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이해는 한다. 아직까지 한국정치는 인물이다. 개인의 이념이나 성향, 정책, 행적 등을 통틀어 말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냥 이름이다. 다른 말로 명망이라 말한다. 단지 유명하고 힘이 있어 보이면 인물이라 여긴다. 차라리 욕을 먹더라도 정치인이라면 매스미디어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려야 한다 말하는 이유다. 매스미디어에 얼굴을 자주 비추면 그것만으로도 정치인의 이름값은 뛴다.
이인제가 그렇게 지금까지도 새누리당에서 그것도 중진으로 정치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다른 지역 유권자들이야 피닉제니 뭐니 조롱해도 이인제의 지역구에서는 큰무대에서 지역의 이익을 대변해 줄 지역의 큰인물일 뿐이었다. 정동영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많은 이들이 비웃고 욕해도 당을 박차고 나와 거의 무소속이나 다름없이 출마했음에도 3자대결에서 무려 20% 넘는 지지를 받고 있었다. 당장 호남출신으로 정동영처첨 전국구로 이름을 날린 이가 지금 과연 몇이나 되던가. 천정배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지원은 노쇠했고 다른 인물들은 아직 자라지 못한 상태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정동영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별개다. 그것은 정치공학이다. 그것은 새정연과 문재인의 사정이니 내 사정이 아니다. 기술적으로는 이해하지만 그 동기나 명분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못한다. 당을 바꾸겠다 말했었다. 당의 낡은 구조와 체계를 새롭게 일신하겠다. 지지자들이 지지할 맛이 나는 이길 수 있는 정당을 만들겠다. 그래서 고작 정동영이라는 이름값에 기대려는 것인가. 그럴 것이라면 차라리 안철수를 잡지 그랬는가. 다 내주고, 대표자리까지 내주고 혁신전대든 뭐든 받아들였어야 한다. 이종걸이든 주승용이든 혁신안을 흔들면 다 내주고 그들의 손을 잡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굳이 이런 어려운 처지에 놓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서도 자신과 자신이 대표로 있는 정당을 지지해달라는 것인가.
설마 겁을 집어먹은 것일까? 안철수까지 나갔는데 이대로 아무라도 거물을 끌어들이지 못하면 당이 와해될지 모른다는? 정동영이라도 잡지 않으면 호남에서 완전히 자신들에 등돌릴지 모른다는? 그래서 어떻게든 정동영을 잡아 통합의 의지를 다지고, 호남의 지지도 확보해야겠다는 계산이었을까? 그러니까 묻는 것이다. 그럴 것이면 혁신은 무엇하러 하는 것인가. 그런 혁신이었다면 굳이 그렇게 시끄럽게 집안싸움까지 벌여가며 할 필요가 없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고작 정동영따위나 잡아 지키려는 정당이고 혁신이라면.
어째서 정동영이 2007년 대선에서 대한민국 야당역사상 유례가 없는 참패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는가. 한 마디로 낡은 정치인이었다. 낡은 정치만을 하는 인물이었다. 자신이 가진 컨텐츠와는 별개로 정치 자체는 그저 편하고 좋은 곳만을 찾아 깃드는 철새의 그것이었다. 단지 그가 있던 곳이 당권파이고 주류였을 뿐. 그런데 이제 당의 혁신을 살리자고 그런 인물을 불러들인다. 혁신위가 관용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던 인물 가운데 태반을 문재인은 끌어안으려 하고 있다. 그들보다 안철수가 못한 게 무언가. 안철수가 나가고 정동영을 끌어들이는 것보다 혁신전대가 못할 건 또 무언가.
어차피 지지자도 아니었다. 방관자였다. 지켜보고 있었다. 과연 당은 혁신할 수 있을 것인가. 낡다 못해 아예 썩어서 구멍이 숭숭 뚫린 퇴물정당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확인했다. 문재인은 깜냥이 아니다. 안철수와 마찬가지로 문재인 역시 정치를 해서는 안되는 인물이었다. 이상에도 투철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현실에 충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가운데서 이도저도 아니게 헤매면서 괜한 오기만을 신념처럼 앞세운다. 그 결과가 지금의 야권의 분열이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려 했건만.
아무튼 안철수는 속이 좁고 문재인은 중심이 없다. 어느쪽이든 대통령감은 아니다. 국회의원까지는 몰라도 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지기에는 너무 좁고 너무 약하다. 국민의 인구만큼이나 많고 다양한 서로 다른 입장과 이해와 주장들을 어떻게 조율하고 판단할 것인가. 차라리 그냥 포기하는 편이 낫다. 그저 다음 대선에는 둘 중 누구도 아닌 다른 후보가 야권의 단일후보로 나올 수 있기를 바랄 뿐.
이번 총선의 투표방향은 정해졌다. 어차피 이겨봐야 볼 것 없다. 문재인이든 안철수든 누가 이기든 그냥 또 이 꼬라지다. 차라리 제대로 망하기라도 한다면 다른 대안이 생겨난다. 가장 안좋은 것은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다. 최악은 그래도 최악은 면해야겠다는 동기는 되어 줄 수 있다. 표 주고 다시 다음 선거까지 속썩이느니 속편하게 내 하고픈대로 투표하고 맘껏 욕하고 말련다. 참여정부 5년은 매일이 스트레스였었다.
한계를 드러낸다. 내가 어리석었을 것이다. 고작 저런 정도의 인물이었다. 더 심한 표현을 쓰고 싶지만 나보다 나이도 한참 많은 어른에 대한 예의는 아니라 여기기에. 안철수나 문재인이다. 양초의 난이었을까. 차라리 김한길이 더 나아 보인다. 어차피 지지할 생각이 들지 않는 것 이놈이나 저놈이나다. 여당이 문제가 아니다. 야당이 그보다 더 한심하다는 것이 문제다. 새삼 깨닫는다. 잠시 토하고 오련다. 역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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