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당시 지속적인 우편향 정책과 실정에 대해 진보정당과 진보성향의 언론, 논객들의 비판이 빗발치고 있었다. 그러자 지지자들이 어떻게 반격했는가 하면,
"지금의 진보란 단지 시대에 뒤쳐진 낡은 이념에 불과하다."
하기는 당시는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휩쓸고 있었으니까. 유럽에서도 제 3의 길이니 해서 기존의 좌파적인 정책들을 철회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기존의 좌파이념을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비판 자체가 아무 의미도 없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던 것은 '계급'을 부정하며 그 자리에 '국민'을 가져다 놓으려는 시도였다. 이제 계급정당의 시대는 끝났다. 국민정당의 시대다. 어딘가 많이 닮지 않았는가. 계급이 아닌 국민을 보고 정치해야 한다. 그 국민이 바로 이념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중도에 속한 다수의 국민들이다. 그렇게 참여정부는 오로지 중도만 보고 달려가다 그대로 좌초하고 말았다.
안철수가 말한 '낡은 진보'라는 수사에 대해 문재인이 새누리당의 논리라 비판했던 기사를 읽으며 문득 떠올랐다. 물론 문재인 자신은 몰랐을 것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씩이나 되어 지지자들 사이에 이루어지던 첨예한 논쟁따위 일일이 신경쓰기는 무리였을 테니 말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낡은 진보'라는 수사가 가지는 진짜 의미일 것이다. 형용모순이란 곧 존재부정이다.
'하얀 검정'이란 곧 검정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이른 지각'은 오히려 지각을 더 부정적으로 강조하기 위한 수사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낡은 진보란 더 이상 진보가 아니라는 뜻인 것이다. 진보성향의 개인이나 집단에 있어 이보다 더 아픈 비판은 없다. 진보인데 낡았다. 진보인데 뒤쳐져 있다. 그러므로 진보가 아니다. 다시 말해 그보다 이미 더 앞서 있는 자신이 진보다.
문재인 대표가 발끈한 이유였을 것이다. 새정연을 진보로 정의한다면 낡은 진보란 새정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수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새누리당은 그같은 수사를 정면에서 사용한 적이 없었다. 새정연이 진보여야 자신들은 보수일 수 있다. 새정연이 진보여야 색깔을 칠하고 안전하게 보수로 남아 지지자들을 결집시킬 수 있다. 오히려 안철수의 '낡은 진보' 레토릭이 알려지고서야 그것을 이용해 새정연을 공격하려는 이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 부분은 분명 문재인 대표의 실수다. 새누리당은 오히려 새정연이 진보이기를 바란다. 낡은 것도 아닌 시대착오적일 정도로 급진적이고 과격한 진보여야 한다.
아무튼 기묘한 데자뷰였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안철수와 그 지지자를 싫어하는 근본적인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워낙 그때 감정이 상해서 아직까지도 노무현과 그 지지자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감정이 없다. 몇 번이나 말했을 것이다. 너무 닮아서 싫다고. 이런 부분까지 닮았는가.
모르긴 몰라도 아마 이제 곧 안철수 자신도 '낡은 진보'라는 레토릭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중도보수로서 자리매김하려 하고 있다. 새누리당과 새정연의 사이에서 양쪽 지지자 모두에게 손을 내밀려 하고 있다. 낡은 진보가 아닌 진보가 되어야 한다. 새정연이 더 진보가 될 때 안철수에게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넓어진다. 새정연이 혁신에 성공할수록 안철수에게도 기회가 더 생긴다.
신자유주의는 실패했다. 그리고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새로운 대안을 찾아 세계의 지혜가 모이고 있다. 역사는 항상 진보를 추구한다. 그냥 생각났다. 지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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