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무협) 김용과 중화주의, 중국근현대사의 깊은 상흔...

까칠부 2017. 2. 7. 01:14

한 가지는 확실하다. 양산형 이른바 퓨전무협소설에서 무공으로 유럽의 중세로 비정되는 이세계의 기사들을 농락하는 장면은 거의 대부분 김용의 '녹정기'에 빚지고 있다. 그만큼 한 편으로 유치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고작 점혈법 하나에 놀라서는 철저히 놀아나는 러시아인들의 모습이라는 게.


아무튼 확실히 김용의 무협소설을 보면 중화주의가 무척 강하다. 한국무협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중원제일주의나, 혹은 동이제일주의는 분명 그 영향을 받고 있다. 한족 이외의 이민족들은 죄다 어리석고 욕심많고 사악한데다 기괴하기 이를 데 없다. 무공도 정상적인 것이 없다. 외모나 옷차림도 하여튼 이상하다. 한족 가운데는 영웅호걸도 있는데 이민족 가운데는 그저 본능에 이끌리는 짐승만이 존재한다. 영웅호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목적 역시 이민족으로부터 한족의 강산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김용의 성장과정을 보면 그런 편협할 정도의 중화주의를 아주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문화대혁명이라는 최악의 실책에도 불구하고 마오쩌둥이 아직까지 중국에서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이유와도 무관하지 않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은 끊임없이 외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 줌도 안되는 영국군대에 패하고, 의화단의 난을 진압하면서는 열강에 기대어 수도 없이 양보해야 했었고, 청일전쟁에서는 심지어 같은 아시아의 일본에까지 참패하고 있었다. 청왕조가 망하고 난 다음에는 더 심각했다. 각지에 군벌이 난립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함부로 외국과 불리한 조약을 맺어대고는 했었다. 중국의 대부분의 이권은 외국에게로 넘어갔고 자신들의 땅이었음에도 오히려 이방인처럼 철저히 소되고 차별받아야 했었다. 핍박과 멸시는 이미 중국인들에게 일상이었다. 그런데 다시금 분열되어 있던 중국을 통일하여 강대국들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바로 마오쩌둥이었던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중국이 다시 하나가 되었기에 분열하여 강대국들의 먹이가 되지 않은 것만도 중국인들에게는 크나큰 기적과도 같았다.


바로 그런 시대에 성장기를 거쳤다. 1924년생이며 고향이 절강이었다. 그가 활동한 곳은 홍콩이었다. 당장 중일전재의 처참한 상활을 직접 보았거나 최소한 실시간으로 전해듣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조국 중국이 이민족에 의해 처참하게 유린당하는 현실을 가장 예민한 시기에 직접 경험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중국을 침략한 이민족에 대해 아무 감정이 없다면 오히려 현실성이 떨어질 것이다. 이민족에 유린당하는 왕조와 백성들을 구하고 개인의 의를 구현하는 것이야 말로 영웅이며 대협이 해야 할 일이다. 오죽하면 중국역사상 최고의 명군으로 손꼽히는 강희제마저 그 모계를 들먹이며 한족의 혈통임을 강조하고 있었겠는가. 건륭제의 혈통이 사실은 한족의 그것이라는 야사마저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그렇게라도 땅에 떨어진 중국인의 자존심을 다시 살려 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지막 작품인 '녹정기'에 이르면 중국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녹아든 이민족에 대한 조금은 달라진 태도를 볼 수 있기도 하다. 위소보의 친부가 과연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그의 어머니는 회족일수도 있고 서장의 라마일 수 있다며 여운을 남기는 대답을 한다. 최소한 유럽의 백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국대륙을 활보하던 인근의 민족들일 수는 있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 생각해 보면 위소보의 개막장스런 성격으로 보아 그런 위소보를 한족으로 남겨두기 싫은 고집은 아니었을까.


지금도 중국정부는 분열과 외세라는 말에 대해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고는 한다. 중국인들 자신도 분열과 외세라는 말 자체에 큰 거부감을 보인다. 다시는 그때처럼 될 수 없다. 다시는 그때처럼 갈갈이 찢겨 비참한 신세로 전락할 수 없다. 그래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나라가 망했는데도 한족으로서 충성과 절개를 지키며 이민족의 강자들을 무찌르는 영웅들의 존재에 대해. 김용의 마지막 작품이 완결된 것이 1972년, 아직은 중일전쟁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을 때였다.


다시 읽으려면 가장 크게 거슬리는 부분도 바로 이것이다. 천룡팔부는 그래서 한 번도 끝까지 읽어 본 적이 없었다. 이민족에 대한 노골적인 증오와 혐오가 중국인들에게는 이민족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감정을 건드린 때문이다. 민족주의적인 요소가 덜한 다른 작품들은 상관없는데 특히 천룡팔부는 처음부터 이민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며 시작한다. 녹정기는 그보다는 그런 식으로 이민족에 나라를 빼앗긴 한심한 중국인 자신에 대한 한탄이며 조롱이기도 한 터라. 어째서 중국인들이 이처럼 쪼그라들 수밖에 없었는가.


오래전 읽었을 때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읽었던 터라. 위소보의 개막장스런 짓거리에 그때는 참 짜증도 많이 났었다. 오히려 지금 위소보의 행동들을 웃으며 볼 수 있다. 개자식이기는 한데 성장과정을 보면 아주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의리나마 지키는 것이 대견할 정도. 정말 오랜만이다.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