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 이루어질 리 없는 사랑을 대하는 자세, 세자의 키스

까칠부 2016. 9. 13. 05:16

뜻밖에 흥미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묘사된 것처럼 실제 조선시대 궁에 사는 모든 여성들은 원칙적으로 왕의 소유였다. 오로지 왕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그를 위해 평생 독신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가련한 존재들이었다. 그나마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왕의 눈에 들어 승은을 입고 후궁이 되는 것인데 수백에 이르는 궁녀들 가운데 그같은 행운을 누릴 수 있는 이들은 그야 말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러면 나머지 궁녀들은 어떻게 살았겠는가?


이상은 이상, 원칙은 원칙, 현실은 현실이다. 그나마 왕의 친족들을 가까이서 모시던 지밀나인들은 오다가다 우연히라도 왕의 얼굴을 보는 행운도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밖에 실제 궁의 모든 살림을 책임져야 했던 수방, 침방, 소주방, 생과방, 세답방의 나인들은 아예 같은 궁이지만 생활하는 공간 자체가 달랐다. 항상 분주한 일상에 치여 사는 나인들을 우연히 지나가던 왕이 발견하고 마음에 들어 승은을 내리는 기적따위 현실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저 시키는대로 모든 욕망을 억누른 채 순종하며 살아가기에는 그들은 아직 피끓는 젊음이었다. 아무리 법과 제도가 그들을 억눌러도 그들은 인간이며 여성이었다.


그래서 조선왕조 내내 이와 관련한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었다. 남성이 없었기에 여성들끼리 서로를 위로하는 경우도 있었고, 그나마 왕실의 가족을 제외한 궁을 출입하는 다른 남성들 가운데서 짝을 찾으려는 이들도 있었다. 궁에 소속된 하급관리인 별감이나 서리, 혹은 왕족이나, 특히 그 가운데 궁에서 함께 생활하며 여러가지로 마주칠 일이 많은 내시들이 그 주된 대상이었다. 들키면 거의 참형에 심지어 가족까지 연좌되는 경우마저 있었지만 실상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 이상 알아도 모른 척 쉬쉬하며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원칙이 그렇다고 수백에 이르는 궁녀를 일일이 신경쓰기에는 왕의 업무가 그리 한가하지 않았던 데다, 어차피 평생 얼굴 한 번 보지 못할 이들인데 그들의 처지에 대한 동정과 연민 또한 어느 정도 섞였기 때문이었다. 드러나지 않게 그렇게 은밀히 자기들만의 삶을 살아간다.


하필 그 가운데 내시와 궁녀의 사랑을 다루고 있었다. 한 가지 부연하자면 중국과 달리 조선의 내시들은 고환만을 제거하고 성기를 남겨두었기에 완전하지는 않지만 성생활이 가능했다. 그래서 더욱 조선의 궁궐에서 궁녀와 내시 사이의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알면서도 모른 척 넘어가지만 만에 하나 두 사람의 사이가 윗전에 발각된다면 죽음을 면할 수 없다. 아마 모르긴몰라도 중전 앞에서 입덧까지 한 그 궁녀는 사료의 전례를 따르자면 임신한 아이를 낳기까지 기다렸다가 사형에 처했을 것이다. 그나마 임신한 채로 아이까지 죽이지 않는 것이 조선 나름의 인도주의였다. 그런데도 그런 위험까지 감수해가며 그들은 사랑해야 하는 것인가. 역시 이루어질 리 없는 사랑을 하는 세자 이영(박보검 분)과 내시 홍라온(김유정 분)의 관계가 그들에게 오버랩된다.


현실적이었다.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다. 만에 하나 들키기라도 하면 가족까지 무사하지 못할 수 있다. 헤어지는 것이 현명하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 틀어진 채 그저 다시 만나지 않는 것으로 좋은가. 자신의 처지를 이입한 탓일 것이다. 원래 남의 사랑을 돕는 오지랖으로 유명하기도 했었다. 이루어질 수 없다면 헤어지기라도 잘해야 한다. 마음에 상처가 남지 않도록. 후회도 미련도 남기지 않도록. 그래서 앞으로 아무일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도 그러기를 바랐지만 세자는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막무가내였다. 설마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가 남자인 것을 알면서도 무모할 정도로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할 줄이야. 성추행이다. 동의하기도 전에 먼저 상대에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홍라온이 자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려고?


중전 김씨(서정연 분)가 알았다. 사실 이것도 무리수다. 조선시대 양반만 - 아니 조금 행세하는 양인만 되어도 그런 식으로 아랫것들에게 함부로 손찌검하지 않는다. 혼을 낼 일이 있으면 역시 아랫것들을 시킨다. 체통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하물며 한 나라의 국모인 중전이며, 더구나 임신한 상태였다. 임신 중에는 보고 듣고 먹고 만지는 모든 것까지 섬세하게 신경써야만 한다. 하지만 악역으로서 중전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아주 짧은 분량으로도 중전이 원래 어떤 사람인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홍라온을 향한 세자의 감정을 알아챈 중전은 다음에는 어떻게 그를 이용해서 곤란에 빠뜨리려 할까.


그러고보면 확실히 실제의 역사와도 맞는지 모르겠다. 고종을 세우고, 대원군을 실각시키고, 마침내 명성황후마저 위기로 몰았던 여걸 조대비와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장래의 세자빈 풍양 조씨 조만형(이대연 분)의 딸 조하연(채수빈 분)이 닮았다. 원래는 안동 김씨의 김헌(천호진 분)과 풍양 조씨의 조만형이 혼인으로 연합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정작 김헌의 손자 김윤성(진영 분)은 홍라온을 마음에 두고 있었고 조하연도 세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지 오래였다. 김윤성의 사랑도 앞날이 험난하기는 마찬가지다. 설사 홍라온이 다시 여자로 돌아오더라도 야심이 큰 할아버지 김헌이 그녀를 인정하려 할까?


그나마 세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은 더 위험하다. 일개 내시라면 그냥 모른 척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세자이기에 작은 것도 큰 일이 될 수 있다. 세자라는 자신의 신분에 대한 자신감이 내시 마종자와는 다르게 불가능한 사랑에도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게끔 만든다. 굳이 홍라온의 대답을 들을 것도 없이 당연하게 자신의 마음이 전해졌다 여기도록 만든다. 하지만 임신한 중전이 알았고 그를 공격할 무기로 삼을 수 있다. 세자가 위태로워지면 그의 총애를 받는 홍라온의 앞날은 더 비참해질 수밖에 없다.


역시 김윤성만으로는 부족하다. 궁궐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내시 가운데 조력자가 한 사람쯤 필요하다. 필요한 때 그를 감싸주고 그의 비밀을 지켜줄 사람이다. 이룰 수 없는 간절한 사랑이 그들 사이에 유대감을 만든다. 신분을 감추고, 정체를 감추고, 성별마저 숨긴 채 뒤쫓고 싶은 사랑이 있었다. 여러가지로 쉽지만은 않을 두 사람의 앞날이다. 축복하기보다 어떻게 되나 지켜보고 싶은 것은 필자가 짓궂기 때문일까. 어쩌면 너무 어울려 보이는 탓이다. 좋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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