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 지켜야 할 울타리와 지키고 싶은 가족, 왕이 되다!

까칠부 2015. 12. 9. 03:46

위화도의 고려군이 보이는 순간 한 가지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무지 춥겠다."


역사에서 위화도회군은 여름인 음력 5월 22일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드라마에서도 이성계(천호진 분)가 요동정벌이 불가한 이유로 내세운 네 가지 이유(사불가설) 가운데 두 가지가 바로 여름에 군사를 일으키는 것과 덥고 습한 날씨로 인해 활의 아교가 풀어지고 전염병이 창궐할 것에 대한 우려였었다. 그런데 정작 위화도로 향하는 길은 내린 눈으로 하얗고, 위화도에 도착해서는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맞아 본 사람만 안다. 찬 겨울에 내리는 칼날같은 겨울비를.


하기는 아무리 그렇다고 겨울에 방영될 분량을 위해 벌써 여름부터 미리 촬영에 들어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위화도회군만 먼저 따로 쓴 뒤 그에 맞춰 나머지를 써가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로 인해 배우들만 그렇지 않아도 추운 겨울에 비까지 맞아가며 고생하게 되었다. 아무리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나와도 찬 바람 한 번만 불면 한기는 뼈에까지 스민다. 이 추운 날씨에 찬 비까지 맞아가며 고생한 배우와 스탭들에게 드라마를 감상하기 전에 심심한 위로와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 노력이 이토록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최영(전국환 분)에게는 사심도 없고 백성 또한 없었다. 하기는 타고나기를 당시 고려에서도 손꼽히는 권문세족의 일원으로 태어나고 있었다. 어쩌면 욕심이 없어서라기보다 굳이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고려의 특권신분으로서 자신에게 지워진 고려라는 국가에 대한 특별한 책임과 의무 역시 제대로 자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최영에게 고려란 이방지(변요한 분)나 분이(신세경 분)와 같이 수많은 이름없는 민초들이 더불어 어울리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강호가 아닌, 오로지 왕과 귀족에 의해 지배되어지는 고려라고 하는 천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고려의 천하를 위해서 백성이 희생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전쟁에서는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며, 고려의 영광된 미래를 위한 희생은 오히려 자랑스러운 것이다. 최영과 이성계의 갈등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이다.


사실 너무 뻔한 파자였다. 백성을 뜻하는 입 구(口)와 무력을 뜻하는 창 과(戈), 그리고 성을 뜻하는 큰 입 구(口), 하지만 정작 나라 국(國)은 성으로 에워싸인 읍락을 뜻하는 상형문자였다. 실제 안의 혹(或)자가 사라진 큰 입 구(口)자는 오래전에는 나라 국(國)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한 편으로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닌 지방행정구역의 단위로도 국(國)이 쓰이고 있기도 했었다. 그러나 어찌되었거나 나라라는 뜻을 가진 국(國)자를 해체하여 나라라는 의미를 설명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나라 국(國)을 파자하는 방법은 이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었다. 무력으로 울타리 안의 백성을 지킨다. 다름아닌 나라를 지키는 무장인 이성계에게 필요한 나라의 의미였을 것이다. 이성계 자신의 무력으로 백성을 지킨다.


어째서 국가(國家)인가. 어째서 나라 국(國) 뒤에 집 가(家)인가. 유교의 국가관이다. 임금은 부모이며 백성은 자식과 같다. 선비와 관리들은 무릇 큰 형처럼 어버이인 임금을 보필하며 어린 동생들인 백성들을 보살펴야 한다. 아직 나라라는 것이 지배자인 왕이고 지배자를 중심으로 한 특권신분인 귀족들만을 뜻할 때 백성까지도 그 울타리 안에 포함시키려 한다. 전제적인 지배권력에 대해 피지배자인 백성들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강제한다. 혈연 대신 충(忠)과 인(仁)으로 이어진 국가란 거대한 혈족집단과 같은 것이다. 물론 현대사회와는 맞지 않다. 대통령은 부모가 아니고, 고위공무원들은 더욱 큰 형이 될 수 없다. 국민은 자식이 아니다. 다만 가족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이성계를 위해 역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피로 이어진 자식만이 자식은 아닌 것이다. 의식이 확장된다. 작은 나(小我)로부터 더 큰 나(大我)로 성장해간다. 대장부는 천하를 집으로 삼고, 임금은 백성을 자신의 몸으로 삼는다. 자신의 울타리 안에 있는 이들이다. 자신의 품안에서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에 대한 모든 책임이 오로지 자신에게 있다. 누군가의 자식이며, 혹은 누군가의 아비이고, 누군가의 형제일 것이다. 자신이 지켜야 할 울타리와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가족이라는 대상이 나라라고 하는 구체적인 대상으로써 그의 의식 안에서 깨어난다. 그 순간 '조선의 첫번째 임금 태조 이성계'라는 자막이 띄워지는 것은 바로 왕의 탄생을 알리려 함일 것이다. 백성은 임금을 그 마음으로 여기고 임금은 백성을 그 몸으로 여긴다. 오로지 백성때문에 살며 백성때문에 죽는다. 또다른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개경에 인질로 잡혀 있는 피를 나눈 가족들마저 저버리려 한다. 그는 왕이다. 왕이 된다.


얼마 안되는 아주 짧은 장면이었지만 이성계와 정도전(김명민 분), 이방원(유아인 분) 세 사람의 서로 다른 개성과 지향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있었을 것이다. 최영이 요동정벌을 추진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정도전과 이성계는 각각 자신의 오랜 꿈이 좌절되는 것과 백성들이 전란의 참화에 희생되는 것만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순리의 세계를 살아간다. 나라와 임금을 바꾸겠다는 당시로서는 반역에 해당하는 꿈이었지만, 그러나 정도전 자신조차 유자로서 백성을 위한 최선을 고민한 나머지 어렵게 내린 결론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칫 홍인방의 역수에 당할 뻔한 위기마저 있었다. 이성계야 당연히 왕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역하기에는 너무나 충직한 군인이었다. 그에 반해 이방원은 그것을 혁명의 기회로 여기고 있었다. 순리로는 위기가 역리로는 오히려 기회일 수 있는 것이다. 정도전 역시 다시 깊이 고민하고 나서야 곧은 바늘로는 물고기를 낚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성계는 위화도까지 가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백성이 이성계의 편에 있다. 개경의 하잘것없는 수많은 백성들이 분이와 함께 이성계와 같은 꿈을 꾸려 하고 있다. 고려를 끝장낸다. 백성을 위한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 정도전이 보여준 꿈에 그들은 목숨을 건다. 개경을 자기집 안마당처럼 훤히 꿰뚫는다.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무엇이 누구에 의해 어디로 움직이는지. 이성계가 결심만 하면 최영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꼼짝없이 그자리에서 잡히거나 죽고 말 것이다. 역사를 알기에 우려하게 된다. 하필 분이다. 하필 이방원과 함께 있는 분이다. 이방지는 역시 본질을 꿰뚫는다. 곧은 바늘로 과연 물고리를 잡을 수 있겠는가. 과거나 지금이나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를 위한 무대가 만들어진다. 개경에 이성계의 가족들이 분이와 함께 인질로 억류되었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한 사실이 알려지기 전 그들을 구해내야 한다.


빠르다. 그래서 상당히 허술한 듯한 느낌마저 준다. 길태미와 홍인방을 제거하고 최영이 권력을 잡는가 싶더니 어느새 요동정벌이다. 비밀리에 준비하고 있던 요동정벌이 도당에서 공식화되는 순간 그에 반대하는 다른 여론이나 주장들은 거의 생략된 채 바로 위화도까지 한 숨에 달려가 버린다. 위화도에서도 별다른 중간과정 없이 바로 최영에 의해 어명을 가지고 도착한 김완과의 갈등이 이성계의 고민마저 단축시켜 버린다. 요동을 정벌하려는 최영의 계획이 밝혀지고 고작 한 회, 홍인방과 길태미가 제거되고 최영이 정권을 잡고 고작 2회만이다. 어쩌면 우왕이 다스리는 천하를 꿈꾸던 최영과 오로지 자신의 실력만으로 모든 것을 움켜쥐려 하는 이방지와 무휼의 강호가 충돌한 때문은 아니었을까. 최영은 무장이기 이전에 고려왕의 신하였다. 최영이 바로 고려였다. 강호의 싸움은 오로지 강호에서 결판난다. 아마도 홍인방과 길태미 역시 몸은 도방에 있었지만 정신은 자유로운 욕망이 꿈틀거리는 강호에 있었을 것이다.


군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계는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군인이란 이순신처럼 자신의 것이란 아무것도 없이 모든 것이 나라로부터 주어졌을 때 쓰일 수 있는 신분인 것이다. 나라에 의해 임명되어 나라를 대신하여 군사에 대한 책임을 진다. 이성계에게는 나라의 명령보다 우선해야 할 자기만의 백성들이 있었다. 자기만의 병사들이 있었다. 자기만의 부하들이 있었다. 비로소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 또한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백성들이 있는 자기만의 나라의 왕이었다는 사실을. 그런 수많은 왕들이 있고 서로 공존할 때 그것을 공화라 일컫는다. 그 왕들이 하잘 것 없는 시시한 개인들이 되었을 때 그것을 민주주의라 말한다. 명령을 따르는 것은 군인이다.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군인이 아니다.


기대한 것보다 많은 공을 들였다. 여러가지로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텐데 세트나 배우의 연기나 거의 흠잡을만한 곳이 없었다. 역사적 사실보다 드라마로서의 재미를 우선한다. 그러나 역사 그 자체를 완전히 놓아 버리지도 않는다. 역사 기둥이 되고 줄기가 되고 척추가 된다. 가지가 뻗고 살이 붙는다. 열매는 무사들의 땀내나는 칼부림일 것이다. 아직은 기다려야 한다. 천하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 강호의 싸움을 기다린다. 완성도가 높다. 즐거움이 있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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