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김태원이 나쁜 작사가인 이유...

까칠부 2016. 8. 8. 01:13

가사란 곧 노래다. 원래 시란 노래에서 시작되었다. 언어 자체가 리듬과 멜로디를 갖는다. 고저와 장단, 강약을 갖는다. 그 고저와 장단, 강약을 적절히 배치하여 보다 아름답게 들리도록 고안한 것이 바로 시라는 것이다. 이른바 한시에서 말하는 운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쓰여진 시에 다시 리듬과 멜로디를 더하면 그것이 노래가 된다.


대부분의 경우 그래서 노래가사를 쓸 때 가사 자체만으로 하나의 노래처럼 들릴 수 있도록 고민해서 쓴다. 대구를 이루거나, 특정한 단어나 음절을 반복하거나, 한 번에 발음하는 음절의 길이를 제한하거나. 노래가사에 괜히 영어문장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겉멋도 아니고 사대주의도 아니다. 영어만이 가지는 리듬을 노래 안에서 활용하려는 것이다.


김태원의 가사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다. 시는 시인데 자유시다. 형식으로부터 자유롭다. 운율로부터 자유롭다. 김태원이 작사가로서도 탁월한 것은 그 자신이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사가 가지는 리듬과 멜로디를 자신이 직적 곡으로 만들어 붙인다. 노래가 가지는 감정을 자신이 직접 쓴 곡을 통해 극대화한다. 좋은 작곡가는 그래서 좋은 작사가이기도 하다. 좋은 작사가는 좋은 작곡가이기도 하다. 자기가 직접 곡을 쓰지 않으면서 가사를 쓴다는 것은 그래서 매우 어렵다. 노래는 가사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음악은 가사 없이도 존재한다. 


정말 부르기 어렵겠구나. 가수들이 김태원의 노래를 부르기 어려워하는 이유다. 부르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 음은 더럽게 높고, 박자도 멋대로 변박을 탄다. 일정한 형식 없이 쓴 가사의 복잡한 감성을 멜로디로 표현하느라 그렇다. 쉽게 발음하고 쉽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니다. 곡을 그나마 잘써서 살았다. 작사만 했다면 참 재미있었을 것이다.


도원경의 '다시 사랑한다면'이나 이소라가 직접 가사를 쓴 'curse'를 들으면서 느낀다. 노래가사는 원래 이렇게 써야 하는 것이다. 그냥 가사만 보고 있어도 그 안에 숨은 음악이 들리는 것 같다. 반면 김태원의 가사는 일단 먼저 노래들 듣고 읽어야 음악을 느낄 수 있다. 작곡가라는 것은 참 편리한 직업이기도 하다. 이런 난해한 가사도 훌륭한 노래로 만든다.


물론 같은 문장이라도 읽는 사람이 어떻게 읽는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리기도 한다. 역시 고저와 장단과 강약이다. 그래서 훌륭한 낭독가는 훌륭한 작곡가와 같다. 같은 문장으로 더 쉽게 더 편하게 더 이해하기 좋게 언어들을 풀어낸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그 여백마저 충실히 사용한다. 언어가 음악이 된다. 이야기하듯 부른다는 의미다.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