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도 예전에는 미리 전체의 내용을 구상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는 편이었다. 다만 요즘 몸이 피곤하고 체력도 전같지 않아서 그냥 일단 쓰기 시작하고 나머지를 채우는 방식으로 쓴다. 아마 몇 번 이야기했을 테지만 한 마디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생각하고 다 쓴 순간 생각을 끝낸다. 그래서 내가 글을 못 쓰는지 모른다.
알아두면 쓸데없다지만 원래 대부분의 지식은 그다지 실생활에 쓸모가 없는 것들이다. 뉴턴이 물리법칙을 발견하기 전에도 사람들은 대충 경험으로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았고 그대로 실생활에 적용해 쓰고는 했었다. '장자'에 나오는 수레바퀴 장인과 같은 경우라 할 수 있다. 필요한 사람은 경험으로 그것을 알고 역시 경험으로 그것을 선대로부터 배우고 후대로 전하게 된다. 그런데 굳이 그것이 어떤 원리로 되어 있는지 복잡한 수학계산에 전문용어까지 써가며 배워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소설 '무진기행'의 내용이 어떻고, '알파고'끼리 바둑을 두면 어떻게 되고, 과연 인간은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인가? 필요한가? 그래서 아마 많은 이들이 말할 것이다. 그런 것 몰라도 먹고 사는데 전혀 아무 지장이 없다. 사실이다. 그냥 내가 먹고 사는데 필요한 지식만 배우면 된다. 정확히 지식이라기보다 기술이다. 작가라면 어떻게 글을 쓰고, 음식칼럼니스트라면 식재료며 조리법에 대한 정보가 필요할 테고, 과학자에게는 과학이론 자체가 밥벌이를 위한 기술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재미없지 않은가.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기한 잡학사전'이라는 예능프로그램이 재미있는 이유인 것이다. 원래 그러라고 있는 것이니까. 인간이 알고 있는 대부분의 지식이란 원래 유희를 위한 것들이라는 것이다. 돈도 있고 시간도 남아도니 남는 시간을 재미있게 보내겠다고 시작한 것이 그리스의 철학이었다. 근세 유럽의 수학자나 철학자, 과학자들은 자신이 유한계급 출신이거나 혹은 유한계급의 지원을 받았던 이들이었다. 아직 남들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니 무척 재미있고 즐겁다. 아직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을 배워서 알게 되니 무척이나 보람차고 즐겁다. 아니라면 뭣하러 돈도 안되는 그런 것에 그토록 많은 시간과 노력들을 쏟아부었겠는가. 그같은 지식들의 쓸모가 발견된 것은 오히려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쓸데없으니까. 몰라도 상관없으니까. 그렇지만 일부러 알아야 하니까. 알고 싶으니까. 인간의 문명이 발전해 온 동력이며 인간이 인간으로서 남아있을 수 있는 이유였다. 아니었다면 모든 인간들은 자연이 부여한대로 필요한 행동들만을 하며 필요한 지식만을 경험으로 배우며 지금까지 살아왔을 것이다. 그래서 공자도 말하지 않았는가. 스스로 배우고 익히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지적인 희열이다. 바로 아저씨들의 아무것도 아닌 대화를 함께 들으며 나 자신도 즐겁고 뿌듯한 기분이 드는 이유인 것이다. 이렇게 하나를 더 배우고 더 알게 되었다. 내 시간을 그만큼 보람차게 쓰게 되었다.
유럽문명이 결정적으로 비유럽문명을 앞설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였다. 그리스도 그랬지만 근세 이후의 유럽인들은 진짜 쓸데없는 일들을 좋아했다.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일들에 지나치게 진지했었다. 먼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고, 알아두어도 별 도움도 되지 않을 지식을 위해 수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붓고. 때로 그때문에 목숨까지 걸어야 했고. 부모님들은 말씀하셨다. 그런 짓 한다고 쌀이 나오는가. 그런 쓸데없는 짓 할 시간이 잠이나 자라. 아마 지금도 대학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인위적으로 호기심이라는 인간의 본능을 억누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더 소중하지 않을까. 배우고 알아간다는 것이 이토록 즐거운 일인가를 뒤늦게 깨닫게 된다. 단지 대상 자체가 아저씨들이라는 게 함정일 테지만.
어째서 아저씨들일까? 어떤 사람들은 비판한다. 왜 남자들 뿐이냐고? 첫째는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여자를 두려워한다. 여자가 끼어 있으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위축된다. 여성의 선택을 받아야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수 있는 진화의 과정이 만들어낸 본능이다. 더불어 이런 쓰잘데기없는 대화에 어울리는 것은 나이 먹어도 전혀 어른이 되지 않는 것 같은 남자들이다. 흔히 하는 말로 남성심리학과 아동심리학은 사실상 같다던가. 편견일지는 몰라도 여성들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 남자들은 진짜 사는데 하등 도움되지 않는 쓸모없는 이야기에 쉽게 정신을 빼앗긴다.
글쓰는 이야기가 특히 인상깊었다. 나 역시 워낙 글쓰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그런데 컴퓨터로 글을 쓴다고 그다지 수정해가며 쓰는 것 같지는 않다. 수정하기 시작하면 글쓰는 몇 배의 시간이 소모된다. 글은 원래 한 번에 쓰는 것이다. 두서없어서 뭔 소리 하는지도 모르겠다. 희열이다. 들뜨고 있다.(유희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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