 지워진다. 자막은 엉뚱한 것이 들어간다. CG가 잘못 쓰이며 전혀 엉뚱하게 해석되기도 한다. 


편집의 실패는 시청자의 질타이며 상사의 질책이다. 잘못된 편집으로 인해 시청자로부터 비판받고 상사에게는 야단을 맞는다. 처음 생각했던 말들이 있었다. 그러나 백승찬과 너무나 사이가 좋은 모습에 전혀 엉뚱하게 나오고 만다. 진심과 전혀 다르게 나온 말로 인해, 더구나 그 말을 다시 거둬들이지 못하면서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치닫는다. 라준모와 탁예진 사이의 악연같은 우연들은 어떤 필연으로 이어질까. 마침 울고 있는 탁예진 옆에는 백승찬이 있었다. 실수라기에는 너무나 치명적이다.


자꾸 마음이 그리로 향한다. 생각마저 그리로 쏠린다. 우연한 눈길에 그녀가 보인다. 행정반 고양미(예지원 분)을 향한 김홍순(김종국 분)의 진심이 무척 흥미롭게 진행된다. 탁예진이 정곡을 찌른다. 그토록 집요하게 싫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거나 증오다. 탁예진의 사고로 인해 의전을 맡지 못하게 된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프로그램을 대하는 자세는 무척 진지하다. 고양미가 종이뭉치를 내밀며 백승찬에게 자신의 운세를 물어보는 장면은 과연 압권이었다. 이 두 사람의 사이는 어떻게 발전해 갈 것인가.


백승찬과 신디가 함께 촬영한 '1박 2일'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생략된 듯해서 무척 아쉽다. 아마도 드라마의 내용이 백승찬과 탁예진의 러브라인을 중심으로 전개되려 하는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단단한 라준모와 탁예진의 러브라인에 비해 일방적인 짝사랑에 불과한 백승찬과 신디의 러브라인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어지는 느낌이다. 단지 신디 혼자만의 오해이고 착각에 불과하다. 그래도 백승찬이 인이어를 만지는 사이 필사적으로 주먹을 움켜쥐고 있던 신디의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백승찬에게 잘보이기 위해 앨범의 컨셉과는 상관없이 착하고 순해 보이는 메이크업을 요구한다. 자꾸 자신의 의도와는 반대로 행동하는 매니저가 못마땅하다. 병원에서 혼자 흘리는 눈물이 행복한 웃음으로 바뀌기를 기대해 본다.


어쩌면 이 부분은 연예계의 현실에 대한 비판이었을 것이다. 일주일동안 20개가 넘는 스케줄을 소화하며 정작 밥먹고 편히 쉴 시간조차 없다. 사고를 당하고 병원에 입원하니 겨우 3시간을 푹 잘 수 있었다. 단지 수당을 더 준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렇지 않게 잔업에, 야근에, 휴일근무까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순간에도 그로 인한 손해를 이야기한다. 엄마라 부르며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자신으로 인해 아무 잘못도 없이 뺨을 맞는 매니저를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것도 하필 백승찬 앞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자신은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가. 마지막에 신디가 얻게 되는 담일 것이다.


편집이 사고로 이어진다. 편집하고자 했던 의도가 다른 더 큰 사고로 이어진다. 라준모에게는 불운이고, 백승찬에게는 행운이다. 솔직해질수도 당당해질 수도 없는 신디의 처지가 갈수록 가엾어진다. 그럼에도 라준모와 탁예진 사이의 인연의 끈은 아직 무척이나 질기다. 사고가 사실로 바뀐다. 단지 사고로써 수습되고 지나간다. 구성이 절묘하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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