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박동호(박성웅 분)는 누구보다 법을 혐오하고 있을 것이다. 변호사라는 자신의 직업을 환멸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서진우(유승호 분)의 간절한 진심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것일 게다. 자기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 자신의 법은 그런 법이 아니다. 그래서 뒤늦게 서재혁(전광렬 분)의 변호를 맡겠다 나선 의도를 의심부터 하게 된다. 그를 움직인 것은 결코 서진우의 진심이나 서재혁의 진실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서진우의 돈도 아니었다.
연출이 무척 아쉬웠던 장면이었다. 어머니와 형제를 잃었던 사고의 그 순간이 마치 방금전 일어난 일처럼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잊고 싶을 정도로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당시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해서 지금도 여전히 고통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정작 서진우의 회상을 통해서는 전혀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없었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고통속에 살아가고 있다기에는 당시의 기억을 서진우가 떠올린 것은 어머니와 형제의 유골함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을 때가 처음이었었다. 어째서 그동안은 그 기억을 떠올리며 괴로워하지 않았던 것일까?
조금 더 극적인 연출을 기대했었다. 필자 역시 교통사고를 당했던 경험이 있었다. 빗길에 차가 미끄러지며 그대로 한 바퀴 굴렀었다. 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였다. 그냥 휙 하고 한 바퀴 구르며 논두렁에 내던져진 것이었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이 마치 몇 시간은 되는 양 콤마 단위로 상세하게 떠오른다. 운전석에 굴러다니던 볼펜과, 마시고 아무렇게나 버려둔 음료수 깡통과, 무엇보다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탓에 차와 함께 빙글 돌며 어느새 차지붕을 깔고 앉아 있는 필자 자신의 모습이. 안전벨트를 했던 지인은 어깨가 눌리며 뼈가 부러지고 있었다. 차 바깥에서가 아니라 차안에서 어린 서진우가 보았던 풍경을 정지장면을 사용하여 그 순간 일어났던 일들을 클로즈업함으로써 그 순간의 생생한 충격을 전한다. 기억에서 빠져나온 서진우의 표정에서도 그 순간의 충격과 고통이 그대로 느껴질 수 있어야 한다. 말로만 고통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해봐야 느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더구나 그토록 기억이 생생하고 잊혀지지 않는다면 일상 가운데서도 때때로 머릿속에서 떠올라야 할 것이다. 보통사람들도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일들이 예고도 없이 아무때고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바람에 곤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인아(박민영 분)와 처음 인연을 맺었을 때도 하필 버스안이었었다. 이인아의 가방을 찢고 소매치기하여 사라진 범인 역시 훔친 승용차에 오르는 모습이 마지막이었었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연상할 수 있는 장면을 조각내어 기억 가운데 떠올린다. 서진우가 가진 거의 절대라 할 수 있는 무한의 기억력을 제약하는 패널티로써 작용한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려는 순간 자연스럽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의 기억마저 함께 떠오르고 만다. 장차 주인공으로서 마침내 쟁취하게 될 승리와 성공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현재와의 사이에 편차를 보다 극대화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더 우울하고, 더 비참하고, 더 고단한 현실을 마침내 이겨냈을 때 그 성취감 역시 더 극대화될 수 있는 것이다. 하물며 돈을 벌겠다고 불법도박장이라니.
집을 팔았으면 어땠을까? 정상적으로는 그렇게 빨리 팔릴 리 없으니 가까운 누군가에게 터무니 없니 적은 돈을 빌리며 담보로 잡힌다. 그렇지 않아도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병도 현실을 벗어나 있는데 불법도박장에서 무려 1억이나 되는 돈을 따는 장면은 너무 비현실적이다. 덕분에 드라마까지 늘어진다. 박동호의 과거는 그렇다 치더라도 서진우가 돈을 따는 과정까지 불필요할 정도로 상세하다. 차라리 사소한 디테일을 제거하고 첫주가 지나기 전에 드라마의 대략적인 내용을 시청자가 파악하고 시청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해주었어야 했다. 지금으로서는 홈페이지의 내용을 참고하지 않는 한 방영된 분량만으로는 어떤 내용의 드라마일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결국은 첫회 첫장면에서 변호사가 된 서진우가 자신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사형수가 된 아버지 서재혁을 만나게 될 것이다. 누가 그 과정에서 서진우의 적이 될 것인가.
진실이 사실을 이긴다. 하지만 진실을 만드는 것도 바로 그 사실이다. 법정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장면일 것이다.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십시오."
당시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자기가 어째서 그 시간에 그곳에 있었고, 그때까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친구의 딸이기도 했던 피해자의 이름마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청자는 진실을 안다. 그는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병으로 조금씩 기억을 잃다가 마침내 자신의 아들마저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기까지 너무 길고 복잡한 과정들이 필요하다.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것을 대부분의 - 특히 전혀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은 그다지 기다리려 하지 않는다. 인상이 결정한다. 사실이 가지는 관습적이고 관념적인 이유들이 진실을 만들어낸다. 그것을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 유능한 검사고 변호사다. 무수한 사실들로 이루어진 - 그러나 대중의 믿음을 반하는 진실을 찾아냈을 때 그것은 과연 개인들에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기억은 사실인가. 아니면 진실인가. 아니 굳이 그렇게까지 깊이 들어갈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한 가지 우려라면 지금까지 주인공의 특이한 이능에 기대어 만들어진 드라마 가운데 최초의 설정과 의도를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유지한 경우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길로 새다가 흐지부지되어 버린다. 관계에 먹혀 버린다. 그렇지 않아도 서진우의 능력에 대한 디테일이 많이 아쉬운 터다. 본격적인 내용은 다음부터 시작한다. 기대와 바람이 생겨난다. 재미있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6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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