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선택해야 한다. 쉽지 않은 선택이다. 치러야 할 대가 또한 크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애써 외면해 왔던 것일 게다. 가장 우선해서 해결했어야 하는 일이었음에도 정작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마저 한계에 이르고 말았다. 아무리 미룬다고 해야만 하는 일은 언젠가 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때가 다가왔다. 남편이 알아버렸다.
이대로 남편 박석진(신성록 분)을 따라 뉴질랜드로 가게 된다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이미 한 번 선택했다. 딸 효은(김환희 분)을 위해서 직장을 그만두었다. 직장까지 그만둔 그녀에게 뉴질랜드의 삶이란 낯선 곳에서 철저히 고립된 채 오로지 집안에 갇혀 딸을 보살피고 살림이나 하는 답답한 일상일 것이다. 물론 아직도 가정이 무엇보다 소중하고 가정에만 충실하려 한다면 결코 나쁜 선택이 아니다. 바로 거기에 최수아(김하늘 분)의 고민이 있다.
엄마이기에 당연히 자신의 딸 효은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오랫동안 다녔던 직장을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만 것도 모두 딸 효은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정작 딸 효은이 진지하게 자신의 결정을 이야기했을 때 엄마 최수아는 그것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할머니와 고모가 있는 뉴질랜드에서 아빠와 함께 살고 싶다. 하지만 그 말은 곧 최수아 자신 역시 효은과 함께 남편 박석진과 나머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서도우(이상윤 분)와도 더이상 만날 수 없다. 어차피 최수아가 제주도로 떠난 것도, 그리고 제주도에 머물고자 결심한 것도 딸 효은 때문만은 아니었었다. 엄마는 핑계였다. 딸의 선택은 더이상 엄마를 핑계삼지 말라는 선언이기도 했다. 엄마가 선택하라.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엄마 최수아는 한순간에 궁지로 내몰리고 만다. 이대로 딸의 결정을 쫓아 함께 뉴질랜드로 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엄마로서 딸을 저버릴 수는 없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타협을 시도한다. 물리적으로 항상 딸의 곁에 있어주지는 못해도 마음만은 항상 딸과 함께 있다. 하지만 과연 그에 따른 죄악감을 최수아는 견딜 수 있을 것인가. 딸을 버려둔 채 자신의 행복만을 쫓아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 딸과 함께하지 않고 먼 외국으로 떠내보낸 채 자기만의 행복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서도우가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최수아의 선택은 이미 자신과 무관한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선택은 곧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을 터였다. 그녀가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그 이유를 만들어준다.
가족이란 단지 자신의 소유였다. 가장이란 단지 가족 위에 군림하는 권력이었다. 사랑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버리고 떠나가게 놔두지는 않는다. 질투하지도 않으면서 단지 자신을 배신한 아내와 상대남자에 대한 끝없는 증오만을 내보인다. 어머니 김영숙(이영란 분)의 지적처럼 아내를 '자네'라 부르는 것부터 그의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다. 김영숙의 말처럼 아버지에게서 배웠을 것이다. 얼핏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듯 보였던 모습들조차 단지 자기의 소유에 대한 집착 이상이 아니었다. 인간이 다른 누군가의 소유는 될 수 없다.
과연 단 한 순간도 엄마로서 딸 애니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었는가. 민석(손종학 분)도 참 못된 사람이다. 차라리 자기가 그저 못된 결함투성이 엄마라 여기고 자학하고 말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지나쳐간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김혜원(장희진 분)도 딸 애니를 보며 행복한 웃음을 웃던 때가 있었다. 자신마저 모르고 지나쳤던 그 순간을 민석이 카메라에 담아 김혜원에게 건넨다. 그것은 구원이었다. 그래도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자기도 딸을 사랑하는 엄마였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은. 후회하는 만큼 아직도 딸 애니를 더 사랑할 수 있다.
결국 김혜원을 위한 드라마는 아니었다. 누군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 따위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 확신을 끝내 바꾸지 못하고 끝낸다. 그나마 자신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 만큼은 어느 정도 위로가 된다. 자신 역시 남들처럼 자신이 낳은 딸을 사랑하는 평범한 엄마일 수 있었다. 여전히 서도우를 사랑하고 그의 아내로 살고 싶지만 너무나 쉽게 스스로 물러나 그의 친구로 남으려 한다. 그런 점에서 서도우도 상당히 자기 아닌 남의 일에 무심하고 잔혹하다. 하긴 비로소 깨닫고 있었다. 그때 왜 자신은 딸 애니를 위해 그녀의 삶에 더 깊이 관여하려 하지 않았는가. 딸 애니로 하여금 혼자서 쓸쓸히 자신의 선택을 감당하도록 내버려 두었는가.
최수아는 선택해야 하고 그녀의 선택을 돕기 위해 서도우는 서울로 향한다. 효은은 그런 엄마를 격려하며 혼자서 뉴질랜드로 떠난다. 남은 것은 아내 최수아에 대한 남편 박석진의 분노와 증오다. 서도우가 넘어야 할 선택의 대가다. 어느새 아무 생각없이 그저 사랑만 하며 살 수 없게 된 그들의 선택이고 책임이다. 그래도 그들은 사랑하며 살아간다. 살아가려 한다. 사랑이 비장하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0311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 들어주기를 바라는 외침, 단절의 연속 (0) | 2016.11.12 |
---|---|
공항 가는 길 - 헤어짐과 만남을 위한 의식, 공항을 향해 달려가다 (0) | 2016.11.11 |
낭만닥터 김사부 - 5년만의 만남, 낯선 시간의 시작 (0) | 2016.11.09 |
낭만닥터 김사부 - 동기와 만남, 인연, 그리고 시련, 프롤로그가 끝나다 (0) | 2016.11.08 |
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 허구에서 현실로 줌업! 도현우의 고민에 빠지다 (0) | 2016.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