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정의를 믿고 싶은 것은 지금의 자신을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납득할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합리적인 설명들이 있다. 그러므로 어차피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하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운명을 믿고 신의 존재를 믿는다. 그러므로 내가 아무것도 안했어도 결국에 그렇게 되고야 말았을 것이다. 더이상 화낼 일도 억울해 할 일도 아니다. 나름의 위로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다.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할 사이도 없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때로 그 시체의 모습이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만큼 참혹하기도 하다. 오만 생각이 떠오른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가장 강하게 느끼는 것이 도대체 왜? 무엇때문에? 누구의 잘못으로? 도무지 갈 곳을 잃은 생각은 자기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한다. 혹시라도 내가 그때 그렇게 행동했으면. 내가 그때 조금만 다르게 행동했으면. 모든 것이 자기 탓인 것 같고 자기가 죄인인 것 같다. 그래서 그로 인한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자기를 해치기도 한다. 그러니까 그놈이 죽인 것이고 그놈이 잘못한 것이고 모두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처벌까지 해주었다. 복수가 아니다. 그럼으로써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비로소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처음부터 무리였다. 아직 아들의 죽음도 제대로 받아들이기 전이었다. 아니 아예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정면으로 마주보기 전이었다. 그런데 용서해야 한다.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른 채 용서해야만 한다. 누구의 잘못인지 무엇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 밝히기도 전에 용서하고 잊어야만 한다. 아들의 죽음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답없는 질문들 속을 헤매야 한다. 차라리 내가 잘못해서 죽은 것이라면. 바로 나로 인해 죽임을 당하고 만 것이라면. 용서하자던 당사자도 여전히 아들의 죽음에 대해 이유를 찾고 있었다. 그래도 아들을 죽인 범인이 가치있는 인간이기를. 자신의 용서가 의미있는 행동이었기를. 그것은 자신에 대한 분노이고 원망이었다. 그때 그렇게 끝내서는 안되었다.
벌써 10년 전에 거쳤어야 하는 과정이었다. 마음껏 화내고 원망하며 따져묻고 답을 들었어야 했다. 누가 그런 것인지. 어째서 그런 것인지. 그러므로 어떻게 그 대가를 치를 것인지. 그랬다면 비로소 자식을 가슴에 묻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 채 여전히 과거의 시간속에 머물며 실체도 없는 감정만을 곱씹고 있었다. 이유도 원인도 없이, 논리도 과정도 상관없이 그저 당시의 원통함과 분노만이 남아 그를 떠민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야만 했으니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니까. 자기가 살아야 했으니까. 자기가 죽을 것만 같았으니까. 그래서 경찰이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에게 그 이유를 들려주기 위해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일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비로소 터널이라는 제목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30년 전과 같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상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30년 전과 다르지 않다. 살인의 추억일까? 살인을 저지른 번인이나 살인을 쫓는 경찰이나 살인의 피해자나 아직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이상 과거의 시간 속에 살아가야 한다. 30년 전 5번째 연쇄살인의 피해자가 남긴 가족이 지금 박광호(최진혁 분)와 팀을 이루고 있는 김선재(윤현민 분)였다. 그때 살해당한 피해자의 남편이 안고 있던 아이가 이 시건방지고 제멋대로인 파트너 김선재였다. 인연이란 이렇게 공교롭다. 자기가 아직 세상을 인지하기도 전에 누군지도 모르는 범인에게 어머니는 살해당해 자신의 곁을 지키지 못했다. 화를 낼 수도 누군가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이제와서 밝혀진 사실조차 무엇하나 뚜렷한 것이 없었다. 막연한 분노가 즉오가 되어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범인을 쫓게 만든다. 전혀 다른 사건의 범인마저 자신을 이입하여 집착하도록 만든다.
그러고보면 서이재(이유영 분) 역시 과거의 기억속에 갇혀 사는 경우였을 것이다. 용서할 수 없었다. 인정할 수 없었다. 부모가 죽는데 지켜보고만 있었다. 부모가 불길속에서 죽어가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서서 보고만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고의가 아니었는가. 자신의 무의식은 아니었는가. 죽이고 싶은 무의식의 충동이 그렇게 시킨 것은 아니었는가. 살인자의 감정을 묻고 다니는 이유였는지 모른다. 자기는 괜찮은가. 자신은 아무렇지 않은가. 차라리 자기기 직접 부모를 살해했다면 그때 끝났을지 모르는 일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현실에 발붙이지 못한 채 시간과 공간의 사이 어딘가 박제처럼 머물러 있다.
10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잊혀지기는 커녕 오히러 더 선명하게 기억난다. 박광호는 시간을 넘어 온 것이 아니었다. 단지 박광호의 기억이 시간을 거스른 것이었다. 잊혀지지 않은 기억이 다시금 박광호를 일깨워 원래의 시간으로 되돌려보낸 것이었다. 어쩌면 이미 죽은 사람의 망령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끝내고 난 뒤에야 비로소 미련없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김선재의 회상에서 보았던 외할아버지가 지금 박광호의 실제 모습인지도 모른다. 물론 드라마는 판타지이므로 굳이 그런 복잡한 설정따위 가정할 필요가 없다.
과거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다. 어쩌면 많은 중대한 사건들에서 피해자들이 살고 있는 현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사건을 쫓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시간을 넘어 감춰졌던 진실들이 밝혀진다. 시간에 의해 묻혀 있던 진실들이 마침내 그 실체를 사람들 앞에 내보이고 만다. 다시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원래의 시간에서 다시 모든 것이 시작되어야 한다. 비유로도 좋다.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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