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으로 사유재산 점거하고 농성한 범법자들이 왜 무고한 사람이야? 다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빨갱이 새끼들이지!"
"아파트 더 많이 지어서 서민 주거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일자리 늘어나서 경제에 보탬되고..."
어쩐지 보고 있는 자신이 더 조마조마해진다. 지나칠 정도로 노골적이고 직설적이다. 역시나 시의적 소재를 잘 활용한다. 바로 현재진행형인 이슈다.
나라 경제를 살리고 청년일자리를 더 만들기 위해서라도 기득권인 정규직 노동자들이 조금만 더 양보하고 희생하라. 어느 정치인이 여기에 그렇게 반박했다. 200만원도 채 못받는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는 이제 더 이상 졸라맬 허리띠도 없다.
건설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기보다 그 비용과 수고를 아끼기 위해 헐값에 후려쳐 하청업체에 떠넘긴다. 나중에는 그마저도 주기 싫어 차일피일 미루며 자금력이 약한 하청업체가 부도나도록 유도한다. 어차피 노동자들에게 밀린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은 도산한 하청업체다. 계약한 공사대금을 지불할 대상도, 노동자들이 밀린 임금을 청구할 대상도 그렇게 사라져 버린다. 당장 밀린 임금을 받아야 그동안 진 빚도 갚고 앞으로 생계도 이어갈 수 있는 노동자들이지만 정작 공사로 이익을 보게 될 원청업체에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
오히려 더 당당하다.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올라가 시위를 한 장소는 자기 소유의 공사중인 건물이었다. 노동자들의 농성은 불법이었다. 그들은 단지 실정법을 어긴 범죄자에 지나지 않는다. 사상이 불순한 반사회적 인간들이다. 더구나 그렇게 해야만 기업도 살고 나라도 산다. 기업이 이익을 얻어야 나라경제도 좋아진다. 서민에게도 좋다. 청년들에게도 일자리가 생긴다. 모두가 좋은 일이다. 단 한 사람만 자리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으면. 그를 위해서 힘없는 노동자 몇 만 희생할 수 있으면.
"세상이 다 미쳤는데 안 미치고 어떻게 살아? 안 미친 놈이 미친 놈이지!"
순간 강태유(손병호 분)의 말에 공감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만다. 강태유 한 사람의 말이 아니다. 그동안 많은 노동자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걸고 나섰을 때 그들을 비웃고 비난한 이들 가운데 이 사회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다수도 있었다. 그들의 시위는 불법이다. 그들이 지금 하는 농성은 범죄다. 저들의 행동으로 인해 나라경제가 어려워지고 자신에게도 피해가 돌아온다. 저들만 조용히 양보하고 희생하면 모두가 좋아진다. 세월호 참사에 함께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다가도 나라경제를 위해서 이제 그만 조용히 좀 하라 윽박지르는 것이 바로 이 사회를 이루는 다수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현실을 이용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 것이다.
이제는 끝이라며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는 염상민(이기영 분)의 말에 강태유가 그저 웃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아직 사고가 나고 얼마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에 대한 추모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나 의도한대로 본부장도 바뀌었는데 원래 계획했던 사업을 그대로 추진하기에는 그같은 사회분위기가 방해가 되고 있었다. 강태유가 대책을 묻자 변호사 김민영(전세현 분)은 아무렇지않게 전혀 상관없는 톱스타 A양의 마약혐의 기사를 꺼내 민다. 타인의 불행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이나 동정따위 유명연예인의 스캔들 기사 하나면 바로 잊혀지고 말 것이다.
내 일이 아니다. 나의 불행이 아니다. 어차피 남의 일이라면 더 흥미롭고 더 자극적인 쪽에 관심이 간다. 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쪽에 눈이 돌아간다. 그동안도 그래왔었다. 강태유의 행동이 정도를 넘어서면 어느새 정의로운 경찰로 돌아가기라도 한 듯 강태유에게 따져묻고 있었다. 분노와 경멸의 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그를 비난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자기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가해지거나 전보다 더 큰 이익이 주어진다면 언제그랬느냐는 듯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협력자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있었다. 인간이란 본디 그런 것이다. 세상을 속이고 이용하고 희롱한다. 자신을 위해 일하는 최측근 김민영마저 그 도구로써 이용한다. 항의하려는 김민영을 강태유는 아예 돌아보지조차 않는다.
강태유의 손발이 잘려나간다. 강태유가 뜻한대로 그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주던 요긴한 수단인 서북파가 경찰에 의해 일망타진된다. 노동자들의 농성현장에서 일어난 불이 사실은 방화였다는 사실이 용의자와 함께 밝혀지고 만다. 자신이 시키는대로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른 하수인을 죽여 은폐하려 하지만 여전히 경찰의 눈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 그동안 형사과장의 직위를 이용해서 자신을 도왔던 염상민이 작별을 고한다. 염상민을 통해 최영진이 자신의 비자금내역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마저 알게 된다. 윤형석이 조언한다. 조금 더 기다려보라. 경찰을 건드리는 것은 위험하다. 사실 드라마를 위한 허구다. 경찰이 마음먹고 체포하려고 나섰는데 맞서서 주먹을 휘두를 배짱있는 조직폭력배따위 현실에는 없다. 경찰을 건드리는 순간 자신은 물론 주위까지 모두 끝장난다. 알아도 몰라도 폭력조직따위 그걸로 끝이다.
어쩌면 일부러 빈틈을 노출했을 수 있다. 딸 서하은(박민하 분)이 돌아오는 것이 늦자 최영진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전에없이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항상 자신을 대신해 딸을 돌봐주던 고마운 동생 최남진(신소율 분)에게 사정도 묻지 않고 무작정 화부터 내고 말았을 정도로 그 순간 그녀는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 서승우(장세현 분)에게 반드시 강태유를 죽이겠다 각서까지 써주었다. 염상민에게 자기가 강태유의 비자금내역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 강태유 역시 염상민을 통해 바로 알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영진에 대해 악감정이 많다. 강태유를 엮어 넣으려면 더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하다. 실제 강태유는 최영진을 제거하기 위해 전문킬러까지 동원하고 있었다. 최영진이 감추고 있는 다음 카드는 무엇일까. 강력 1팀과 박종호는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한진우(손호준 분)와 민도영(이다희 분)의 관계는 갈수록 낯간지러워진다. 아예 노골적이다. 한진우 자신만 알면서 모르는 체 한다. 서북파를 일망타진하기 위한 치열한 격투가 그들 사이를 진전시키고 과시하려는 기회로 이용된다. 박종호(김민종 분)와 최영진의 사이 또한 서로 엇갈리는 듯 미묘하게 달큰한 냄새를 풍긴다. 제법 과격한 액션인데 덕분에 액션의 긴장감보다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간지러움에 눈까지 가늘어지고 만다. 거의 끝에 다가와 있다. 한진우의 질투를 유도하는 카메오까지 등장한다. 흉악한 범죄자를 쫓는 수사드라마의 살벌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숨구멍과 같은 존재다. 총과 삼단봉과 야구방망이를 든 채로 그들은 달콤하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드라마의 양념이다.
손발을 자르고 숨통을 조인다. 강태유를 한 번에 보내버릴 수 있는 목숨줄을 최영진이 쥐고 있다. 여전히 강태유에게는 이 사회의 주류로써 넘치는 부와 권력이 쥐어져 있다. 손발이 잘려도 그것을 대신할 수단이 남아 있다. 마지막 발악이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관계는 역전된다.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기회다. 그래서 위기다. 서승우와의 약속을 과연 최영진은 어떻게 잘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기회다. 막바지로 치달아 간다.
항상 그런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강태유의 죄란 이 사회가 가지는 구조적 모순이 아닌가. 강태유의 악이란 이 사회의 모순된 구조 자체일 것이다. 강태유와 같은 범죄자가 아무일없이 이 사회의 주류로써 모든 부와 권력, 명예까지 함께 누린다. 바로 이 사회의 법과 정의가 그런 강태유를 지켜주고 있다. 시원하게 털어놓는다. 명쾌하고 상쾌하다. 여전히 무겁다. 우습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0911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사의 신 객주 - 돈과 인간, 자본주의 사회에 필요한 고민들을 묻다 (0) | 2015.09.25 |
---|---|
장사의 신 - 상인의 길과 장사의 길, 깎아지른 벼룻길에서 (0) | 2015.09.24 |
미세스캅 - 드러난 염상민의 정체, 최영진 서승우와 만나다! (0) | 2015.09.22 |
디데이 - 점층되는 위기와 긴장, 한국적 재난의료드라마를 위해 (0) | 2015.09.20 |
디데이 - 지진과 재난의료, 그러나 서론이 길다 (0) | 2015.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