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견디면 어느새 여름의 풍요가 돌아온다. 마른 풀잎들이 푸르게 물들고, 앙상한 나뭇가지에도 뽀얀 새싹이 돋는다. 바다 역시 마찬가지다. 추위를 피해 숨었던 물고기들이 다시 물위로 올라와 어부의 낚시대를 건드린다. 성큼거리며 바다로 나간 아버지의 옆구리에 큼지막한 물고기들이 저녁에 대한 기대를 키운다.
굳이 여름이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겨울의 혹독함 만큼이나 여름의 풍요로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비어있던 유해진의 낚시대에 노래미녀 열기며 우럭이며 물고기들이 주렁주렁 열매처럼 매달린다. 아무것도 없이 배말이나 겨우 따서 양을 불리던 식탁위에 온갖 들과 바다에서 나는 것들이 가득하다. 더 바쁘고 더 수선스러운데도 오히려 바다로 나간 유해인이나 집을 지키는 차승원이나 표정에 여유가 넘친다. 겨울의 허무함과는 다른 노동의 기쁨일 것이다.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고 해초를 따며, 집으로 돌아와서는 닭과 메추리를 기르면서 텃밭에서 푸성귀를 거둬들인다. 물론 김치며 깍두기며 가장 기본적인 반찬들마저 외부에 의존해야 한다. 좁은 섬에 곡식을 심고 기를 땅조차 사실 거의 없다. 그래서 가지게 되는 자연스런 욕망일 것이다. 섬에서 나지 않는 것들에 대한 당연한 갈구다. 몰래 고기를 숨겨오고, 통조림을 감춰 요리에 넣는다. 오히려 바다에서 난 것들이 더 귀하고 비쌀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본능이란 더 어려운 것에 더 이끌리도록 되어 있다.
즐거웠다. 이렇게 사는구나. 이렇게 사람들은 사는구나. 단지 배경만 섬이었다. 고기를 잡는 곳이 바다였다. 모두가 자기만의 만재도가 있고 자기만의 바다가 있다. 자기만의 물고기가 있다. 그렇게 분주한데도 오히려 웃으며 사람들은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산다. 차승원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마치 마법과도 같은 요리들은 그런 일상이 주는 선물이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다가온다. 내가 먹는 것도 아닌데 그 먹는다는 행위에 함께 행복과 만족을 느낀다. 산다는 것은 이렇게도 기쁘고 즐거운 일이었구나.
tvn의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를 보며 항상 감탄하는 이유일 것이다. 어쩌면 모두가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을 것이다. 당연하게 누리는 풍요속에서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행사인지. 그 한 순간을 위해 옛날사람들은 하루종일 밭으로 나가고 바다로 나가 땀흘리며 일해야 했다. 집을 지키던 어머니들도 하루종일 가족들 끼니를 장만하려 바쁘게 움직여야 했었다.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서 누구보다 늦게 잠들었던 어머니를 떠올린다. 아무것없이도 단지 먹는다는 한 가지만으로도 이토록 풍요로운 일상을 보여줄 수 있다.
모두 끝났다. 굳이 그동안 말을 더하지 않은 것은 이미 지난 겨울편에서 할 말을 다 했기 때문이었다. 게스트는 단지 손님일 뿐이었다. 진짜 주제는 바로 만재도이며 만재도의 바다였다. 차승원과 유해진, 손호준이 보여주는 만주도의 넉넉하면서도 분주한 일상이었다. 반드시 한 번은 만재도에 다시 가게 될 것 같다는 그 말에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한 번은 필자도 바다에 가고 싶다. 번거로운 것 없는 한적하지만 분주한 일상들 속에서 잠시나마 현실의 피로를 잊고 싶다. 사람에 지치고 세상에 지친다. 문명에 지쳐간다.
다시 겨울이다. 여름도 가을도 지나고 어느새 다시 추운 겨울이 돌아왔다. 섬을 나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섬으로 돌아갔던 사람들이 다시 도시에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도시의 집에서 한가롭게 놀고 있는 산체와 벌이가 반갑다. 그토록 잡고자 했던 돌돔과 참돔이 단지 도시에서 돈주고 사먹는 요리로 바뀐다. 꿈은 끝났다. 아름다운 기억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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