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터널 - 필연과 작위, 죄는 처벌받는다는 판타지를 위해서

까칠부 2017. 4. 16. 08:54

현실에서 의도하지 않은 많은 일들은 우연에 의해 일어난다. 일어날 리 없는 일이 일어났다면 인간의 의지 밖에서 우연히 일어났다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인간의 의지가 그곳에 미치며 이유가 생겨나고 인과가 만들어진다. 우연은 필연이 된다.


상식적으로 누군가 과거로부터 시간을 건너뛰어 왔다면 김선재(윤현민 분)처럼 반응하는 것이 옳다. 아무리 닮았고 같은 사람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그렇게 쉽게 박광호(최진혁 분)를 30년 전 자신의 상사이던 박광호라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수도 납득할수도 없는 사실들에 당황하고 분노하고 심지어 적개심을 드러내며 있는 힘껏 부딪히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만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유가 있다. 인과가 있다. 소설이나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인데 마치 누군가 의도한 것처럼 모든 조각들이 맞아떨어진다. 하필 시간을 건너뛰어 간 미래에서 자기가 쫓던 사건과 같은 사건을 쫓던 경찰과 마주친다. 하필 이름까지 같았던 탓에 대신해서 근무하게 된 30년 뒤의 경찰서에서 파트너로 만난 것이 30년 전 사건의 희생자가 남긴 아들이었다. 서재이(이유영 분)도 30년 전의 사건과 관계가 있다. 최진혁이 사들고 간 중국집 군만두에서 어떤 아직 드러나지 않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잇었다.


사실 그래서 재미없기도 했었다. 너무 퍼즐처럼 정교하게 맞아들어간다. 최진혁이 만두를 사들고 서재이의 방을 찾았을 때 그 만두가 서재이와의 관계를 잇는 매개가 될 것이라 예상했었다. 김선재가 30년 전 사건의 피해자 서이수의 아들인 것을 알게 된 이상 당시 유력한 용의자이기도 했었고 매일같이 사건의 경과를 지켜보러 경찰서를 찾았던 그의 아버지가 최진혁의 신분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인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한 가지가 남는다. 시간을 넘나드는 복잡한 구조의 이야기이니 살인범도 정호영으로 단순화될 것인가. 아니면 또 한 번 반전을 꾀하게 될 것인가.


아무튼 지나치게 어떤 특정한 의도가 드러나면서 시간이동이라는 초자연적 사건은 어떤 명확한 목적을 가진 존재의 의지로 바뀌가 된다. 무엇 때문에 그 의지는 박광호를 30년 뒤 미래로 보냈던 것일까? 사랑하는 아내로부터 떼어놓고 아내 뱃속의 아이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 채 낯선 30년 뒤의 미래로 던져지게 되었을 것일까? 그래서 하필 미래에서 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고 그 가족들과도 만나게 된다. 서재이도 김선재도 그런 피해자의 의 가족이었다. 30년 뒤의 박광호가 쫓고 있던 당시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가. 그것과도 과거의 박광호가 만난다. 어쩔 수 없는 것이 남은 분량 안에 지금까지 만들고 배치해 놓은 이야기들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우연이 사건을 마무리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잘하면 좋지만 자칫 촌스러워진다.


마침내 김선재에게도 박광호의 정체가 들통났다. 아예 먼저 사실을 알고 모르는 척 박광호의 주위를 조여온다. 지금 눈앞의 박광호가 죽은 또다른 박광호를 살해한 범인이다. 지금 당장은 달리 생각할만한 근거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박광호의 정체를 듣고 보이는 반응이 상당히 그럴듯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또다른 증거들과 마주한다. 20년 전 아무도 미처 생각지 못한 증거들이 이제 다시 범죄의 증거들이 된다. 시간을 넘어 미래와 과거의 경찰이 만나 존재하지 않는 사건을 추적해간다.


우연은 없다. 필연만이 있다. 필연에 이르는 하나의 길만이 있다. 하지만 그 자체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초현실적인 것이니 단순하지만은 않다. 시간을 매개로 복잡한 논리들이 현실 바깥에서 현실을 담아 만들어진다.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러면서도 새롭고 재미있어야 한다. 연출이고 구성이고 연기다. 볼만한 가치가 있다. 약간의 허술한 부분들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의 철저한 캐릭터연기가 이야기를 현실에 밀착시민다. 그렇게 복잡한 관계도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는다.


확실히 노래방이 처음 나온 것은 90년대 초였을 것이다. 참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드라마를 보다 말고 문득문득 떠올린다. 어느새 조금씩 시간의 변화에 익숙해져 온 자신에 비해 어느날 갑자기 모든 것을 한 번에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런 일들도 있었구나. 그렇게 여겨지기도 했었구나. 어떤 것들은 터무니없는 웃음으로, 어떤 것들은 진지한 고민으로, 어떤 것들은 현지진행의 이야기로써.


초월적인 의지라 해서 특정적인 종교의 신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또다른 신의 이름은 섭리다. 하늘은 정의로운 이들의 편을 든다. 그렇게 박광호를 위해 모든 것이 배치된다. 진실을 위해 모든 것이 준비된다. 시청자가 믿고 싶은 정의다. 악인은 처벌받는다. 죄인은 응징을 당해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것을 알기에 허튼 망상을 가지게도 된다. 판타지란 환상이다. 환상은 꿈이다. 그런 일이 현실에서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안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픽션으로나마 즐기고자 한다. 반드시 살인범은 체포되어 죄값을 치르게 된다.


마침내 김선재가 박광호의 정체를 알고 박광호와 같은 범인을 쫓는 접점을 찾아낸다. 위기까지는 아니었다. 증인은 얼마든지 있었다. 30년 뒤 박광호가 쫓고 있던 사건의 진실을 향해서도 다가간다. 이유를 찾아간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그곳에 아내가 있다. 생사마저 모르는. 이야기의 이유다. 절실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