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란 꿈이다. 욕망이란 희망이며 미망이다. 돈을 번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 욕망을 쫓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돈이 곧 꿈이고 희망이다. 단순히 더 풍요롭게 더 안락한 삶을 누리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온갖 위험을 무릅써가며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것은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려 함이다.
어쩌면 장엄하기까지 하다. 기껏해야 장사꾼들의 장삿길이다. 그저 돈을 벌자고 물건을 팔러 가는 길이다. 하지만 그를 위해 맨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깎아지른 벼랑을 지난다. 몸도 가누기 힘든데 크고 무거운 짐까지 등에 지고 서로의 몸을 묶은 채 한 발 한 발 나가고 있다. 그렇게 길은 열려왔다. 초원을 가로지르고, 비단길을 오가며, 마침내는 바다를 통해 세계를 하나로 이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열고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그 위에 몸을 뉘였다. 법을 어기면서까지 목숨을 걸어가며 장사꾼들은 그 길에 자신을 맡긴다.
그래서 더 의미심장했을 것이다. 도입부에서 어린 천봉삼(아역 조현도)는 아버지 천오수(김승수 분)에게 장난처럼 앞으로 아무것도 않고 편히 놀고 먹기만 하겠다며 자신의 계획을 말하고 있었다. 운좋게 천가객주의 아들로 태어나서 평생 놀고 먹어도 전혀 부족하지 않을 재산까지 물려받게 되었는데 굳이 힘들게 고생해가며 돈을 벌려 애쓸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자신의 목숨까지 구해준 밀매꾼들의 제안을 천오수는 일고의 여지도 없이 단호히 거절하고 있었다.
무려 1만냥에 이르는 쇠가죽이었다. 살 사람도 이미 정해져 있고 3배의 이익이 기대된다 말하고 있었다. 자신들을 돕기만 하면 그 가운데 4할을 대가로 넘기겠다. 단지 돈을 버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당연히 천오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실제 육의전에 번듯하게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상회를 열고 싶은 욕심에 천오수와는 다리 행수 길상문(이원종 분)은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3할이니 9천냥 4할이면 1만 2천냥의 돈이 있으면 육의전에 자신들의 상회를 열고 지금처럼 위험을 무릅써가며 험한 장삿길에 나서지 않고서도 편히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천오수가 바란 것은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보부상의 객주로서 규율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개성유수 김보현(김규철 분)의 분노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무사하지 못할 것을 안다. 개성에서 객주를 하는데 개성유수에게 밉보여서야 당장은 물론 앞으로 어려움이 많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라난다. 어린 아들과 함께 그 고단하고 위험한 상행길을 나섰다. 아들을 위해 기꺼이 밧줄을 끊고 절벽 아래로 자신을 던진다. 김보현이 강요한 술을 아들 천봉삼이 대신 나서서 다 들이킨다. 일관된 주제가 아니었을까. 돈을 번다는 것에 대한. 장사라는 일에 대한.
시작은 소소하면서 조밀하다. 일상적인 대화 속에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를 감춘다. 어수선하고 왁자하고 그리고 정겹다. 갑자기 긴장이 고조된다. 전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시작된 음모가 주인공의 일상을 위협한다. 서로 다른 두 개의 가치관이 충돌한다. 돈과, 더 많은 돈과, 더 많은 풍요와 안락함. 무엇을 양보하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위기다. 욕심만큼 길상문은 영리하지 못하다. 3년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 번 김학준(김학철 분)이 파놓은 함정으로 자신을 밀어넣는다. 언제나 그렇듯 한과 절망이 드라마의 시작이다.
아직 주연들은 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도 않고 있다. 시작의 시작이다. 어떤 이야기가 시작될 것인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어떤 사연과 이유들을 가지고 있는가. 한 회 남았을 것이다. 너무 길면 늘어진다. 늘어지면 흐려진다. 충격은 짧을수록 강한 인상을 남긴다. 역시 한 걸음 내딛는다. 쉽지 않은 먼 길이다.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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