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은 칼보다 강하다. 단 그 펜이 권력의 손에 쥐어졌을 때. 권력을 위해 쓰여졌을 때. 펜이 강한 것이 아니다. 펜의 뒤에 숨은 권력이 강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자꾸 무시하고 잊는다.
하필 익명의 제보자였던 이유였다. 그리고 아마도 다음주 그로 인해 큰 위기가 닥치게 될 것이다. 대중이 침묵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스스로 진실을 판별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결국 권력의 손에 쥐인 펜이 진실을 감추고 거짓으로 세상을 뒤덮게 될 것이다.
그런 현실을 안다. 몰랐던 것이 아니었다. 알면서도 그저 오기로 버텨왔을 뿐이었다. 그것이 기자라고. 그런 것이 뉴스이고 언론이라고. 유명호(이승준 분)의 한 마디에 김백준(김주혁 분)은 치명상을 입고 만다. 진정 자신의 팀원들을 위하려 했다면 지금처럼 대세를 거스르는 뉴스따위 내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회사를 거스르고, 권력을 거스르고, 마침내는 대중까지 거스른다. 그러고 남는 것이 무엇일까?
굳이 멀리 갈 것도 없다. 독립운동가까지 찾을 것도 없다. 엄혹하던 시절 민주주의와 시민의 자유를 외치며 싸웠던 재야와 운동권에 대한 대중의 시각은 어떠한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민주주의따위 개에게나 주라. 그러니까 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참 잔인하다. 자기 팀원들 뿐만 아니라 제보자에게도 잔인하다. 아무리 모자이크를 하고 목소리를 변조해도 아는 사람은 다 알아본다. 제보자의 신원이 드러난다. 기업이라고 하는 거대한 힘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개인이 노출되고 만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무사할 수 있을까? 양심을 위해 자신의 생활과 미래까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진실이란 원래 그렇게 잔인한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른다.
원래 한국사회 자체가 그렇게 생겨먹어서 그렇다. 하긴 선진국에서도 내부고발자에 대한 인식이나 대우가 그렇게 썩 좋은 편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정도가 아니다. 정의도 진실도 모두 사라져버린 폐허 위에 언론이 망령처럼 양심과 자존심을 주장한다. 죽지 못한 망령은 산 사람을 해칠 뿐이다.
냉소적이 된다. 어차피 언론의 목적은 진실을 보도하는 것이다.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세상에 진실을 널리 알려야만 한다. 자기에게만 엄격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자기를 제외하고 엄격한 것인지 모른다. 자기들은 언론이라는 두터운 성벽과 갑옷의 보호를 받고 있다.
어쩌면 김백진의 말처럼 잠시 쉬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정의로운 투사가 아닌 원래의 생활인으로 돌아간다. 누구도 상처입히지 않고 자신도 상처입지 않는다. 입맛만 더러워지는 현실이다. 참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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