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보이스 - 모태구가 없는 곳에서, 진짜 미친 놈은 누구인가!

까칠부 2017. 3. 6. 03:00

그러고보면 참 재미있다. 유영철 강호순이 아무리 많은 사람을 죽였어도 두 자리 숫자가 채 되지 않는다. 그에 비해 건물설계를 멋대로 변경해서 그 열 배가 넘는 사람을 죽게 만든 당사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실험결과를 조작하고 언론보도를 이용한 당사자들과 그에 부역한 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수백이 넘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주장하고 불과 얼마전까지 상당수의 국민들이 그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진짜 미친 것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단지 없이 사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전자가 원래는 오갈 데 없는 노숙자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모태구(김재욱 분)도 권력형 살인자로 설정된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타인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그들의 목숨마저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버스운전사에게 강제로 사인하게 한 사고보험의 내용부터가 수상쩍다. 브레이크가 이상하다는데 도로공사를 이유로 일부러 차들이 다니기 힘든 비포장도로로 우회하게 만든다. 상당히 무리한 설정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정도 도시화된 시가지에서 우회할 수 있는 비포장도로라는 것이 그렇게 흔한가. 하지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고집스럽거나, 아니면 멍청하거나.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을 마음껏 농락하며 천천히 죽인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상대로 일방적으로 공포에 떠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월감 속에 상대를 처참히 살해한다. 그러니까 모태구가 미친 놈이냐는 것이다. 모태구 한 사람만 미쳐 있는 것인가. 바로 전에피소드에서 노숙자를 상대로 불법임상실험을 하고 장기까지 적출해 팔아먹는 범죄자들이 보이고 있었다. 법을 지키라는 경찰이 하는 일이란 그런 범죄자들을 잡아낸 골든타임팀을 개인의 욕심을 위해 해체하는 것이었다. 검찰이 하는 일이라는 것도 보다 우월한 자신의 지위와 힘을 이용해서 범죄자를 쫓는 경찰에게 누명을 씌우고 곤란에 빠뜨리는 것이다. 처음부터 모태구의 정체를 감추지 않고 아예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던 이유였는지 모르겠다. 진짜 미친 것은 모태구가 아니라 오히려 더 태연한 얼굴로 더 일상적으로 더 끔찍한 짓들을 저지르는 이 사회의 일부들이다. 그리고 그들을 용인하고 있는 이 사회 전체다.


바로 아들 모태구의 범죄를 은폐하고 있는 모인범(이도경 분)의 사회적 지위가 말하는 것이다. 그를 둘러싼 경찰과 검찰, 정부와 공무원들을 아우르는 이 사회의 구조인 것이다. 정작 법은 개인을 지키지 못한다. 힘없는 소시민들을 지키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것을 알면서도 이 사회는 그런 모습들을 애써 외면하며 용인하고 있다. 범죄자들의 하수인이 된 장경학(이해영 분)과 심대식(백성현 분)이 그것을 보여준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각자 자기만의 사정이 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끔찍한 범죄의 동조자였다. 그로 인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죄가 없는 것일까. 그런 상황에 심지어 피해자의 가족인 무진혁(장혁 분)마저 과거의 인연을 이유로 장경학을 용인하고 있다.


어쩌면 세상이 정상적이었다면 모태구의 이상성격도 바로 아버지인 모인범에 의해 일찍부터 제어되고 있었을 것이다. 전엗 말한 것처럼 사이코패스라고 모두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정신과 성격에 결함이 있다고 모두가 모태구처럼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교육의 힘이고 학습의 힘이다. 사회화라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미쳐 있으니 모인범은 자식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고 모태구는 마음껏 살인을 저질러도 되는 환경에 방치되고 말았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모태구를 향한 모인범의 감정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오히려 선량한 부정이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더이상 모태구에 대한 혐오나 분노의 감정은 생기지 않는다. 솔직히 질려 버렸다. 하루종일 똥냄새만 맡고 있으면 어느샌가 더이상 똥냄새가 나지 않게 된다. 감각이 무뎌진다. 감정 역시 무뎌진다. 그리고 그 자리를 다른 것들이 대신한다. 그냥 모인범 한 사람이 아니다. 고작 경찰청장 개인이나 검사 개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장 지금 가장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 역시 검찰과 경찰, 국가기관이 앞장서서 법을 어기고 저지른 것이 아니던가. 자기가 배운 법을, 자기가 가진 지위와 힘을 그 범죄를 감추는데 이용하고 있었다. 그런 놈들이 다수의 용인 속에 사회의 주류가 되어 있다.


분노하지도 않는다. 당장 경제가 살아야 하니까. 당장 나라의 안보가 중요하니까. 그러므로 범죄도 용인해야 한다. 그러니까 자기가 시키는대로 범인을 잡는 것도 대충해야 한다. 경찰로서의 자부심이란 찾아볼 수조차 없다. 그를 대신한 것이 지위와 권력, 그리고 물질에 대한 욕망이다. 너무나 당연한 상식들이다. 한 사람만 잡아넣으면 끝날 일인가. 그래서 버스사고도 일어나고 있었을 터다. 모태구가 없는 곳에서도 그보다 더 미친 상식인들로 인해 일상적인 일들이 얼마든지 이 사회에서는 일어나고 있다.


하필 무진혁이 모태구를 잡겠다고 그를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컨테이너들을 뒤져 살인의 증거를 찾겠다 설치고 있는 동안이다. 하지만 모태구와 상관없이도 얼마든지 끔찍한 사고들은 일어난다. 과연 사고일까. 희생되는 이들은 그저 평범한 남들만큼 대단한 지위도 부도 가지지 못한 일상의 소시민들이다. 차라리 그것부터 보이고 만다. 신고센터와 골든타임팀은 단지 소수이며 비주류에 고립되어 있다. 토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