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조작 - 한철호의 숨은 속내와 장광설, 지쳐버리는 이유

까칠부 2017. 8. 23. 10:12

내가 일본드라마에 싫증을 느끼게 된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지나치게 말이 많다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말이 많은 것은 그 또한 액션이다. 말을 한다는 자체가 하나의 행위다. 그런데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어 작가가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한다. 그것도 질리도록 지겹도록 늘어놓는다. 나는 강연을 듣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참 비루하구나 느낄 때가 바로 그런 때다. 액션을 통해 풀어가야 한다. 등장인물들과 사건을 통해서 직접 보고 듣게 함으로써 느끼고 깨닫게 해야 한다. 그런데 작가가 직접 등장인물들의 입을 들어 일일이 설명해야 한다. 역량이 안되거나, 아니면 여건이 안되거나. 더구나 소설도 아니고 드라마에서 그 장황한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왜 한철호(오정세 분)의 숨은 속내를 이석민(유준상 분)의 입을 통해 들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어째서 그것을 시청자의 몫으로 남겨두지 않았는가는 것이다.


나름대로 흥미로웠다. 어차피 제작여건이 다르니 해외의 드라마들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그래도 적당히 음모가 드러나고, 적당히 감춰진 비밀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하나가 풀리면 또 하나의 숙제가 남겨지는 과정들이 꽤나 재미있었다. 느닷없이 이석민이 한철호와 관련해서 장광설을 풀어놓지만 않았다면. 마치 한철호의 회고록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제는 없는 한철호의 숨은 속내를 추측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는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었다. 이렇게밖에는 못하는가. 이렇게밖에는 안되는 것인가.


한무영(남궁민 분)과 권소라(엄지원 분) 사이의 미묘한 관계는 아니나 다를까 공중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는지 모르겠다. 눈치없는 사람도 알아야 한다. 굳이 신경써서 보지 않는 사람도 느껴야 한다. 띄엄띄엄 보는 사람도 자칫 놓치는 부분이 있어서는 안된다. 한무영과 권소라 사이에 뜬금없는 미묘한 묘사처럼. 드라마는 역시 친절해야 한다. 기대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다른 내용은 다 잊었다. 한철호에 대한 이석민의 장광설에 그만 머리속이 죄다 지쳐 흐물해져 버렸다. 뭔가 있었는데. 그래도 한 가지 인상깊었던 대사가 있다.


"사람들이 법은 신경도 안쓰고 대한일보만 보는데 어쩌겠는가?"


이 블로그 오래 보아온 사람들이라면 기억할지 모르겠다. 어째서 한국드라마에서는 제대로 법정을 묘사하는 경우가 드문가. 심지어 법정드라마라면서도 법정에서 실제 첨예하게 법리를 다투는 장면을 그리 즐겨 보여주지 않는다. 무엇 때문인가? 법을 믿지 않는다. 아예 법이란 것에 관심이 없다. 법보다 사람이다. 법보다 우선하는 것이 사람의 사정이고 인정이다. 법을 넘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시대가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법이야 어차피 높은 놈들이 멋대로 만들고 멋대로 적용하는 것이고 그런 것 자기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마치 가십처럼 언론에 보도된 자극적인 기사들만을 일방적으로 소비한다.


대중에 대한 비판이다. 대중에 대한 분노다. 대중이 조금 더 냉철하게 엄정하게 법과 정의를 지키고자 감시의 눈을 늦추지 않았다면. 인터넷만 조금 검색해도 바로 알 수 있는 뻔한 오보마저 눈치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언론은 물론이고 말만 많은 그 많은 대중 가운데 조금만 관심을 가졌어도 알 수 있었을 오보를 알고 비판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시피 했었다. 누가 대한일보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누가 검찰을 그모양이 되도록 방치했는가.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나라 안의 모든 권력은 국민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물론 더 깊이 들어가자니 시청자를 불편케 만들 내용이라 아마 거기에서 그치려는 모양이다. 법보다 언론의 기사가 더 큰 힘을 가지고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과연 구태원(문성근 분)과 조영기(류승수 분)의 싸움은 누구의 승리로 끝날 것인가. 조영기의 뒤에는 진짜가 도사리고 있다. 아직 구태원은 진짜 배후와 직접 접촉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남강명에 대한 수사와 취재가 본격화되며 그 진짜 배후와의 거리도 좁혀지고 있다.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마지막에 시청자가 보게 될 진실은 무엇일 것인가.


어쩌면 제작여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새로 장면 하나 찍으려면 다 돈이다. 배우들이야 기왕에 캐스팅한 배우를 적당히 불러서 써놓은 대사를 읊게 하면 그만이다. 그 대단한 미국에서도 드라마 한 편에 무한정 돈을 쏟아붓지는 못한다. 그래도 없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새삼 실망할 것이 없기는 하지만. 아쉽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