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최강배달꾼 - 무지와 게으름의 죄, 최악의 악역 오진규

까칠부 2017. 8. 20. 10:19

가장 큰 악은 다름아닌 무지와 게으름이다. 세상이 잘못되어 죄를 저지른다. 사람이 원래 문제라서 악을 저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 막을 수 있고 나중에라도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어딘가에는 있다. 무엇이 잘못이고 문제인가를 안다면. 그래서 지금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노력할 수 있다면. 하지만 전혀 알려고도 않고 노력할 생각도 전혀 없다. 어차피 다 그런 것이니 자기도 그러는 것 뿐이다.


차라리 악의라도 있으면 그 악의만 바로잡으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잘못인 것을 알면서도 저지르는 사람이라면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타이르고 가르치고 응징해서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죄라는 생각도 없다. 악이라는 인식조차 없다. 자기가 잘못을 저지른다는 자각조차 없다. 어찌보면 천진하기도 하다. 그저 아무 생각없이 세상이 시키니까 하고 자기가 그러고 싶으니까 저지른다. 그런데도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고 처벌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얼마든지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


부모가 어려서부터 아예 포기하고 방치한 것이 잘못이었다. 어쩌면 형은 더 지독한 사람인지 모르겠다. 현실에 대한 어떤 의심도 불만도 가지지 않도록 철저히 돈으로 동생을 길들인다. 차라리 아버지의 일방적이고 차별적인 태도에 분노해서 최소한 반항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있었고 형이 있었으니까. 무슨 짓을 해도, 아버지에게 어떤 벌을 받아도 다 용서해주고 받아주며 적절히 넉넉하게 용돈까지 찔러주는 존재가 있었으니까. 굳이 알려 할 필요도 없었고 당연히 모르는데 애써 노력할 이유도 없었다. 그냥 되는대로 지금 이대로 아무 생각없이 산다.


오진규(김선호 분)가 진짜 개새끼인 이유다. 진짜 아이같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구분하지 못한다. 선이 뭐고 악이 뭐고 죄는 또 뭔지 전혀 알지도 못하고 굳이 알려 하지도 않는다. 오진규의 세계는 단순하다. 아버지, 형, 가족, 그리고 자기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자기의 목숨을 구해준 이단아(채수빈 분)와 한때 마음이 통하는 친구라 여겼던 최강수(고경표 분), 그리고 막다른 상황에서 자신을 구해준 정혜란(김혜리 분), 심지어 구치소에서 자신을 꺼내준 정혜란에게 은혜를 갚겠다 다짐할 때는 그 진지한 열의가 화면 너머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점에서 자기가 저지른 행위에도 불구하고 최강수가 자신을 쇠파이프로 습격하려 했다는 사실에 배신감마저 느끼고 만다. 어떻게 최강수가 자기에게 그럴 수 있을까?


법이 그러니까. 세상이 그러니까. 세상의 정의와 질서가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경찰이 자신을 봐주고, 검찰이 자신을 놔주고, 오히려 자신을 잡아넣은 최강수보다 더 높은 곳에서 굽어볼 수 있는 기회까지 주어졌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자신은 자유롭고, 여전히 풍요롭고, 최강수와 이단아에게 당당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양심은 그런 것들에 맡긴다. 자신의 죄책감 같은 것은 그런 것들에 다 맡겨 버린다. 그러니까 자기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 300만원이나 되는 벌금도 내지 않았는가. 드라마에서도 상당히 드문, 그러나 어쩌면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악역캐릭터인지도 모르겠다. 확신한 순간 저 쇠파이프를 내가 들었으면 했다. 이건 용서의 차원을 넘어서 반성 자체가 안되는 인간이다. 아버지에 대한 공포는 있을지언정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의식조차 없다. 아마 이단아도 그 사실을 대화를 통해 느꼈을 것이다.


하필 몇 주 전 '비밀의 숲'이 종영된 바람에. 그리고 지금 한창 월화드라마 '조작'을 재미있게 보는 중이기 때문에. 그전에 이미 뉴스 정치면과 사회면을 통해서 검찰이라는 조직의 실체를 알아 버린 탓에. 너무 현실적이다. 돈이 있고, 권력이 있고, 인맥이 있고, 그에 비해 최강수에게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일개 중국집 배달원따위 자기가 어떻게 해도 전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러려고 검사가 되었다. 괜히 그 고생해가며 공부해서 사법고시든 로스쿨이든 합격하고 검사까지 되었겠는가. 부모가 판검사 되라고 열심히 뒷바라지할 때는 바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더 많은 돈과 더 큰 권력과 더 높은 지위. 그러니까 정상이다. 법과 정의를 위해 헌신하는 검사 자체가 이상한 것이다. 아마 부모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아내와 자식들이 그런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역시 오진규와 같다. 세상이 바라는 검사의 모습이 있으니 자신도 그에 맞춰 간다. 검사가 정의롭기를 바라는 것은 가까운 검사 지인이 없는 무지랭이들의 입장이다. 어쩌면 저리 얄밉게 연기를 잘하는지.


갑과 을의 대결구도가 명확해졌다. 중국집 사장도 결국 갑은 아니었다. 더 큰 구조 안에서 중국집 사장도 설렁탕집 사장도 결국은 을에 지나지 않았다. 그 갑이 하필 같은 배달원이면서 설렁탕집 사장의 손자를 중태에 빠지게 만든 오진규와 손을 잡았다. 을의 무력감이 더욱 강하게 묻어난다. 검찰과 손잡은 갑의 앞에는 법도 정의도 윤리도 도덕도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다. 정의가 있어도 고작 검찰청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항의나 할 뿐이다. 막대한 돈으로 밀고 들어오는 저들에 맞서서 과연 을들은 자신들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어쩌다보니 사귀게 되었다. 어제부터 1일이다.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다. 다른 드라마에서 채수빈은 그렇게 예뻐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졸지에 여자친구라 주장하는 여자가 둘이나 생겼다. 고경표는 오히려 출연료 내고서 출연해야 한다. 우연이 필연이 되면 그것을 운명이라 말한다. 어쩔 수 없이 엮이다 보면 그렇게 흘러가기도 한다. 선남선녀란 그런 의미다. 역시 채수빈은 예쁘다.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