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다가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선기공주를 쫓아 나라를 되찾겠다고 나선 활족들이 하나같이 여자들이다. 당장 궁우만 하더라도 아버지는 활족이 아니었지만 어머니가 활족이기에 활족이 되었다. 어째서 활족의 나라를 되찾겠다고 나선 남자가 이토록 보이지 않는가.
황제가 말한 멸족이라는 말에 주목한다. 그저 왕족과 지배신분만을 제거했다고 멸족이라 말하지는 않는다. 활족 왕실의 남자를 모두 죽이고 공주는 노예로 끌고와 액유정에 가두었다. 하지만 그런 정도를 가지고 멸족이라 말하기에는 아예 예왕의 출신을 문제삼지 않는 황제의 태도가 의미심장하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 활족의 나라를 되찾겠다는 남자가 없는 이유가 아닐까. 한 마디로 활족의 남자는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
고대사회에서 멸족시킨다는 의미다. 남자는 모두 죽이거나 거세해서 생식능력을 없앤다. 여자들만 납치해서 노예로 삼고 성적 도구로 삼는다. 아주 최근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인종청소가 일어났을 때도 비슷하게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성노예로 삼는 일들이 일어났다. IS역시 이교도를 공격하면서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성노예로 삼거나 혹은 팔아넘기는 반인간적인 행위를 저지르고 있었다. 반역이 일어나면 그 일족의 남자를 모두 죽이고 여자는 노예로 삼는 것도 그런 일환이다. 그러면 그런 일들을 다 누가 저질렀을까?
그래서 차라리 임수나 아비 임섭이나 백기만도 못한 인간들이라 여기게 되는 것이다. 최소한 백기는 죽기 직전 자기가 그동안 죽인 사람들을 떠올리며 미련을 거두기라도 했다. 그동안 자기가 지은 죄가 있으니 지금의 결과도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억울한 죽음이지만 그렇게 승복하고 순순히 죽음을 맞았다. 그런데 임수는 어떤가. 하긴 그런 것이 권력자이기는 하다. 학살의 잘못은 없고 그에 저항하는 죄만 남는다.
선기공주가 그렇게 악착같이 임섭과 적염군을 몰살하고자 했던 이유였다. 임섭 뿐만 아니라 아예 임씨가문 자체를 멸족시켰다. 황제로 하여금 스스로 아들을 죽이도록 만들었다. 오히려 드라마를 보면서 더욱 이끌리고 마는 인물이다. 어린 나이에 노예로 끌려와서 여기까지 자신들을 멸망시킨 적에게 복수를 성공시켰다. 일찍 죽지만 않았다면 최소한 활족을 다시 부흥시키지는 못했어도 양나라 만큼은 확실하게 멸망시키지 않았을까.
인과응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결국 복수도 성공하고 명예회복에도 성공했지만 그러나 임씨가문은 임수를 끝으로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단 한 사람의 후손도 남기지 못했다. 죄은 언젠가 자신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 믿고 싶어진다. 악은 벌을 받아야 한다.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지만. 아무튼.
임수와 양나라 조정 내부의 일은 별개, 그리고 임수와 활족과의 일도 별개, 양나라 조정과 활족과의 관계도 별개. 어차피 망한 나라다. 그리고 역사에서 수도 없이 있어온 일들이다. 중국문명이 확장해 온 과정이기도 하다. 임수의 죽음이야 말로 임씨가문의 속죄다. 선기공주의 존재에 감탄한다. 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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