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 30년 전 살인사건의 진실, 정호영 죽다

질척거린다.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다. 나는 깔끔하게 떨어지는 걸 좋아한다. 냉정하고 치밀하고 정교할수록 좋아한다. 하지만 역시 한국적이다. 결국은 사람의 이야기다. 끔찍한 연쇄살인도, 그 연쇄살인의 범인을 쫓는 경찰들 역시. 울고 웃고 화내고 아파하는 그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의 이야기다.

감정이 지나치가. 도대체 이게 사건을 수사하겠다는 경찰의 태도인지. 벌써 몇 명이나 죽어나간 사건인데 과연 범인을 잡겠다는 생각은 있는 것인지. 그런데 그 경찰이 범죄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연쇄살인의 희생자 가운데 한 사람이 그의 어머니였다. 사건을 수사하느라 사랑하는 아내와 무려 30년이나 멀어지고 말았다. 딸이 태어난 것도 모른 채 졸지에 고아가 되어 아파하는 법마저 잊어버린 처참한 모습으로 마주하고 말았다. 돌아가야 한다. 아내가 딸이 기다리는 30년 전으로. 30년 전 억울하게 살해당한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려야 한다.

그렇다고 감정을 주위로 넓게 퍼뜨리지는 않는다. 심지어 전성식(조희봉 분)조차 개인적인 이야기는 아예 생략된 채 진행된다. 나머지 강력팀 형사들도 캐릭터는 있지만 개인의 사정이나 사연은 역시 생략되어 있다. 박광호(최진혁 분)와 김선재(윤현민 분)와 신재이(이유영 분) 뿐이다. 그나마 30년이라는 시간을 이어주는 연쇄살인범 정호영(허성태 분) 정도가 그 동안의 자신의 이야기를 충실히 채우고 등장한다. 연결고리다. 30년 뒤 끔찍한 연쇄살인을 저지른 정호영의 진실을 쫓는 과정에서 30년 전 미제로 끝난 또다른 연쇄살인의 진실에 닿게 된다. 정호영이 30년 전 살해당한 김선재의 어머니 서이수의 살해현장을 목격한 목격자였다.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정호영은 끝내 같은 연쇄살인범이 되어 있었다.

진짜 수사는 범인을 체포한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냥 막연히 몇 가지 정황증거만으로 끼워맞춰 누가 범인이라 단정짓는 것은 범인을 실제 처벌하기 위한 재판이라는 과정을 무시하는 것이다. 자백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어설픈 증거 몇 개로는 아무래도 불안하다. 확실하게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 하나면 된다. 그를 위해 더 많은 증인과 증언 역시 확보해야 한다. 오히려 정호영을 체포한 순간부터 경찰들은 더 바빠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호영 이외의 다른 연쇄살인범의 존재가 드러나게 된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저 막연한 가능성만으로 이미 시청자가 알고 있는 또다른 진짜 연쇄살인범을 찾아내야 한다. 정호영은 어떻게 신재이가 스스로 미끼가 됨으로써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숨어 있는 목진우는 어떻게 찾아내고 체포할 것인가.

어찌보면 가장 상처가 적은 것 같다. 최소한 성장과정에서 크게 맺히거나 비틀인 부분은 없는 듯하다. 자기 감정에 솔직하다. 지나칠 정도로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신재이나 김선재나 그런 점에서 매우 서툴다. 사실 30년만도 아니다. 불과 며칠전 30년 뒤 미래로 왔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내의 부재는 아내없이 지나온 세월을 고스란히 실감하게 만든다. 부모없이 고아로 지나온 딸의 시간들도 아버지로서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자신의 처지도 생각지 않고 너무 쉽게 눈물을 흘리고 감정을 드러낸다. 주위도 보지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자기가 느낀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

신재이가 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신재이는 과연 박광호가 자기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진범을 찾아야 한다. 진범 목진우가 정호영을 찾아가 그를 자살케 한다. 그렇게 봐야 옳을 것이다. 사건의 끝이 다가온다. 여전히 감정들은 넘친다. 신재이가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게 됐다.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