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 무척 디테일하다. 정호영(허성태 분)은 피해자들을 살해할 때 몇 번이나 반복해서 목을 졸랐다. 반면 목진우(김민상 분)는 한 번에 목졸라 살해하고 있었다. 무심코 지나쳤다. 하지만 깨달았다. 두 사람의 범행동기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목진우에게는 살인 그 자체가 목적이었지만 어쩌면 정호영에게는 피해자의 목을 조르는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이었을 수 있다.
30년 전 정신병원에 갇히기 전 정호영은 여동생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정신병원에서 의사와 상담하면서도 목을 졸리며 쾌락을 느끼는 여성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었다. 목진우가 당시 정호영 앞에서 저지르고 있던 행위는 분명 살인이었지만 관찰자로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목을 조른다는 행위 뿐이었다. 어찌보면 상당히 철학적이다. 행위하는 주체와 그 행위를 지켜보는 관찰자의 입장의 차이를 범행의 동기로써 구체화시킨다.정호영이 목진우와 달리 피해자들의 발뒤꿈치에 점을 찍지 못했던 이유였다. 관찰자였던 정호영은 그 행위조차 제대로 모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자신의 동기이고 자신의 행위였다.
이미 답을 아는 상태에서 그 답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묘사하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더구나 스릴러로써 그 과정에서 더욱 긴장감을 고조시킬 수 있어야 한다. 뻔히 누가 살인범인지 아는데 어떻게 살인범이라는 증거를 찾아내어 그의 정체를 밝히고 체포할 수 있을 것인가. 바로 가까이에 있다. 바로 앞에서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무 거리낌없이 사건에 대한 정보까지 건네고 하마트면 자신들이 가지고 잇는 유일한 단서마저 노출시킬 뻔했다. 먼저 목진우가 박광호(최진혁 분)의 정체를 알았다. 목진우가 박광호를 터널로 불러내는 장면은 그래서 조금 의아했다. 박광호가 터널로 오기만 하면 목진우는 그를 문제없이 제압하여 뒤탈을 없앨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심지어 박광호를 죽이겠다고 경찰과 몸싸움까지 벌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목진우는 벌써 40대, 박광호는 시간을 건너와서 그렇지 몸은 20대다.
박광호를 다시 30년 전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장치였다. 30년 전에도 터널에서 살인현장을 살피다가 목진우와 부딪히고 불의의 공격을 받아 30년 뒤로 넘어오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번에도 똑같이 터널에서 연쇄살인범 목진우와 격투를 벌이다가 자신이 떠나왔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하필 그 순간 김선재(윤현민 분)는 신재이(이유영 분)에게 박광호가 사실은 그녀의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바로 가까이 있는 동안에는 전혀 모르고 있다가 겨우 알게 되니 이번에는 다시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박광호 입장에서는 그보다 좋을 수 없지만 졸지에 친아버지가 생겼다가 사라진 신재이의 입장에서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어찌되었거나 지금의 시간에서 신재이는 또 한 번 아버지를 잃게 된 것이다.
시간의 패러독스가 걸린다. 지난 30년동안 일어난 사건 가운데 상당부분은 박광호가 어느날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지면서 일어난 것들이었다. 30년 전 연쇄살인아 기록조차 없이 철저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고 만 것도 정작 가장 열심히 집요하게 사건을 쫓던 박광호의 실종과 아주 관계없다 단정지어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만일 박광호가 그때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않았다면 최소한 연쇄살인의 범인을 쫓다가 실패했다는 사실 정도는 어떻게든 남았을 것이다. 희생자들의 발뒤꿈치에 찍힌 점에 대해서도 박광호와 부검을 맡은 담당의만 겨우 알고 있는 정도였다. 30년 뒤 박광호가 알고 있는 정보들은 오로지 그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것이 되어 있었다. 아내 신연숙(이시아 분)도 남편인 자신이 사라지고 혼자서 딸을 키우며 고생만 하다가 어린 딸을 두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아내에게도 남편인 자신이 항상 곁을 지켜주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혹시라도 - 아니 거의 확실하게 30년 전으로 돌아가 박광호가 진범을 잡게 되면 김선재와 목진우의 인연도 사라지는 것이다. 설사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이유로 신연숙이 갑작스럽게 죽는 경우가 생긴다 하더라도 최소한 어린 딸 박연호(=신재이)를 영국으로 입양보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영국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교수가 되어 한국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30년 뒤와는 조금 더 평범한 별 것 없는 무난한 삶을 살았을지 모르겠다. 김선재와 만나는 일도 없이 더 일찍 평범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흔한 아줌마가 되어 고단한 일상에 치이며 살고 있었을 수 있다. 그러니까 박광호가 30년 전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오고 나면 남아있는 그곳의 시간들은 어떻게 바뀌는 것일까? 평행우주의 이론대로라면 그곳의 시간은 다시 돌아간 30년 전의 시간과 전혀 별개로 존재하게 된다.
목진우의 정체를 알아내기까지 과정이 상당히 꼼꼼히 짜임새있게 이어진다. 정호영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NOEL'이라는 단서를 남겼다. 시청자는 그 단서가 사실은 목진우의 웃옷 주머니에 꽂힌 만년필에 쓰여져 있던 글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NOEL의 진짜 뜻은 김선재와 박광호가 발로 헤집으며 수사하는 과정에서 밝혀진다. 목진우의 살인동기까지 그 과정에서 모두 드러난다. NOEL은 원래 목진우의 세례명이었고, 30년 전 목진우는 성당에서 베트남전쟁에서 사람을 죽인 경험을 자랑하듯 떠들던 어느 참전군인으로부터 살인이라는 행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사람을 죽인 숫자만큼 새겼다는 당시 참전군인의 문신이 피해자들의 발뒤꿈치에 찍힌 점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추측하게 된다. 유흥업소 여종업원이나 밤거리를 헤매던 불량학생이 피해자인 것도 어떤 분노 때문이 아니었을까. 쾌락을 위해 꽤나 오래 반복해서 목을 졸랐던 정호영과는 달리 목진우는 단호하게 한 번에 목을 졸라 피해자들을 살해하고 있었다.
정호영이 자살한 구치소에서 목진우가 직전 면회한 기록을 찾아냈고, 신재이가 30년만에 다시 살인을 저지르게 된 계기로 30년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생존자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라 추리해낸다. 팀장 전성식(조희봉 분)이 피해자의 뒤꿈치에서 찾아낸 점의 안료가 쓰인 물품들을 조사한 목록에서 보기는 그 전에 봤던 목진우의 웃옷 상의에 꽂혀 있던 만년필을 떠올리게 된다. 다만 역시 이번에도 열혈수사관답게 동료경찰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서 범인이 불러낸 곳으로 찾아가는 무모함을 보인다. 박광호를 다시 원래의 시간으로 돌려보내야 했고 범인인 목진우의 입으로 직접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들려주게 했어야 했다. 의도가 가끔 너무 앞선다. 그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 구시대경찰 박광호의 비논리적이고 몰이성적인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행동들이다. 박광호의 캐릭터가 부족한 알리바이를 대신한다. 마침내 30년 전 갑자기 시간을 넘어온 그 터널에서 다시 30년 전의 범인과 마주치게 된다. 직접 격투까지 벌인다.
30년 전으로 돌아간 이후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는 감히 추측하기가 어렵다. 별개의 시간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존재하지 않는 장소이고 사람들이다. 이름은 같아도 30년 뒤의 김선재와 30년 전의 김선재는 다르다. 이대로 아무일없이 시간이 흐르면 같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김선재가 되어 버린다. 아니면 같은 시간이 흐르도록 더 큰 비극으로 몰아넣거나. 그도 아니면 다시 한 번 의기와 열정을 압세우는 박광호의 비논리가 균열을 대신하거나. 그래도 어찌되었거나 범인을 찾아낸 순간 다시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30년 뒤에 만난 사람들을 뒤로 하고.
수사드라마로서도 밸런스가 뛰어나다. 자문을 맡은 신재이까지 수사관 개인마다 각자 역할과 임무를 맡는다. 캐릭터도 분명하다. 진실을 찾아내는 과정은 치밀하다. 사소한 아쉬움 같은 건 그냥 무시한다.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유지한다. 범인이 누구인지 안다. 그러나 어떻게 잡는가는 모른다. 여러 갈래길들이 모여 마침내 박광호를 범인의 앞으로 인도한다. 다음부터는 사람의 이야기다. 오랜만에 치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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