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 - 비일상의 힘과 일상의 사랑이야기, 마음놓고 웃을 수 있는.

까칠부 2017. 3. 5. 04:23

더 많은 다양한 사건들을 둘이서 팀을 이루어 해결하는 내용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것이 왕도다. 드라마의 왕도는 역시 로맨스다. 기왕에 예쁜 여자와 멋진 남자가 만났으면 일단 사랑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남다른 개성과 매력을 지닌 두 남녀가 만나 한공간에 있다면 당연하게 사랑에 빠지고 보는 것이다. 흥행의 공식이다. 성공한 드라마에는 로맨스가 있다.


잠깐 기대했었다. 안민혁(박형식 분)이 가끔씩 보여주는 남다른 직관을 보면서. 안민혁의 머리와 도봉순(박보영 분)의 힘이 합쳐진다. 하긴 비슷한 컨셉의 만화가 이미 일본에 있었다. 안민혁같은 내밀한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봉순처럼 현실을 벗어난 배경설정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먼저 두 사람이 팀을 이루기 전에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티격태격하는 사이 시간은 벌써 2주나 지나갔다. 2주째 마지막회에서야 도봉순은 자기가 들었던 범인의 목소리를 찾아낸다.


하드보일드라면 역시 도봉순이 짝사랑하는 인국두(지수 분)와 동생 도봉기(안우연 분)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조희지(설인아 분)를 중심으로 또다른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지금까지 여성을 상대로 한 연쇄범죄가 잔혹한 만큼 두 사람 사이에서 도봉순 역시 선택의 순간을 겪어야만 한다. 하긴 과연 지금 진행중인 연쇄범죄가 과연 그렇게까지 잔혹한 사건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첫희생자는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지만 그 이후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는 없었다. 심지어 감금된 상태의 피해자 가운데 범인이 준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도 보인다. 뜻밖에 감춰진 다른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냥 평범한 소시민들의 이야기다. 그나마 왕자님답게 안민혁은 나름대로 꽤나 복잡한 비밀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다. 그런 만큼 도봉순을 좋아하는 것을 제외하고 가장 순수하다. 어쩔 수 없이 많은 것을 가진 '왕자' 캐릭터이기에 주어지는 페널티같은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너무 많은 것을 가졌는데 되바라지기까지 하면 재수없다. 대신 평범한 소시민인 도봉순 주위의 인물들은 아예 대놓고 속물들이다. 어떻게든 딸을 부자에게 시집보내 신분상승을 꾀하는 엄마가 부동산개발과 관련해서 이익을 노리고 누구에게 뇌물을 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장면부터가 그렇다. 적당히 선하고 적당히 악하며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이타적이다. 오랜 친구지만 새로운 인연 앞에 여지없이 흔들리는 모습도 보인다.


도봉순의 비정상적인 힘을 중심으로 적당히 현실적인 일상들을 배치한다. 만나고 반하고 오해하고 사귀고 헤어지고. 뻔한 이야기들이 도봉순의 힘과 인근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로 인해 상당히 비일상적인 특별한 사건이 된다. 하지만 역시 중심은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사랑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마음이 놓인다. 적당히 긴장을 놓지 않도록 사건을 사이사이 배치하면서 그를 빌미로 인물들의 사랑야이기를 다양하게 펼쳐간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다.


매 장면마다 보여주는 박보영의 다채로운 표정은 이 드라마의 70%를 차지한다. 도봉순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이 나머지 절반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박형식이 가져간다. 대부분의 장면들은 도봉순과 안민혁이 주고받는 만담들이다. 사사건건 티격태격하며 미운정이 들어가는 과정은 흔하지만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재미 또한 확실히 보장된다. 알면서도, 오히려 그래서 따라가는 과정들이 재미있다. 서운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