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비밀의 숲 - 범죄를 쫓는 추적자, 터미네이터, 사냥꾼,

까칠부 2017. 6. 11. 03:22

우습게도 무표정한 얼굴로 오로지 용의자만을 뒤쫓는 주인공 황시목(조승우 분)을 보면서 '터미네이터2'의 악역 T1000을 떠올렸다. 사건의 발단이면서 주인공의 캐릭터를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어느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는다. 쉽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자기가 아는 바를 주위에 알리거나 굳이 이해시키려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홀로 짐승을 쫓는 고독한 사냥꾼 그 자체일 것이다.


사방이 적이다. 오로지 법과 정의만을 지켜야 하는 검찰이지만 진실따위 아무렇지 않게 파묻어버릴 수 있는 추악한 악의가 곳곳에 넘쳐나고 있다. 심지어 이제 겨우 수습딱지를 뗀 영은수(신혜선 분)마저 믿지 않고 있었다. 황시목 자신의 말처럼 아무리 순수하고 정의롭던 감사라도 검찰이라는 조직에 물들다 보면 어느새 타락과 부패를 장식처럼, 아니 아예 자기의 일부로 여기기 시작하게 된다. 아무리 검찰 내부의 부정과 비리를 고발하고 처벌하려 해도 검찰 자신이 그것을 막고 있다. 왼 팔과 오른 손의 관계다. 머리와 손발의 관계다. 어쩌면 심장과 허파일지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검찰을 올바로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인가.


고작 범죄자 하나를 잡아 처벌받게 하려는 사냥꾼이 아니다. 그보다는 검찰이라는 조직 자체를 노리고 은밀하게 노골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감추는 맹수와도 같다. 검찰도 역시 황시목이라는 사냥꾼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거꾸로 검찰이라는 조직 자체가 황시목이라는 사냥꾼에게도 숨을 수 있는 숲이 되고 산이 되어 준다. 뻔히 서로가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사실을 공공연히 드러내지는 못한다. 황시목과 차장검사 이창준(유재명 분)의 대화는 그것을 보여준다. 아직은 이창준이 우위에 있기에 여유있게 굽어볼 수 있지만 언제든 황시목도 기회만 되면 이창준의 멱을 물어뜯을 수 있다. 그 긴장감이다. 하지만 적은 여전히 황시옥보다 강하고 교활하다.


어차피 누구도 믿을 수 없으니까. 어느 누구도 자기 편에 서지 않을 테니까. 그러므로 더 의심하고 더 경계하며 스스로 고립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딱 어울린다. 아무 표정없이 누구와도 대화나 정을 나누지도 이해를 구하거나 타협하지도 않는 고독한 사냥꾼의 모습이란. 그렇게 오로지 혼자서 거대한 검찰이라는 조직과 싸우려 한다. 뱀처럼 은밀하게 밖으로부터 조여가는 것도 아니고, 매처럼 한 번에 내리꽂으며 잡아채는 것도 아니고, 호랑이처럼 힘으로 굴복시키는 것도 아니다. 하이에나터럼 떼로 모여 약점을 물어뜯으려는 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표범을 닮았다. 노골적으로 자신을 숨기고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리며 모든 것을 건다.


이창준과 서동재(이준혁 분)가 황시옥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시놉시스가 아니더라도 이창준과 서동재의 끝이 그리 좋을 것 같지는 않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 마주보도 하나의 주제로 대화를 나누면서도 다른 숨을 쉬고 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별개의 두 공간이 그곳에 있는 것 같다. 이준혁의 연기가 더 능란해진 것 같다. 숨쉬는 것 하나 눈빛 하나가 모두 이야기가 된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몇 마디 대사보다 더 많은 것들을 전해준다.


결국 황시목이 싸워야 할 적들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황시목이 얼마나 외롭고 고단한 싸움을 해야 하는가. 절망과도 같은 무게를 무심함으로 감당하며 황시목은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쥐고 황시목을 저 위에서 굽어보며 조롱하는 이들이 그를 경계하고 있다. 한 사람이 죽었다. 마치 몇 년 전 있었던 어느 사업가의 자살을 떠올리게 만든다. 하필 현재 화두가 되고 있는 검찰개혁도 연상케 한다. 모두가 알고 있다. 한국사회가 부패한 것은 결국 법과 정의를 지켜야 할 검찰이 부패했기 때문이다.


아직 한여진(배두나 분)의 역할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검찰의 싸움이다. 검찰 내부의 싸움이다. 그런 점에서 경찰인 한여진은 검찰 외부에서 검찰 내부로 접근해가는 역할이기 쉬울 것이다. 경찰로서 외부의 사건을 쫓는 과정에서 황시목과 만나고 진실을 함께 파헤치게 된다. 과연 언제 어디서 두사람은 다시 만나게 될 것인가. 기대한 이상이었다. 기다려 본 보람이 있었다. 확실히 케이블에 요즘 좋은 드라마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