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알쓸신잡 - 참을 수 없는 시답잖음, 아재들의 수다

까칠부 2017. 6. 3. 03:48

아주 오래전 리얼버라이어티의 본질에 대해 '시답잖음'이라 정의한 바 있었다. 의도한 웃음이 아니다. 작심한 액션이 아니다. 그냥 일상 가운데 소소하게 일어나는 헤프닝같은 것이다. 별 것 아닌데 웃고 별 일 아닌데 놀라고 아무것도 아닌데 긴장하고. 딱 지인들과 모여서 술자리를 가지면 보이는 모습 그대로다. 당장 내가 여기서 글쓰는 것만 보더라도 중심없이 이야기가 어디로 튈 지 모른다.


하나같이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이다. 그런데 정작 이야기의 주제는 자신의 전공분야와 거리가 멀다. 박경리의 '토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소설가인 김동하는 오히려 한 발 물러나 있고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유시민이 자신의 방식으로 그에 대해 주도하며 풀어간다.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정작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없어서 각자 자기만의 전문지식으로 새로운 해석을 더하며 술자리 수다처럼 끝없이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거북선이 어느새 미토콘드리아까지 흘러갔어도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찾은 것이다. 지나치게 권위적이지 않은, 그러면서도 한 차원 높은 전문지식들이 친구들과의 하잘것없는 수다를 몇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준다. 그냥 그곳에서 조금 더 수준높은 수다를 떨면서 친구들처럼 함께 어울리는 것 같다.


MC역으로 유희열을 캐스팅한 것은 과연 탁월한 한 수였다. 균형이 맞아야 한다. 모두가 수준높은 대화를 나누는데 거기에 더해 자기도 못알아들을 소리를 하면 자칫 시청자와 유리될 수 있었다. 적당한 시점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아오르는 대화를 붙잡아 다시 사람 사는 땅위로 끌어내려 이어붙인다. 그렇게 높은 수준의 교양이나 상식을 갖추지 못한, 그래서 어쩌면 더 많은 시청자와 닮아 있는 유희열이 이야기가 너무 높은 곳으로 흐르지 않게 조율해준다. 그리고 지나치게 전문적인 이야기들을 중간에서 정리해서 쉽게 들려주는 것은 지식소매상 유시민의 역할이다. 사실상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기한 잡학사전'은 유시민이 있기에 가능한 컨셉이었다. 어쩌면 유시민의 출연을 전제로 기획하고 그를 중심으로 캐스팅한 것인지 모른다.


오랜만에 제대로 취향저격하는 예능프로그램을 만난 것 같다. '남자의 자격' 이후로 이렇게 매주 챙겨볼만큼 끌리는 예능프로그램을 만나지 못했었다. 바로 그 소소함이다. 쓸데없음. 하잘것없음. 무엇보다 시답잖음. 그래도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대단한 전문가들이. 그러면서 그다지 차이가 없는 수준의 대화가 술자리처럼 어울린다. 유시민을 지식인으로서 좋아하기도 하고. 나영석이 이런 예능은 참 잘 만든다. 미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