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 이인겸과 정도전, 최영과 이성계가 갈라서는 이유

까칠부 2015. 12. 2. 04:01

본질을 꿰뚫는다. 싸움이란 무엇인가. 더 센 놈과 더 약한 놈을 가리는 것이다. 이기면 더 센 것이고, 지면 더 약한 것이다. 이겼으면 모든 것을 가지는 것이고 졌다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살고 죽는 일마저 오로지 강자의 의지에 맡긴다. 그런 세계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단지 방법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것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보편적인 '원리'다.


이방지(변요한 분)가 자신의 칼아래 쓰러지는 길태미(박혁권 분)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그렁인 이유였을 것이다. 길태미를 쓰러뜨리고 자신이 새로운 삼한제일검이 되었음을 모두에게 외쳐 알리는 순간 그것은 차라리 비명과도 같았을 것이다. 자신도 같다. 자신 역시 길태미가 말한 그 세계에 속해 있다. 죽이고 빼앗는다. 자신이 더 강하기에 길태미를 이기고 그의 목숨과 삼한제일검이라는 그의 명성마저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자기부정과도 같다. 그동안 자신의 힘만을 믿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모두에게 고통을 주어 온 길태미를 벌하려 했을 텐데 그러나 그 논리와 방식이 길태미가 말한 그대로였다. 분이(신세경 분)도 연희(정유미 분)도 이방지와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난세를 살아가는 무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 죽이는 것을 즐기는 성격이다. 자신의 칼아래 무릎꿇고 숨이 끊어져가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희열을 느낀다. 칼이란 사람을 죽이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난세에 무사가 손에 칼을 드는 것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손에 칼을 든 순간 언젠가 누군가를 죽이게 될 것을 예비해야 한다. 그것을 사명으로 여기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바란 것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너무나 끔찍하게 싫고 원망스러운 일이라 할지라도. 길태미 역시 같았다. 처음에는 고려의 적들을 죽였고, 그다음에는 이인겸(최종원 분)의 적들을 죽였으며, 그리고는 홍인방(전노민 분)과 자신의 적들을 죽였다. 그리고 이방지 역시 그를 죽이기 위해 칼을 들었고 마침내 그를 베었다. 그럴 각오가 되어 있는가. 아무런 근심도 그늘도 느껴지지 않는 무휼(윤균상 분)의 해맑음이 부러우면서 걱정이 된다. 과연 이 눈앞의 순진한 남자가 자신이나 길태미처럼 그럴 수 있겠는가. 차라리 그러지 않기를.


아마도 이방지이 울음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연희 자신도 눈물을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본원 정도전(김명민 분)의 안위에만 신경쓰려 한다. 더 강하게 호위무사인 이방지를 질책한다. 그의 베이고 찢긴 피투성이 팔뚝을 보고서도 애써 외면하려 한다. 정도전이 눈치가 없다. 어떻게든 견뎌야 한다. 어떻게든 그 순간까지 참아야만 한다. 오랫동안 소망해온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절대 약해져서도 이대로 무너져서도 안된다. 고집이다. 수많은 비관과 절망 속에 그녀는 견디고 버티는 법부터 배웠다. 그런 연희를 이방지는 그저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한다. 자신이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상당히 빠르기는 하지만 결국 최영(전국환 분)과 이성계(천호진 분)가 서로 갈라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부정과 전횡으로 고려의 내정을 문란케 하고 백성을 토탄에 빠뜨린 이인겸의 죄인가, 아니면 지금까지의 고려의 체제를 부정하고 뒤바꾸려는 정도전의 불온함인가. 차라리 공민왕이 갑작스럽게 죽으며 생긴 국정의 혼란을 수습하여 안정시킨 이인겸의 공을 높이 산다. 차라리 고려왕조에 대한 충성과 의리를 포기하고 백성들을 위한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정도전의 선의에 이끌린다. 충성하는 대상이 다르다.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다. 작가의 의도였을 것이다. 각각 이인겸과 정도전에게 설득당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길태미와 홍인방을 제거하기까지 행동을 함께했던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 갈라서고 적대하게 되었는가. 실제 역사에서도 그토록 최영을 존경하고 따르던 이성계였지만 요동정벌을 계기로 끝내 적이 되어 서로 창칼을 겨누는 사이가 되고 있었다.


빠르다는 것은 벌써부터 최영이 이성계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서야 어떻게 요동정벌군 5만의 지휘를 이성계에 맡길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비록 조민수(최종환 분)가 좌군도통사로 서열상 우군도통사인 이성계의 위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실제 군을 움직일 수 있는 실력과 명성에 있어 조민수가 이성계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임은 너무 명백했기 때문이었다. 조민수가 이성계를 제어하는데 실패한다면 5만의 병력은 곧 최영 자신을 공격하는 무기가 될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명성과 군부에 대한 영향력을 지나치게 믿었던 탓이었을까. 그래서 더 기대가 되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이런 우려되는 상황을 무리없이 자연스럽게 드라마로 풀어낼 것인가. 이성계가 최영의 명령에 따라 고려가 동원할 수 있는 전군의 절반을 이끌고 요동으로 향하고, 도중에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최영을 꺾고 고려의 모든 국정을 장악한다.


첫회에서 이인겸에게 이성계의 약점을 편지로 적어 몰래 전했던 암중의 비밀조직이 다시 실체를 드러내어 최영에게 접근하려 한다. 그동안 이성계와 정도전이 이인겸, 홍인방, 길태미 등을 몰아내기 위해 꾸민 계략과 그 과정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모두 소상하게 적어 최영이 찾아 읽을 수 있게 한다. 결정적으로 최영과 이성계 사이에 불신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정도전이 서둘러 두 사람을 찾았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이방지와 분이 남매의 어머니가 실종된 것도 그들이 관여되어 있었을 것이었다. 길태미가 죽는 순간 그와 관계된 것으로 보이는 쌍동이 형 길선미가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기까지 정도전과 이방지 등이 싸워야 할 가장 강력한 적이었을 것이다. 비국사의 적룡조차 말단에 지나지 않았다.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많은, 얼마나 대단한 적들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려는가. 싸움은 처절할수록, 그리고 치열할수록 더 재미있고 즐겁다. 어차피 허구이고 드라마다. 남의 일이다.


바로 이런 것이 보수의 참모습이었을 것이다. 이인겸의 잘못을 몰라서가 아니다. 이인겸이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단지 당장의 고려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이인겸의 실력이 필요했다. 당장의 고려의 체제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인겸의 세력과 영향력이 필요했다. 그에 비하면 이인겸이 저지른 죄악이란 어쩌면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로 인해 피해입고 고통받는 사람들 역시 어쩔 수 없이 더 큰 것을 위해 희생해야 할 작은 것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오히려 더 큰 문제는 고려의 안녕에 위해를 가하려는 정도전과 같은 불순하고 불온한 존재였을 것이다. 아무리 실력있고, 높은 이상과 모두를 위하려는 선의를 가지고 있어도, 그러나 고려라는 기존의 체제와 질서에 위협이 된다면 마땅히 배제해야 할 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반역이야 말로 무엇보다 큰 죄다. 어쩌면 지금까지 가운데 가장 실제의 최영과 가까운 입체적인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정도전의 몇 마디 말보다 최영 자신에게서 나온 한 마디가 그래서 더 설득력을 가진다. 어째서 최영은 이성계와 함께 하지 못하는가. 어떻게 이성계와 정도전이 세우려는 새로운 나라를 위해 최영은 결코 함께 갈 수 없는 것인가. 고려이기 때문이다. 최영 자신이 고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최영과 최영의 가문이 그동안 고려의 체제와 질서 아래 누려온 기득권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그런 것이라면 기존의 권문세족 가운데 상당수가 조선이 건국되고 사대부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지배층에 편입되고 있었다. 최영의 신념이며 고직이다. 그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이며 원칙이다. 아직까지도 고려를 지탱하고 있는 힘 그 자체인 것이다. 차라리 최영으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고 빈손으로 만들어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그를 살리는 길이다. 현실이다. 그러나 암중의 조직이 한 발 더 빨랐다. 최영은 이성계를 적대한다.


이방원(유아인 분)도 자신의 안에서 자라는 벌레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 만에 하나 자신이 벌레에 잡아먹히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분이가 자신을 막아달라. 차라리 역사를 몰랐다면. 차라리 배경이 여말선초의 실재했던 역사시대가 아니었더라면. 정도전이 만든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는 새로운 왕조의 체제를 보며 분이는 어떻게 백성들도 그 안에 끼일 수 없을까 고민한다. 분이의 새로운 역할이다. 아니 처음부터 예정되었을 테지만 이제서야 겨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백성의 입장에서 역사를 본다. 백성의 입장에서 시대를 대한다. 권력의 정점에 서려는 이방원과 대척점에 있다. 비극적인 만남이다. 백성이 역사의 중심에 선다. 어쩌면 관노비로서 사대부들로 이루어진 밀본에서 중책을 맡았던 반촌 도담댁이 그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었을까. 이방지는 될 수 있을까 의심부터 한다. 이방원은 그것을 자기가 가지고 싶다며 욕망을 키운다. 시대가 움직이듯 사람의 마음도 함께 움직인다.


민다경(공승연 분)을 보며 이방원은 새로운 감정을 느낀다. 분이와는 다르다. 자신과 같은 욕망을 공유한다. 같은 야망을 공유한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것을 꿈꾸고 그린다. 굳이 사랑이 아니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뜻밖의 인연을 두 사람 사이에서 찾게 된다. 우연히 이방원과 분이가 함께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겉도는 가운데 두 사람 사이에는 누구도 감히 끼어들 수 있는 그들만의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운명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방원과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은 민다경 자신이었을 것이다. 마음이 잠시 머무는 공간이다. 다정한 마음을 그대로 내버려 둘 정도로 시대는 한가하지 않다.


길태미가 퇴장한다. 가장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주었던 캐릭터였을 것이다. 홍인방은 죽음에 이르러 정도전의 계획을 듣는다. 그와 같은 절망 속에 정도전은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찾았다. 홍인방의 죽음에서 정도전은 새로운 나라를 위한 새로운 계획들을 만들어낸다. 무휼 역시 길태미의 죽음에서 더 큰 자신의 목표를 찾아낸다. 고비를 넘긴다. 새롭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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