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두려운 것은 죄책감이다. 자신으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고통받는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모두의 평화로운 일상이 위협받는다. 그런데도 괜찮은 것인가. 그래도 사랑해야 하는 것인가.
차라리 악마이기를 바란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악인이기를 기대한다. 그가 받는 고통이 정의여야 한다. 그가 겪게 될 곤란이 당위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세상에 그정도 악인은 그리 많지 않기에 결국 자기가 대신 악마가 되어야 한다. 자기가 악마가 되어 상대를 악마로 만든다. 그만한 각오가 없다면 결코 자기가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다.
얼마나 다행이었을까. 최수아(김하늘 분)가 자신의 남편 박석진(신성록 분)에 대해 한서린 말들을 쏟아내는 것을 숨어서 들었을 때는. 최수아를 못된 남편으로부터 구하는 것은 자신의 사명이기도 했다. 자격이 없는 남편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자신의 의무였다. 하지만 정작 최수아의 현재 법적인 남편인 박석진을 만나는 순간 그런 계산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그럼에도 결국 그런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은 최수아 자신이었다.
부부가 헤어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서도우(이상윤 분) 자신도 역시 아내 김혜원(장희진 분)을 악마라 여기고 있었다. 태어난 딸을 버렸다. 버렸던 딸을 그동안 자기가 길렀다 거짓말까지 했다. 딸을 이용했고 다시 딸을 버렸으며 간절한 바람도 무시한 채 외국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도록 만들었다. 딸이 죽게 된 책임의 일부도 아내에게 있었다. 그런 아내를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아내인데도 차마 헤어지려니 쉽게 결심이 서지 않는다.
비로소 처음으로 아내의 진심을 들을 수 있었다. 엄마로써 자기가 낳은 아이를 버리고 떠나야 했던 이유에서부터 오랜만에 다시 만난 딸에 대한 당시의 생각들까지. 모성이란 환상이다. 물론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자신이 낳은 자식을 지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던져가며 희생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한 편으로 야생에서도 어미인 자신이나, 혹은 새끼가 감당할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되거나 하면 잔인하게 자식을 희생시키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생존을 위한 본능과 같은 것이다. 만일 둘 중 하나만 살아야 한다면 어차피 어미인 자신이 없이 새끼가 살아날 수 없을 것이므로 어쩔 수 없이 새끼를 희생시켜야 한다.
과연 자신은 좋은 어머니가 될 수 있을까? 자신이 낳은 아이를 제대로 바르게 기를 수 있을까? 문득문득 아이의 존재로 인해 느끼는 불편함이나 부정적인 감정들이 오히려 그런 불신과 회의를 증폭시킨다. 김혜원의 대사 가운데 재혼한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는 부분이 신경쓰인다. 대개는 어렸을 적의 경험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 모성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모성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게 되면 그것이 어머니가 된 자신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안타깝게도 그 단계에서 딸에 대한 사랑보다 서도우에 대한 사랑이 더 컸었다. 서도우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딸마저 이용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누구보다 그런 자신을 혐오하고 환멸하면서도.
아내 김혜원은 아내가 아니었다. 마침내 아내로부터 듣게 된 진실은 그녀 또한 가련하고 안타까운 현실의 희생자라는 것이었다.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이 없었고 나쁜 엄마가 될 것이 두려웠고 아무런 기억도 감정도 남아 있지 않은 아이에게 실제로 좋은 엄마가 되어 줄 수도 없었다. 누구보다 김혜원 자신이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필 유일하게 사실을 털어놓고 도움을 구할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 가장 그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남편으로서 그런 아내의 고민을 들어줄 수도 있어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서도우의 사랑은 김혜원에게 그 정도 신뢰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아내인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여자와 만나는 것보다 남편이 있는 여자로 인해 겪어야 할 수모와 상처를 더 걱정하는 아내를 보며 어떻게 끝까지 미워만 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아내 김혜원의 사정과는 상관없이 최수아를 향한 서도우 자신의 감정은 진심이다.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와 함께하고 싶다. 김혜원이 악마가 되지 않았다면 서도우 자신이 악마가 되어야 했을 것이다. 김혜원이 더이상 악마가 아니게 되었을 때 사실을 자신이 의도적으로 김혜원을 밀어내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깨닫고 만다. 김혜원을 사랑할 수 없어서 최수아를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라 최수아를 사랑했기에 김혜원을 사랑할 수 없는 이유를 찾아나선 것이다. 어떻게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박석진이 최수아와 결혼하며 비로소 송미진(최여진 분)이 박석진이라는 남자의 주박에서 풀려났듯 서도우라는 또다른 남자를 통해 최수아 역시 부부라고 하는 관습의 속박에서부터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사랑할 또다른 남자가 생겼다. 함께하고픈 또다른 대상이 생겼다. 최수아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박석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먼저였다. 최수아와 서도우 사이에 서로에 대한 감정이 약간씩 미묘한 차이를 드러낸다. 서도우는 흔들렸지만 최수아는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연 이미 복잡하게 얽힌 부부라는 관계를 한순간에 단호하게 잘라낼 수 있을까.
최수아가 지금 아내 김혜원과 만나며 느끼는 감정을 마찬가지로 그녀의 남편과 함께하며 느끼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 그만큼 스스로도 납득하기 힘든 불편하고 어색한 감정들이 그를 혼란에 빠뜨린다. 결국 버리는 것은 자신인 것이다. 놓아보내는 것도 자신인 것이다. 마침내 김혜원은 순순히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냉정하게 떠나고 있었다. 모두가 서도우 때문이다. 마치 그리 말하는 듯하다.
그러니 쉽지 않은 것이다. 서로 배우자가 있는 사람들끼리의 사랑이란. 그나마 서도우에게는 아내 말고 가족이 없다. 최수아에게는 딸이 있다. 앞을 알 수 없게 되었다. 마음이 서로 복잡하게 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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