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알쓸신잡 - 중구난방 쓸모없는 이야기의 향연, 먼 백제의 흔적 위에서

까칠부 2017. 7. 8. 03:34

원래 국민국가라는 자체가 군사적 동원을 목적으로 시작된 체제였다. 유럽에서 최초로 국민개병제를 실시한 나라가 바로 스웨덴이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스웨덴은 유럽에서 그리 큰 나라가 아니었었다. 부족한 생산과 인구로 다른 강대국과 맞서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바로 국민개병제였다. 말 그대로 인구 전체를 징집대상으로 간주하고 그 가운데서 병력과 물자를 징발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전에는 어떤 식으로 전쟁을 치렀을까? 원래 한자에서도 사(士)는 스스로 무장을 하고 전장에 나설 수 있는 특권신분을 뜻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무장하고 전장에 나설 수 있는 소수의 강력한 전사들에게 특권적인 신분과 재산을 나눠주는 것이 바로 봉건제였다. 그리고 봉건제의 끝에는 더 적은 비용만으로 동원할 수 있는 용병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군주 자신이 가진 재산으로 얼마나 많은 용병을 얼마나 오랫동안 고용할 수 있는가가 군주의 능력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출현하는 것이 국민개병제였다. 바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고용한 용병과 스웨덴의 국민군이 맞붙은 전쟁이 유럽의 역사를 바꾼 30년 전쟁이었다.


그 뒤로도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유럽의 군주들도 깨닫게 되었다. 군주와 백성을 전혀 다른 신분으로 분리하는 것보다 국가라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두는 쪽이 자신에게도 유리하다. 더 적은 비용으로도 더 충성도높은 병력을 더 많이 더 오래 동원해서 전쟁에 투입할 수 있었다. 프랑스대혁명 당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승승장구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도 당시 프랑스군을 이루고 있던 다수가 혁명의 영향으로 땅을 가질 수 있었던 농민의 자식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보다 프랑스혁명을 지지하면서 혁명을 좌절시키려는 외국군대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프랑스군대를 지휘하나 것이 바로 나폴레옹이었다.


그런데 제각각 태어난 곳도 성장환경도 다른 사람들을 모아 군대를 만들려면 어찌해야 하겠는가? 그래서 역사상 많은 군대가 폭력과 가혹행위를 전통처럼 여기고 있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뜻도 통하지 않는 다수의 어중이떠중이를 하나의 군대로 묶어야 한다.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언제 어느때나 아무데서 징집해도 한결같은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국민을 표준화시킬 필요가 생기게 된다. 지휘관이 A라 말하면 A라 이해해야 한다. B라 말하면 B라 알아듣고 복종해야 한다. 군에 지급되는 보급품에도 국민 개인은 자신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거기서 상식이 나오고 보건이니 건강이니 하는 개념들도 출발한다. 너무 살찐 것도 너무 마른 것도 너무 크거나 작은 것도 국가가 동원하기에는 너무 비정상이다. 국민국가의 출현과 더불어 개인을 국민으로써 교육하기 위한 국민교육이 시작되고 있었다.


불과 한 세기도 지나지 않은 20세기 초까지의 유럽사회를 그런 소설이나 영화를 보더라도 그것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하나의 답을 찾기 위한 교육도 그렇게 근대가 처음 시작된 유럽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김영하 작가가 직관으로 적확하게 그 지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명령을 들어야 하는데. 그 명령을 이해해야 하는데. 그래서 어김없이 그 명령대로 실행에 옮겨야 하는데. 말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정서가 다른 개인들을 어떻게 하나로 묶을 수 있겠는가. 87년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대한민국 역시 구일본제국의 군국주의를 물려받은 병영국가체제였다는 것이다. 언제든 병사로 동원하고 군대를 위해 써먹을 수 있도록. 언제 어떻게 북한과의 전쟁이 시작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 영향이 지금도 '분단국가'라는 레토릭으로 반복되고 있는 중이다. 분단국가이고 정전이 아닌 휴전체제이기에 어떤 부조리도 불합리도 모두 감내해야만 한다. 다름아닌 바로 전쟁이 끝나고 언제 다시 전쟁을 치러야 할 지 모르는 상대와 마주하고 있던 시절들인 것이다.


사실 나 역시 중고등학교 시절 국어성적은 좋은 편이었는데 정작 엉뚱한 곳에서 출제자와 다른 해석을 한 탓에 틀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었다. 아니 사실 국어공부 자체를 하지 않았었다. 교과서와 참고서만 한 번 읽고 그냥 시험봐서 유일하게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그렇지만 때로 출제자의 의도 자체에 동의하지 못해서 멋대로 답을 달았을 때는 여지없이 틀리고는 했었다. 그런 경우에도 출제자의 의도보다 자신의 해석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은 역시 나답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게 된다. 새삼 오랜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기에. 교련수업을 받았다 하면 세대인증이 되려나? 생각지 않게 과거의 기억과 함께 생각할 거리가 생겼다.


백제의 멸망에 대해서도 사실 예전 드라마 '계백'의 리뷰를 쓸 때 이야기한 바 있었다. 기습이었다. 백제와 신라의 경계를 방어하는 수많은 성들을 우회하여 수군으로 백강을 거슬러 진격한 당군과 함께 바로 왕성인 사비를 공격당한 것이 바로 백제가 어이없이 멸망한 이유였었다. 백제 멸망 이후로도 흑치상지나 복신 등을 중심으로 한 부흥운동에서도 볼 수 있듯 백제의 역량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고대의 여느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국왕이라는 구심점만 사라졌을 뿐 백제의 각 지방은 여전히 상당한 힘을 간직한 채 당과 신라에 대항하고 있었다. 신라가 당과의 전쟁을 결심하고 가장 먼저 끌어들인 것도 바로 이들 잔여 백제의 세력들이었다. 덧붙이자면 조룡대란 백강의 방어를 뚫고 사비로 직접 진격한 소정방의 치적을 신화화하여 기억한 것이 아닌가 싶다. 바로 이 백강 하구에서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출병한 왜의 함대가 나당연합군에 패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의자왕을 나당연합군에 넘긴 것이 웅진방령이었다는 점에서 당시 의자왕 치세에 백제의 내분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역시 어제 분량에서 가장 의미가 있었던 것은 돼지고기를 굽는 것과 관련한 쓰잘데기없는 잡담들이었다. 돼지고기를 어떻게 구울까? 구운 돼지고기는 어떻게 먹을까? 쌈은 어떻게 먹기 시작했을까? 사실은 삼겹살도 생선회도 쌈의 재료에 지나지 않았다. 심지어 회를 쌈으로 먹는 것은 4돔에 대한 모욕이라는 낚시꾼다운 단호한 선언까지. 일상에서도 실제 가장 많이 나누는 대화거든. 그저 지식인다운 냉정함과 치밀함만을 보여주던 유시민이 돼지고기에 목숨을 거는 모습은 역설적인 웃음까지 주고 있었다. 괜히 잘 구운 고기를 고기가 좋았다며 견제하는 황교익의 태도는 친근한 짓궂음 그 자체였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그러니까 20여 년 전 한반도 백년내 최대의 사건으로 항상 동학농민운동을 꼽고 있었다. 어쩌면 한반도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던 근대의 씨앗이었을 것이다. 유교와 도교와 불교와 그리고 서양으로부터 전해진 천주교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평등사상을 완성했다. 그리고 평등한 대중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었다. 국경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신분이고 계급이다. 조선이라는 같은 나라를 이루는 구성원이 아닌 자신은 어디까지나 군주인 왕이고 저들은 단지 백성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계급론도 시작된다. 같은 조선의 백성이 봉기한 것을 진압하기 위해 다른 나라의 군대를 끌어들인다. 봉기한 백성과 다른 나라의 군대 가운데 어느쪽에 더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는가.


지금도 오지의 부족들을 보면 사냥에 성공하거나 크게 수확을 거두면 공동체의 한 가운데 특별히 불을 피우고 자리를 마련해서 잔치를 벌이고는 한다. 한 마디로 야외에서 즐기는 캠핑이란, 그러니까 야외에서 불을 피우고 즉석에서 음식을 만들어 함께 나눈다고 하는 자체가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오래전 풍요의 기억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더 큰 짐승을 잡고, 많은 열매와 먹을 수 있는 풀들을 발견하고, 그렇기 때문에 당분간 모두가 먹을 걱정 없이 그저 오늘의 풍요를 즐길 수 있다. 작은 마을 단위의 공동체도 사라졌고 더이상 사냥할 일도 채집에 나설 일도 없지만 추수할 때가 되면 다시 사람들은 기억에도 희미한 그 무렵처럼 야외로 나가 서로 손을 잡고 축제를 벌이고는 한다.


이번에는 공주였다. 무령왕를의 발굴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도 땅을 치게 된다. 도굴이라는 말 그대로다. 발굴이 아니라 공식적인 도굴이었다. 어느분은 아예 명령으로 발굴품을 바로 가져다가 앞에 놓아두고 감상했다고. 백제의 무령왕과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거짓신화까지.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있던 이야기들이 진실을 찾아간다. 그냥 재미있다. 함께 수다를 떨고 있다. 시간이 쏜살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