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정의로운 것이 아니다. 사람이 정의로운 것이다. 사람이 정의롭지 못하다면 법도 정의롭지 못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법에 속게 된다. 사람이 아닌 법만을 바라보다가 결국 사람에 속게 된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법과 법의 정의만을 믿으려 한다. 법이 인간을 오만하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고작 여자 하나다. 고작 아무것도 아닌 남자 하나다. 수천수만의 운명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으니까. 더 크고 더 훌륭하고 더 가치있는 일을 해야 할 특수한 신분에 있으니까. 너무 높이 위에 올라 아래를 굽어보려니 까마득히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이름은 무엇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단지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가야 하는 길 위에 놓여진 그저 기호에 불과하다. 너무나 당당하고 그래서 차라리 정의롭다.
배신이 아니었다. 타락도 전락도 아니었다. 하기는 더 이상 타락할 것도 없을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 혹은 어쩌면 처음으로 진심이 되어 재판에 임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단지 진 것 뿐이었다. 단지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 버린 것 뿐이었다. 어차피 어떻게해도 이기지 못할 재판이라면 차라리 더이상 불필요한 피해와 소모라도 줄일 수 있게 이쯤에서 포기하고 물러서자. 아버치러럼 따르던 석주일(이원종 분)도, 재판도중 떠오른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도, 단지 핑계였고, 이미 자신이 흔들리고 약해지고 있다는 증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겨우 재판을 마치고 도망치듯 돌아서 나오는 박동호(박성웅 분)를 불러세운 것은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운 웃음을 짓고 있는 검사 홍무석(엄효섭 분)이었다. 억지로 내키지 않는 손까지 잡아끌어 악수까지 하고 있었다. 남규만(남궁민 분)이 직접 사무실까지 찾아와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제 자신은 저들과 같은 편이다. 이제부터 자신은 그토록 혐오하고 경멸하던 저들과 같은 무리가 되었다. 마치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다쳤는지 확인한다고 소금가마를 그 위에 붓는 것과 같다. 쓰리고 아린 상처가 너무나 선명히 느껴진다. 너무 아파서 이대로 진 채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진우야, 네 아버지 아직 살아있다! 네 아버지 죽기 전까지 재판은 끝난 게 아닌기라!"
"하지만 이 계약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더! 지는 이대로는 제 의뢰인 절대 포기 못합니더!"
아버지 서재혁(전광렬 분)이 사형판결을 받기까지 불성실하고 무기력한 태도로 일관했던 자신의 모습에 배신을 당했다며 달려온 서진우(유승호 분)의 주먹이 들끓던 그의 그같은 불만과 분노를 뚜렷한 실체로 바꾸어준다. 아직 재판은 끝난 것이 아니다. 사형판결까지 내려졌지만 아직 서재혁이 살아있는 이상 판결을 뒤집고 진실을 밝힐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기회를 만들고 이번에는 확실하게 이길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다. 아니 서진우가 스스로 변호사가 되어 아버지를 살리고자 한다면 그를 돕는 것이 변호사로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다. 다만 그러기까지 지금의 오해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아무튼 흥미롭다. 한 번 본 것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까지 모두 기억해내는 절대기억의 능력을 가진 젊은 초임변호사와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노련한 중견변호사의 조합이라는 것은. 여기에 괜한 오지랖으로 남의 일마저 자기 일처럼 물불 안가리고 뛰어드는 정의롭다기보다 무모하기까지 한 젊은 초임검사 이인아(박민영 분)까지 더해진다. 그들은 어떻게 이미 한 번 결정된 진실을 법의 이름으로 뒤집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러기까지 그들이 거쳐야 할 사건들은 또 어떤 진실을 보여줄 것인가. 기왕 변호사와 검사가 주인공인데 아버지의 사건만을 쫓으며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까지 그들이 싸워서 이겨야 하는 적으로서 한일호(한진희 분) 회장의 캐릭터가 너무 약하지 않은가.
어쩌면 너무 평이하다. 아니 의도한 것일 수 있다. 전혀 악으로 여겨지지 않는 역이다. 스스로 자신을 연민하지도 변명하지도 않는다. 그냥 당연하게 일상처럼 악을 저지른다. 다만 그런 경우 그와 연결된 주변인물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남규만은 더 맞아야 하고, 홍무석은 더 악해져야 한다. 그러기에는 아직까지 홍무석과도 겨우 한 번 만났을 뿐이도, 남규만도 겨우 한 번 죽도로 맞았을 뿐이다. 아직까지 남규만의 살인과 관련한 이외의 다른 남일호의 악이 드러나거나 알려진 것도 전혀 없다시피 하다. 차라리 남규만의 광기가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법이 진실이라 여긴다. 법정의 판결이 정의라 믿는다. 사실이 실제다. 그러나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들마저 어느새 중력에 이끌린 듯 비틀리고 일그러진다. 입에서 나오는 말들마저 어느새 탐욕에 얼룩진다. 사실이라서 사실이 아닌 사실같아서 사실이다. 그 한 번의 재판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결정된다. 무고한 한 개인이 살인자가 되어 사형판결을 받고 사랑하는 아들과 헤어져 차가운 감옥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게 된다. 어쩌면 정의란 이렇게 무책임하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날선 증오로 단지 원망하며 미워하며 살아갈 뿐.
어쩌면 박동호와 서진우 사이에 자신들조차 알지 못하는 어떤 더 오랜 인연이 감춰져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 악연은 한일호 회장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었을 것이다. 박동호와 홍무석과의 악연도 모두 그로부터 시작되었었다. 박동호의 회상에서 박동호의 아버지가 사고를 일으키던 장면이 데자뷰처럼 서진우의 기억속에서 어머니와 형제를 잃었던 사고의 장면과 겹치고 만다. 우연은 아니다. 드라마란 때로 슬프도록 효율적이다. 악은 크고 강하고 무엇보다 지독할수록 동기도 흥미도 강해진다. 먼 이야기다. 겨우 4년을 건너뛰었을 뿐이다.
사소한 설정의 오류들이 눈에 띈다. 개연성에 있어 허술한 부분도 적지 않다. 약간은 길게 늘어진다는 느낌도 있다. 아마도 박동호를 위한 배려일 것이다. 드라마의 캐릭터로서 상당히 복잡한 박동호의 캐릭터를 보다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그려줘야 드라마에 확실한 중심이 잡힌다. 설정도 개연성도 결국은 재미를 위한 것이다. 재미가 나머지를 잊게 만든다.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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