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유혹, 가족의 유혹, 그리고 그 다음은 권력의 유혹일까? 그나마 돈은 쉬울 것이다. 돈이란 욕망이다. 욕망이란 더 큰 욕망이나, 혹은 더 우선하는 가치 앞에서 의미를 잃기 쉽다. 이를테면 가족이라거나, 더 큰 권력이라거나, 아니면 보편의 윤리나 개인의 양심과 같은 것들이다. 의외로 살다 보면 돈보다 더 귀하고 중요한 것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가족은 돈과는 약간 다르다. 가족이란 윤리다. 정의이기도 하다. 피를 나눈 혈육이다. 살을 맞대고 살아온 배우자다. 그들을 저버려야 한다. 기대를 배신하고 원망마저 각오해야 한다. 다시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물론 그럼에도 더 가치있는 무언가를 위해 얼마든지 가족까지도 희생시킬 수 있는 이들이 현실에는 너무나 많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식의 목숨마저 돌보지 않고, 자신의 출세를 위해 자식을 죽여 제물로 삼는다. 각오다. 자신이 추구하는, 혹은 지키고자 하는 무언가, 아니 누군가를 위해 무엇까지 희생할 수 있는가.
권력이란 정치의 본질 그 자체일 것이다. 무엇때문에 정치를 하는가. 무엇으로 정치라는 것을 하는가. 진상필(정재영 분)이 국회의원이 되고자 마음먹은 이유일 것이다. 국회의원으로서 다시 공천받아 재선에 성공하기 위해 처음 백도현(장현성 분)의 손발노릇까지 기꺼이 감수했던 이유였다. 국회의원이 됨으로써 고작 해고노동자에 불과하던 과거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부당하고 억울한 현실을 만드는 잘못된 법들도 바꿀 수 있고, 가난하고 고단한 이들을 위한 새로운 법도 만들 수 있다. 정부나 기업의 부당한 행동들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도 있다. 단지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역유지며 은행의 행장이며 자세를 낮추고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언론이 먼저 찾아와서 하고자 하는 말을 고스란히 세상에 전해주기도 한다. 더 높고 더 큰 권력이 주어진다면 더 많은 더 어려운 소망들도 얼마든지 현실에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을 가져야 한다. 바로 권력의지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이다. 국가원수이고, 행정부의 수반이며, 군통수권자이기도 하다. 입법무인 국회에서도 다수를 차지한 여당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배후이며, 사법부에 대해서까지 주요인사들에 대한 인사권을 가짐으로써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통령중심제인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대통령이 마음만 먹는다면 하지 못할 일이란 그다지 많지 않다. 아주 불가능한 일만 아니라면, 뒷일을 고려치 않아도 된다면, 더 많은 것들을 현실에서 가능하게 만드는 힘을 대통령은 가지고 있다. 당장 진상필이 만들고 있는 법안도 행정부와 여당을 동원해 우호적인 여론을 등에 업고 수월하게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만들 수 있다. 거꾸로 진상필이 아예 경제시에서 공천받지 못하도록, 공천받더라도 손발이 묶인 채 시민들로부터 외면받도록 만들 수 있는 힘도 대통령에게는 있다. 반청계의 수뇌인 박춘섭(박영규 분)도 정작 청와대와 직접 맞서는 일만은 삼가고 있다. 그의 타겟은 어디까지나 청와대의 지시를 받는 친청계의 수뇌 백도현이다. 여당인 국민당의 사무총장으로서 국정을 쥐락펴락하던 백도현마저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줄 끊어진 연 신세가 되고 만다. 그 대통령이 진상필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어쩌면 큰정치인이 되기 위한 시련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해야만 하는 일들도 많다. 하지만 돈이 없다. 유혹에 빠져든다. 돈이 없으면 돈을 마련해야 한다. 현실에는 수많은 불법과 탈법, 편법들이 존재한다. 법에 걸리지 않는 합법적이지만 정당하지 않은 방법들도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번 한 번만. 단 한 번만. 더 큰 일을 해야 할 사람이니까. 더 중요하고 더 가치있는 일들을 해야만 하는 사명이 주어져 있으니까. 순수한 이상만을 품고 정치에 입문한 신인들이 너무 쉽게 현실에 꺾이고 타락하는 이유일 것이다. 가족마저 나선다. 고깃집에서 일해 번 돈과 친정어머니의 전재산과 딸의 대학등록금까지 모두 날리고 말았다. 국회의원인 자신만 나서면 어쩌면 해결될 수 있을지 모른다. 남편이기보다, 사위이기보다, 아빠이기보다 진상필은 국회의원이기를 선택하고 만다. 국회의원이기이에 아내보다, 장모보다, 딸보다, 아내와 함께 거리로 나선 모르는 사람들의 처지도 무시할 수 없다.
백도현이 꺾인다. 또 한 번 진상필로 인해 좌절을 겪으며 완전히 청와대로부터 눈밖에 나고 만다. 청와대의 신임이 사라진 백도현이란 국민당에 속한 수많은 재선의원 가운데 단지 한 사람에 지나지 않게 된다. 진상필의 돌출행동으로 예견된 백도현의 위기를 박춘섭과 반청계는 충실히 활용한다. 특검법안을 찬성하여 통과시킴으로써 백도현의 숨통을 끊는다. 진상필이 승리했다. 그런 진상필에게 대통령의 전화가 온다. 어쩌면 백도현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 국민당의 주류인 친청계를 이끌고 반청계를 달래며 야당을 상대하는 권력의 중심에 보다 깊숙이 다가갈 수 있다. 과거 진상필의 손발이 되었듯 이번에도 대통령의 손발이 되어 그 권력을 마음껏 누릴 것인가. 가슴에 더 크고 높은 이상을 품고 있더라도.
김규환(옥택연 분)을 보내는 백도현의 웃음이 허허롭다. 진상을 알지 못해도 어차피 백도현이 모두 꾸민 일일 터다. 굳이 더 깊이 더 자세히 알 필요 없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백도현이 있을 것이었다. 이제 갓 국회의원 비서로 정치에 입문한 젊은이의 입에서 자신에 대한 냉혹한 평가를 듣는다. 이상이 있었다. 신념도 있었다. 정치인이 되어 하고자 했던 일들이 있었다. 그를 위해 희생해 온 세월이었다. 그를 위해 대통령의 측근이 되었고, 여당에서도 실세가 되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자를 쓰러뜨리며 지금껏 살아남아왔다. 그러나 결국 남은 평가는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썩은 정치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마저도 청와대의 신임을 잃으며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이제 과연 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사실 너무 쉽게 속아넘어간다. 더 큰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더 가치있는 일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했었기에. 가족이. 가족에 대한 연민이. 안타까움이. 정이. 혈연과 학연과 지연과 자신을 지지해 준 유권자에 대한 의리가 있다. 하지만 어째서 공인인가. 사적인 개인보다 공적인 역할이 더 중요하기에 그를 공인이라 일컫는 것일 터다. 연예인이나 다른 유명인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공적인 책임을 가진 공적인 위치에 있는 이들이다. 오히려 오랜 시간 고통스러울 정도로 고민하며 내린 결론이기에 더 절실하다. 아내와 딸에 대한 미안함을 전한다. 자신은 국회의원일 수밖에 없다. 이제 그 국회의원마저 넘어서야 한다.
김규환이 배규환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진상필은 단 한 번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었다. 최인경(송윤아 분) 역시 한 번은 의심했지만 마침내 그를 믿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았다. 약간은 신파일 테지만 진상필이라는 정치인의 그릇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 김규환으로부터 백도현은 철저히 부정당한다. 진심이란 곧 신뢰다. 진실이 승리한다. 간명한 주제다. 승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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