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태양의 후예 - 여전히 영화를 끝까지 보지 못하다

까칠부 2016. 4. 8. 05:44

당했다. 설마 이런 식으로 이중의 그물을 칠 줄이야. 유시진(송중기 분)이 피투성이가 되어 강모연(송혜교 분) 앞에 나타나기까지가 낚시였다. 내전이 막 끝난 혼란스러운 이방의 땅 우르크와는 전혀 다른 서울의 평온한 일상에 시청자마저 물들어갈 때 핏빛 비극이 펼쳐진다. 그러나 그마저도 겨우 원래 그런 의도였었다고 스스로 납득하려는 순간 그런 것이 아니었다며 자신들이 쳐놓은 그물을 공개한다. 꼼짝없이 제작진이 의도한대로 휘둘려야만 한다.


다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남북한 특사회담의 경호를 위한 리허설 도중 북한군 특수부대 상위 안정준(지현승 분)이 나타나고 바로 유시진이 총을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던 것이 아니었다. 그냥 압축해서 미리 결과만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나머지 자세한 내용들은 다음 회차에서 여유를 두고 차근히 풀어 보여줄 계획이다. 안정준이 나타나고 그곳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유시진은 누구의 총에 맞아 그런 처참한 모습이 되었는지. 배우 송중기가 촬영 도중 큰 부상을 입은 사실을 새삼 납득하게 만드는 격렬한 총격전이었다. 좁은 지하주차장에서, 그나마 한 쪽은 차에 탄 채고 다른 한 쩍은 고작 두 명이서 맨몸으로 주차된 차들 사이로 뛰고 구르며 벌이는 총격전이었는데 정교하고 넘치도록 꽉 차 있었다. 우리의 영웅 유시진 대위는 수에서도 무장에서도 앞선 뜻밖의 침입자들을 맞아 모두를 무찌르고 안정준까지 구하며 끝내 부상을 입게 된 것이었다.


물론 아무래도 이렇게까지는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려 지근거리에서 다수의 총탄에 맞고 심정지까지 갔었던 상태였다. 그리 넓은 곳도 아니었고, 달려드는 승합차를 멈춰세우느라 아주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해 있었다. 아무리 권총탄의 살상력이 약하다고 더구나 기관단총으로 한꺼번에 여러 발을 맞았는데 즉사하지 않은 것만도 기적이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런데 아예 강모연의 필사적인 응급처치로 겨우 멈췄던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싶자 바로 정신을 차리더니 안정준이 인질극을 벌이는 장소로 제 발로 걸어 찾아가고 있었다. 심지어 나중에는 다른 특수부대원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직접 저격총을 들고 안정준을 돕기 위해 사격까지 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멀쩡한 서대영(진구 분)또 함께 있었다. 어쩌면 맥아더의 말처럼 진짜 군인은 전장에서 죽는 것이 아닌 사라져 보이지 않는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 진짜군인 유시진은 불사이고 불멸이다.


하지만 어차피 그런 드라마였을 테니까. 디테일은 단지 장식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 사이의 관계다. 그 두 사람이란 유시진과 강모연이었을 테고, 서대영과 윤명주(김지원 분)이기도 했을 것이다. 많이 늦은 송상현(이승준 분)과 하자애(서정연 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이사장 한석원(태인호 분)과 강모연의 관계 또한 그로부터 뻗어나간 가지다. 안정준과의 미묘한 우정 역시 유시진이라는 뿌리에서 자라났다. 그리고 사람들은 매 순간 다른 누군가로 인해 울고 웃고 화내고 기뻐하며 후회하고 희망한다. 단지 짧은 시간 안에 그 모든 것을 담아내기 위해 더 시간을 압축했을 뿐이라 이해한다. 유시진이 겨우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다시 살아나기까지의 시간을 드라마안에서 고작 몇 분 정도로 압축한다. 어차피 드라마를 보다 보면 10년도 불과 몇 초만에 벌써 흘러가버리기도 한다.


서로의 조국을 위해서. 서로 마주보며 적대하고 있는 자신들의 조국을 위해서. 분명 처음 만났을 때 유시진과 안정준은 서로를 향해 칼과 총을 겨누어야 하는 적이었었다. 두 번 째 만났을 때는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자신들의 임무를 위해 나란히 서서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조국이 서로 적대하기에 그들은 서로 적대하고, 조국이 서로 화해하려 하기에 그들 역시 스스럼없이 서로 어울리 수 있었다. 이제 조국을 위해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누군가는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명령을 완수하기 위해 죽을 것을 알면서도 굳이 북으로 돌아가려는 안정준의 결심을 유시진은 이해한다. 유시진이 자신을 이해해 줄 것을 안정준 역시 알고 있었다.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들 뿐이다. 동병상련이라고 말한다. 친구라기보다는 같은 길위에 서 있는 동료이자 동지라 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서로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다. 또 한 명의 친구를 떠나보낸다. 어쩌면 아구스 역시 잘못된 길로 스스로 걸어들어간 미래의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역시 병원에 입원하고부터는 유시진과 강모연 사이에 새롭게 평화로운 일상들이 이어진다. 미워하고 투정부리고 화내고 걱정하면서 그들은 그 순간에도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애써 억누르고 있단 불안이 모습을 드러낸다. 무려 총에 맞아 목숨이 경각에 달린 모습으로 유시진이 자신의 앞에 실려오고 있었다. 겨우 살려냈지만 다음에도 살려낼 수 있을지 모른다. 유시진이 하는 일들의 의미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도 그렇기 때문에 더욱 유시진에 대한 걱정만 커지게 된다. 끝내 유시진과 강모연은 영화를 끝까지 다 보지 못하고 잠들고 말았다. 자신들에게 지워진 임무가 고단해서. 일상이 피곤해서. 서로 사랑하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안타까운 곳에서 닿지 못한 채 맴돌고 있다.


결국 이번에도 서대영은 윤명주 앞에서 지나치게 멋을 부리려 한다. 상대의 자존심을 배려하는 자신의 모습이 보기에도 참으로 멋있다. 하지만 윤명주가 바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한다. 그렇다면 당장 윤명주에게 해야 할 말들과 보여주어야 할 행동들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사정이 허락할 때만 비로소 서대영은 윤명주 앞에서 당당할 수 있고 솔직해질 수 있다. 어찌보면 비겁하다. 겁쟁이다. 뒤쫓아 나가서도 마차 다가서지 못하는 그 몇 걸음이 서대영이 가지는 거리다. 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전하지 못하는 것이고, 닿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들으려 않는 것이다. 혼자서 사랑하고 혼자서 만족한다. 새삼 서대영이 외동이더라는 윤명주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고독에 익숙하다.


예고편은 보지 않는 것이 낫다. 다시 한 주를 기다려야 한다. 온갖 망상들이 머리속에서 자라난다. 스스로 낚시가 아닌 그물로 걸어들어가고 만다. 그렇게 결국 유시진은 다시 살아났다. 유시진이 하는 일들에 대해 강모연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은 불안이 남아 있다. 머리로만 더이상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라 스스로 설득하고 납득할 뿐다. 아직도 서대영과 윤명주의 마음도 서로를 향하고 있다. 사람은 사랑을 하기에 서로 행복하다. 시간이 빠르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17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