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세스캅 - 물고 물리는 죄와 악, 최영진 강태유와 맞서다

까칠부 2015. 8. 26. 04:26

너무 전형적이다. 개발중이던 게임을 컨셉으로 살인을 계획했던 것이었다. 살인자의 직업은 게임개발자였다. 마치 게임하듯 살인을 저지르고 있었다. 심지어 경찰과도 희생자를 미끼로 내걸고 게임을 하려 한다. 평범한 외모 뒤에 숨은 광기어린 섬뜩한 웃음도, 바로 코앞에서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경찰이 중요한 단서와 용의자를 그냥 지나치는 장면도 너무 익숙하다. 시청자는 알지만 경찰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흥미롭다. 경찰만 범죄자를 쫓는 것이 아니다. 법과 정의만이 범죄자의 악과 죄를 뒤쫓는 것이 아니다. 모든 악의 배후라 할 수 있는 강태유(손병호 분)의 손에 연쇄살인마의 얼굴이 찍힌 블랙박스 동영상이 쥐어져 있다. 연쇄살인마는 KL그룹의 보안시스템을 의뢰받아 점검하며 강태유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을 빼돌리고 있었다. 하나만 잡으면 둘 다 잡을 수 있다. 하나를 잡지 못하기에 둘 다 잡을 수 없다. 그런데 만일 그 사실을 연쇄살인마와 강태유 서로가 알게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니 알고 있을 것이다. 하필 연쇄살인마가 살인을 저지르던 근처에서 강태유 역시 최영진(김희애 분)에 의해 노출된 마약거래 담당자를 정리하던 참이었다. 마약밀매조직을 뒤쫓던 경찰에 의해 우연찮게 연쇄살인마는 쫓기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강태유가 탄 차와 부딪히고 말았다. 그 짧은 순간 번호판만 제대로 확인할 수 있으면 강태유의 차라는 사실을 알아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게임개발자가 보안전문가가 되어 KL그룹의 보안시스템을 손보고 범죄의 증거들을 빼돌린다. 우연이었을까? 이제는 강태유가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서라도 절대 그 블랙박스 동영상을 경찰에 넘길 수 없으리란 확신까지 가지게 되었다. 


다만 이해가 안가는 것은 어째서 범죄를 저지르러 가면서 자칫 불리한 증거가 될 수 있는 블랙박스 메모리는 그대로 내버려 둔 채였던 것일까? 최영진에게 했던 변명 그대로 절대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되는 비밀스런 대화까지 오가는 자리였다면 블랙박스 메모리카드 정도는 제거한 채 움직이는 것이 상식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강태유에게 없는 증거를 노리고 연쇄살인마가 무리한 행동을 벌이며 틈이 벌어지고 기회가 생기는 쪽이 더 나았을지 모르겠다. 자신이 비서와 나눈 범죄의 증거가 될 수 있는 대화들을 태연히 듣고 있는 강태유의 모습이 섬뜩하면서도 한 편으로 무척 허술해 보였다. 용의주도란 만에 하나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경찰은 연쇄살인마에게 철저히 농락당하며 눈앞에서 범인을 놓치고 만다. 이번에도 역시 증거라고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하기는 현실에서도 많은 범죄에서 그럴 것이다. 범인을 특정할만한 의미있는 증거는 항상 그리 많지 않다. 막막한 가운데서도 범인을 잡아야 한다. 부족한 가운데서도 어떻게 해서든 범인을 잡아야만 한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놓치지 않고 범인을 쫓기 위한 단서로 여긴다. 그야말로 경찰의 모습일까? 범인에 대해 아주 작은 단서조차 찾지 못한 무력감과 그로 인해 자칫 다음 희생자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무엇보다 그런 자신들의 수사를 방해하는 누군가에 대한 분노가 이성마저 잃게 만든다.


증거를 내놓으라! 아들을 풀어달라! 냉정한 이성도 없다. 철두철미한 계획도 없다. 정의도, 악의도 그 순간 모두 사라져 버린다. 서로에 대한 순수한 분노와 증오. 그 차이일 것이다. 어디의 누군지도 모르는 딸들을 살리려는 모성과 오로지 자신의 혈육만을 위한 부성이 분노와 증오로써 만난다. 타인을 위한, 그리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한. 두 사람의 어쩌면 숙명과도 같은 전혀 다른 입장과 위치가 적나라한 감정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계기이며 예고다. 다만 어차피 아직은 강태유가 가진 블랙박스 동영상을 확인하거나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 최영진에게는 전혀 없다. 연쇄살인마와의 싸움도 다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꽤 재미있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연쇄살인의 중요한 용의자를 체포하러 가던 길이다. 그러나 바로 눈앞에서 한 여성이 부당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더 크고 중요한 목적을 위해 눈앞의 부당함을 지나쳐야 하는가. 아니면 설사 연쇄살인마를 놓치더라도 당장 앞에 보이는 억울함부터 해결해야 할 것인가. 결과적으로 용의자를 체포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만에 하나 폭행당하는 여성을 구하려다가 용의자를 놓치기라도 했다면? 정해진 답은 없을 것이다. 너무 멀리 보면 가까운 것을 놓치고, 가까운 것에 집착하면 멀리 보지 못한다. 그런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인간에게 이성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확신하지도 고집하지도 않는다. 사소하지만 민도영(이다희 분)과 한진우(손호준 분)의 서로 다른 개성과 캐릭터를 확인시켜주는 제법 중요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방식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연쇄살인범의 체포는 다음으로 미뤘다. 강태유와 최영진의 충돌을 조금 앞당겼다. 살인의 수법이나 동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뜻밖에 수사드라마면서 범죄자를 체포하는 것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그보다는 메시지나 이야기에 더 주력한다. 최영진의 딸에게 어느새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생겼다. 부모가 돌보지 않아도 아이들은 혼자서 어른이 되어간다. 답을 찾아간다. 그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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